오늘 이야기
나는 팥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보다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남편은 팥이 듬뿍 덮여있는 시루떡을 제일 좋아한다. 팥을 싫어하는 나는 하얀색의 담백한 기지떡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호빵이나 찐빵을 먹을 때 팥을 감싸고 있는 하얀 빵 부분을 떼어먹고 속에 있는 팥이 보이면 남편에게 내민다. 다행히 남편은 팥 앙꼬를 반가워한다. 붕어빵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팥을 피하지만 유일한 게 팥을 먹는 날이 있다. 동지이다. 어제 2025년 12월 22일은 동지였다. 주간보호 센터 원예 수업을 하며 도입 부분에 동지 이야기를 꺼내었다. 동지에 대한 경험이 많은 어르신이기에 간단한 설명만 하고 질문을 많이 했다. 어느 어머님께서 "올해는 애동지 같은데 " 하고 말을 꺼내셨다. 음력으로 오늘이 며칠 인지를 물으셨다. 음력 11월 3일이라고 하니 애동지가 맞다고 하셨다. 동지가 음력 기준으로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는 노동지라고 한다. 아마 올해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 애동지라는 것을 느낌으로 아셨나 보다.
사실 애동지라는 단어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르신들과 수업을 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은 원예치료사로 일하면서 느끼는 큰 기쁨 중 하나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애동지를 처음 알았다고 하니 어르신들은 과거 동지 때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르신의 자존감이 쑥쑥 올라가는 순간이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안 먹는다고 대신 팥떡이나 팥밥을 해 먹으라고 하셨다. 애가 아기를 뜻하니 애동지에는 뜨거운 동지팥죽보다 먹기 쉬운 팥떡이나 팥밥을 준비한다고 하시며. 동지만 되면 팥죽을 사느냐 만드느냐 고민하던 나에게 반가운 이야기였다. 팥죽보다 팥밥을 하거나 팥떡을 사 먹는 게 쉬우니 말이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이다. 음기가 가장 강한 날이라 생각하여 예부터 붉은빛을 띠는 팥을 먹으며 액운을 막으려 했다. 음기가 강하기에 동짓날 밤에 너무 일찍 자는 것도 다음날 너무 늦게 일어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밤을 새운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팥을 먹는 것은 추위가 강해지는 시기에 따뜻한 성질의 팥을 먹으며 영양을 보충하는 지혜였을 것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지이지만 다음 날부터 다시 일조시간이 길어지는 첫날이니 새 마음으로 시작하라는 뜻으로 늦게 일어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해를 해 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이번 동짓날은 팥죽 대신 팥밥이나 팥떡 먹어도 된다고. 남편은 내 의향을 알아차렸는지 팥떡 좋지 하면서 쉬운 것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는 목적지를 떡집으로 돌렸다. 잘 차려진 떡들 사이에 있는 붉은색의 수수팥떡을 골라 집으로 향했다.
아주 고운 가루는 목 넘김이 좋았다. 내 입이 팥인지 모르는 듯했다. 미세하게 남아 있는 쓴맛을 가시게 할 오미자가 생각났다. 기침에 좋다고 하여 문경에서 받아 만든 오미자청은 수수팥떡과 잘 맞는 짝꿍인 듯 어울렸다. 수수팥떡과 따뜻한 오미자차를 먹고 있으니 두 가지의 붉은 열매들의 에너지가 차가운 몸 안에 스며들었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내일부터 밝아지는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동짓날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