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새해가 시작되었다. 계절감을 강조하는 원예 수업인 만큼 첫 수업은 새로운 해를 준비하자는 주제로 정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일상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낄 틈도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서다. 새 수첩에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을 쓰고 수첩 여기저기 탐색하는 설렘을 원예수업에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주간보호센터 어르신들에게, 새해 소망 나무 만들기는 직관적 활동이라 반응이 좋다. 반짝이를 뿌려 놓은 느티나무에 소망 쪽지들을 달아 설날이 오는 2월까지 바라본다. 간단한 리본 접기를 하고 손의 근육을 움직인다. 종이에 새해 소망을 적고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지 높은 곳에 달아 마음을 모은다.
느티나무는 장수와 인내를 상징한 나무이다. 마을에서 익숙하게 보는 정자나무이며 때로는 당산나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가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장수의 의미는 중요하다. 끝없이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장수는 노화로 인한 전신적 쇠약 상태에서 두려운 죽음을 잠시 미루는 일이다. 통증으로 힘든 날을 참으며 사는 어르신께 그들을 닮은 장수와 인내의 느티나무를 만질 수 있는 기회는 특별하다.
단단하여 가구재로 쓰이는 느티나무 가지는 금칠, 은칠을 하고 연말에 꽃시장으로 나온다. 느티나무를 보여주며 새해 소망 나무 만들기 수업 내용을 소개하면 어떤 꽃 이야기 보다 흥미로워 한다. 은색과 다양한 색으로 도색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단연 금칠한 느티나무가 인기이다. 원하는 색의 나무를 연초에 쓰기 위해서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구입을 해야 한다.
몇 년 전에 느티나무 가지를 장식할 때 생화를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옛말이 되었다. 요즘 학교에서 봄 방학이 사라지고 2학기를 마침과 동시에 학년이 끝난다. 그러기에 12월 중순부터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졸업식이 열린다. 1월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졸업이 이어지고, 2월엔 대학교 졸업식이 열려 졸업시즌이 길어졌다. 예전 학사 일정처럼 2월에 한꺼번에 열리던 졸업식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졸업시즌이 되면 생화가격은 무서울 정도로 오른다. 예전엔 생화가 비싼 2월만 피하면 되었는데 이제 피할 수가 없다. 꽃대가 얇아 묶음으로 파는 소국이나 리시안샤스, 스토크 같은 화훼류는 가격이 오르다 안 되어 요즘은 양이 줄었다. 손으로 잡아 보면 안다. 대가 굵고 단단한 장미나 백합은 한 단의 양이 10대, 5대로 정해져 있어 한 단에 있는 양을 줄이지 못하고 가격이 보란듯이 올라간다.
새해 소망 나무는 화기에 오아시스를 넣고 먼저 느티나무 가지를 다듬어 꽂는다. 금 눈이 내린 듯 반짝이는 나무와 어울리는 나뭇잎 가지들을 주변에 채운다. 물론 조화로 만들어진 침엽수 모양의 가지들이다. 겨울 장식에 어울리는 소재들로 화기가 풍성하게 되었다. 미리 적은 새해 소망 종이를 리본과 함께 원하는 가지에 달아주면서 완성이다.
흔들리는 글씨체로 각자의 새해소망을 쓴 종이들이 느티나무 가지에 하나씩 채워졌다. 건강, 자손번성, 통일까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들이 담겨있다. 이름쓰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더니 영어 필기체로 사인을 한 어르신 글이 눈에 띄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 Park, J H’라는 이름을 쓰셨다. 소망도 영어로 ‘건강 for us. Very thanks ’라 쓰시며 오랜만에 자리에 긴 시간 앉아 계셨다. 지금의 날짜와 시간을 다 잊으셨지만 간절한 소망은 남은 기억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장수나무에 전하는 어르신의 소망은 간절했다.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자신의 소망이 달리기를, 한가하게 따로 서 있는 가지에 머물기를, 어디 달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소망들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을 찾아 들었다. 소망을 가득 담고 금빛을 내고 있는 느티나무 가지가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처럼 이들을 지켜주길 바라본다. 흔들리는 손으로 느티나무 가지를 만지고 화분을 풍성하게 꾸미는 동안 새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