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로하는 메리골드

오늘의 식물

by 조이 영

처서가 지나고 9월이 되었다. 복지관 주간보호센터 원예수업을 위해 꽃시장에서 선택한 소재는 메리골드이다. 아직 더위가 한창이라 가을이라 할 수 없지만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어르신께 9월을 알려야 했다. 가을이 오고 있다고. 같은 조명, 같은 사람들,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반복하는 그들에게 달려가고 있는 시간을 잡아 주기 위해서이다.

어르신들께 메리골드 한 송이씩 나눠드리며 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손이 먼저 움직인다. 평생 쓸고 닦고 하던 손은 뭐든지 손에 들면 바로 해결 하려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을 알기에 필요한 소재는 차례로 나눠드리지만 메리골드만은 너그럽게 시간을 드린다. 꽃송이도 보고 향도 맡으며 꽃 바구니에 잘 보이게 꽂아 보자고 하였다. 깃발을 세우듯 힘 주어 꽂는다.

꽃 시장에 있는 메리골드는 한 송이 크기가 아기 주먹만 하다. 양지바른 풀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얼굴을 가진 만수국, 천수국을 꽃잎이 많이 밀집되도록 개량한 품종이다. 잘 시들지 않고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이다. 큰 얼굴의 메리골드는 색과 모양이 늦가을 감나무에 먹음직스럽게 달려 있는 홍시를 생각하게 한다.

시원한 바람을 찬바람으로 느낄 때 자연은 우리에게 따뜻한 숨결을 전해 준다. 나뭇잎과 열매는 대부분 노랑, 주황, 빨강의 난색으로 변하여 사람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려 한다. 마음 속 시린 찬 기운을 덜어준다. 그 시작을 가장 먼저 하는 소재가 메리골드다. 국화, 은행잎, 잘 익은 사과, 때로는 단풍과 낙엽도 난색으로 제 역할을 하지만 단연 메리골드의 속도를 앞서지는 못한다.

메리골드는 국화과에 속하는 꽃으로 금잔화라고도 불린다.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 초여름부터 서리 내리기 전까지 긴 시간 꽃을 보여준다. 길을 걷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어 더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9월이 되어 가을 소재를 찾을 때 메리골드는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다. 해가 짧아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계절 식물인 단일식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노란색과 주황색이고 꽃송이가 커서 어르신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경험이 많지 않던 강사활동 초기, 내가 좋아하는 꽃이나 색을 수업소재로 선택한 적이 있다. 그 시절 좋아했던 꽃은 리시안샤스였다. 얇고 여린 잎들이 겹겹이 쌓여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흰색, 연분홍, 연보라빛으로 편안함을 주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신부 부케나 결혼식장 꽃 장식에 주로 사용하여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재료비가 부족하지만 어렵게 생화 장식 수업을 하려고 들뜬 마음으로 리시안샤스를 준비하였다.


수업 중 한 어르신께서 "선생님 꽃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시들시들한 거 같아" 하셨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리시안샤스를 시든 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시력이 약하고 몸이 허약한 어르신은 파스텔 색 띠며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리시안샤스에게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수업준비는 대상자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다. 그 후 원색의 꽃이나 송이가 큰 꽃, 잘 시들지 않는 꽃을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골드는 가을 초입에 꼭 만나야 할 소재이다.


메리골드는 눈에 좋은 루테인 성분이 있어 꽃차로도 많이 이용된다. 메리골드꽃차는 맑은 물빛을 은은한 노란 빛으로 변한다. 마른 꽃이 따뜻한 물에 펼쳐지면 차를 마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마음도 젖어 든다. 꽃잎이 떠 있는 찻물을 보고 있으면 눈 밝아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밝아진다. 따뜻한 빛을 가진 찻물을 입술에 대어 보면 심심한 향이 침잠한 감각을 깨운다.

메리골드는 보이는 효과만 아니라 영혼에 대해 강한 호감을 가지게 하였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고부터다. 멕시코 영화답게 영화에서 보여주는 색감은 이국적이었다. 무겁고 무서운 죽음의 의미를 메리골드 꽃과 함께 따뜻하고 밝게 이해하게 되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메리골드로 조상들의 영혼을 기억하고 위로하였다. 거리와 묘지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꽃, 지상세계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이어주는 꽃다리가 홍시색의 메리골드였다. 돌아가신 영혼의 날을 지내는 그들에게 메리골드는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듯 피어올라 늘 함께 하고 있었다.


영혼들에게 길을 내주는 메리골드 꽃잎은 나에게 더 이상 평범한 꽃이 아니었다. 길 가 한 귀퉁이에 잡초처럼 피어 있는 모습도 붉은 등불이 되었다. 야생화로 핀 메리골드꽃은 작고 미진하지만 은인들과 조상들에게 꽃길로 비추길 바랐다. 주홍빛의 꽃잎들을 가까이에서 살피며 돌아가신 분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자 속삭였다.


메리골드 꽃대를 잡은 어르신의 마른 손 얇은 살갗 밑 푸른 핏줄에 따뜻한 빛이 스며들고 있다. 그 숭고한 시간을 방해 할 수 없어 서툰 작업을 하여도 지켜만 보았다. 자유롭게 장식하여 삐뚤빼뚤한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메리골드와 몇 가지 나뭇잎으로 아름다운 꽃바구니가 완성되었다. 한 분 한 분의 꽃들이 모여 풍성하게 완성된 바구니 앞에서 한 어르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 어르신도 따라 부르며 서로 눈을 마주친다. 마주 보는 눈빛에 따뜻한 기운이 흘러간다. 오늘 우리 모두는 홍시를 닮은 메리골드와 함께 새 가을에 다다랐다. 그들의 따뜻해진 시선은 나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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