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이세벨은 아줌마가 준 엄마의 일기를 읽다가 뒤로 갈수록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에 지진이 심하게 일어났다.
“아… 아줌마… 이거 진짜 저희 엄마가 쓰신 거예요? 말도 안 돼요. 저희 아버지가 이공중이고, 에덴 STD 대표 마도시가 저희 아버지와 친구관계라니~ 그런데 엄마는 마도시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세벨아~ 그래! 그게 사실이야. 우리가 너와 엘리를 어떻게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데! 마도시는 너희 아버지의 원수야!!!”
아줌마는 과거를 떠올리다가 분노가 치밀어 오르셨는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성인이 되면 다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세벨이가 앞으로 살아갈 밝은 미래를 위한 직업선택을 위해서 또 그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 알려주려고 미리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므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줄 순 없었다. 단지 일기장만 건네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마도시가 왜 저희 아버지 원수예요?”
이세벨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너도 크면 차차 알게 될 거야. 그런데 이건 확실히 알아야 해. 지금 마도시의 자리가 이공중 너희 아버지의 자리였다는 걸! 그리고 너희 엄마는 ….”
“나훔엄마!!!!!! 어디 있어! 꼬미가 토하고 난리야~ 나훔엄마!!!!”
“꼬미가? 네네 가요!!!! 아무튼 세벨아~ 너는 꼭 에덴 STD에 들어가야 해! 경사도 경사지만 너희 아버지를 위해서!”
아줌마는 아저씨의 부름에 미처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얼른 발판을 타고 내려갔다.
‘우리 아버지 자리를 마도시가? 그럼 내가 재벌 중의 재벌이었다는 소리잖아?’
이세벨은 엄마의 일기장을 앞에 내려놓고 갑자기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크기의 방과 낡은 책상, 울퉁불퉁한 침대, 과거 유물인 트랜스포머폰과 고아원에서만 쓸법한 거울옷장이 보였다. 그리고 설거지로 부은 손도.
‘내 삶을 마도시가 뺏은 거야?’
이세벨은 원래 내심 마도시를 존경하고 있었다. 지구종말 위기에서 대한민국 인구의 오분의 일을 살려낸 영웅이었고, 과거 200년보다 지구종말 후 20년 동안 눈부신 과학기술을 일으킨 선구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마도시를 마음에 심으며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소돔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커서 꼭 마도시를 만나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열망에 고아원에서 잡다한 일을 도우며 버텼었다.
하지만 재벌들의 집합체인 소돔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꿈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는데, 부자들과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이세벨이 감당하기에는 심적인 부담이 컸었다. 그래도 마도시가 가끔씩 회자될 때마다 ‘언젠가 살면서 만나겠지. 나도 마도시처럼 자수성가해서 만나야지.’라는 작아진 소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마음속의 우상을 깨뜨려야 한다니.
‘아버지의 원수, 아버지의 원수라니…. 나도 소돔 학교의 아이들처럼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는데, 그게 다 마도시 때문이었어….’
이세벨의 그 힘들고 지쳤던 눈에 독기가 올라오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동안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버텨왔는데.’
이세벨은 엄마의 일기장을 계속 읽었다. 앞 쪽에는 꿈과 행복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뒤쪽에는 이세벨을 분노하게 하는 내용들만 기록돼 있었다.
“하아! 허!!!!!”
지금은 엄마의 존재를 처음 알았지만 그리워할 때가 아니다. 삶을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증오를 그동안의 존경과 바꿔야 하기에 처절하게 미움을 마음에 심고 또 심어야 했다.
‘2222년 3월 20일 오늘은 공중씨가 땅 위에 훈련된 비둘기를 올려 보냈다. 저번에 보낸 비둘기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지만 오늘 보낸 비둘기는 씨앗을 하나 물고 왔다. 씨앗에 묻어있는 흙을 분석해 보니 건강한 토질의 흙이었고, 씨앗은 백향목이었다………드디어 나갈 희망이 보인다. 지구종말이 있고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우리 공중씨의 지구종말이론이 놀랍다.
2222년 4월 6일 ……마도시씨가 이상해졌다. 지구종말이론을 자기가 찾아낸 거라며 주장하고 있다. 공중씨와 평생 싸우지 않던 사람이 무슨 일인지 갑자기 변했다. 혹시 유나 씨와 잘 되어가지 않는 걸까?
2222년 4월 30일 산성의 유나 씨가 펑펑 울었다. 위로해 줄 입장은 되지 않지만 공중씨를 마음에 담아놨었나 보다… 유나 씨에게 미안하다.
2222년 7월 7일 드디어 지하벙커에서 나가는 날이다. 공중씨가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기술들이 빛을 볼 시간이다. 공중씨가 기획하고 도시씨가 보조한 공중도시도 실현이 될까? 너무 기대된다…………지구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얼른 나가서 공중씨와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고 싶다. 배가 불렀지만~ 하하하 뱃속의 나의 아가도 궁금하다. 지구종말처럼 응애응애 울다가 나오겠지! 귀여운 내 아가~ 곧 만나!
2222년 7월 10일 화가 난다. 마도시가 유나 씨와 결혼발표를 하고 난 뒤,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공중씨가 지하벙커에서 개발하고 만들었던 것을 산성, 그러니까 지금은 에덴 STD에서 마도시가 관리하는 조건으로 공중씨에게 지상에서의 삶을 약속했다. 아무래도 협박을 당한 것 같다.
2222년 7월 12일 공중씨가 죽었다. 통보를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남은 건 공중씨의 유품밖에 없다. 로봇경찰에게 들어보니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라고 한다. 말도 안 돼.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며 건강식만 챙겨 먹는 사람이었는데…수상하다. 죽을 것 같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직접 알아봐야겠어….
2222년 7월 15일 마도시 짓이다!!! 마도시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일기 속 엄마의 증폭되는 감정이 이세벨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세벨은 너무 충격을 받았는지 갑자기 눈이 충혈되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 모든 것을 빼앗은 당신! 용서하지 않겠어!!!!!”
분노가 마음속에서 스며들지 못하고 급속도로 차는 바람에, 이를 감당하지 못한 이세벨은 앉은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불덩이가 된 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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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벨아~ 이세벨! 언니!!!!!!! 엄마! 엄마!!!”
엘리가 세벨이의 볼을 톡톡 치고 있었다. 하늘광장에서 가득 담아 온 구름빵과 꽃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언니에게도 챙겨주러 왔다가 쓰러진 이세벨을 발견했다. 항상 건강했던 이세벨의 극도로 아픈 모습에 당황한 엘리는 엄마를 외쳤다. 만병통치약인 엄마~
나훔엄마는 엘리의 다급한 외침에 금세 오셔서 세벨이의 상태를 보고 놀라셨다.
“이마가 너무 뜨거워!!!”
나훔엄마는 앞치마에서 바로 해열제를 꺼내 세벨이에게 먹였다. 많은 아이들이 수시로 아프다 보니 나훔엄마의 앞치마는 약방과도 같았다.
“세벨아! 세벨아!!!! 안 되겠다. 엘리~ 식당 가면 수건 있으니까 수건에 찬물 적셔서 가지고 오렴.”
놀란 엘리가 한걸음에 찬물이 똑똑 떨어지는 수건을 가져와 세벨이의 이마에 올렸다. 이세벨은 이내 곧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
“아… 아줌마….”
“으흑 우리 세벨이 충격받았구나. 아직 어린아이인데…. 내 잘못이야 내 잘못. 흑흑!”
나훔엄마는 정신이 든 세벨이의 모습에 한시름이 놓였지만, 엄마의 일기장을 너무 성급하게 준 건가 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언니가 왜 충격받았어? 이건 뭐야?”
엘리는 이세벨 옆에 있는 낡아 보이는 두꺼운 공책을 가리켰다. 이세벨은 열 때문에 어지러운 와중에도 엄마의 일기장을 손으로 가리며 이불속에 급히 숨겼다.
“손대지 마!”
나훔엄마는 엘리에게도 이야기하려 입을 열었으나 예상치 못한 이세벨의 반응에 입을 닫고야 말았다. 순간 차가운 이세벨의 반응에 엘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 학교에서나 고아원에서 사고 치느라 언니에게 막대하면 막대했지, 언니가 먼저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 언니 많이 아프니까 쉬고 있어. 나는 내 방으로 갈 테니까 필요하면 불러! 엄마랑 언니! 이거 구름빵이랑 꽃과자 먹어! 아 맞다! 엄마 나 오늘 직업상담했는데 말이지~~.”
엘리는 작은 가방에서 구름빵과 꽃과자를 꺼내어 엄마와 언니 앞에 두었다. 그리고는 나훔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상담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이야기해 봐~~ 너 또 사고 친 거 아니지? 내가 그동안 너랑 나훔이랑 사고 친 것만 생각하면 조마조마해~ 해당되는 직업이 있기나 한 거야?”
나훔엄마는 모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신다. 특히 엘리의 붙임성에 진짜 자기 딸처럼 대하신다. 혼내는 것도 거침없이, 칭찬도 거침없이! 나훔엄마에게 이세벨은 장녀 같은 느낌이라면 엘리는 막내 같은 느낌이었다.
“아냐 엄마! 내가 무슨 리더감 이래! 하하하.”
“공부를 제대로 했나~ 시험을 제대로 봤나~ 그러면서 무슨 리더감이야~.”
“오오~ 엄마 예리해~~~ 그래서 매주 상담받아야 한대! 다른 애들은 다 나왔는데 나만 이래~.”
“어이구~ 그러니까 공부하라 그랬지! 언제까지 고아원에 있을 거야~.”
“엄마랑 아빠랑 평생 살지 뭐~ 헤헤헤!”
엘리는 나훔엄마의 품에 아무렇지 않게 안겼다. 자주 안긴다. 이세벨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안긴 게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자신의 부모님이 아니기에 고아원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고 쓸모가 있어야 보살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엘리는 자신과 달랐다. 아이들과 싸우고 밖에서 사고를 쳐도 나훔엄마와 나훔아빠는 혼내고 또다시 사랑해 주었다. 하지만 아줌마, 아저씨는 자신을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엘리와 아무리 쌍둥이 자매간이라고 하지만 이엘리는 아줌마, 아저씨의 친딸이고 자신은 혼자인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나 혼자 있고 싶어….”
이세벨은 차가워진 눈빛으로 등을 돌렸다.
“아~ 미안미안! 너무 눈치 없었다. 나 진짜 내 방으로 갈게! 이거 꼭 먹어! 하늘광장 갔다가 받아온 거야. 음료수 분수도 있었어! 그건 가지고 올 수 없었지만~ 아쉬워! 다음에는 물통을 가져가야겠어! 아! 그리고 거기 마도시가 나와서 공중도시 연다고 광고하더라.”
“마도시? 에덴 STD?”
엘리가 일어나면서 하늘광장에 다녀온 일을 지나가듯 이야기하자 나훔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이세벨도 엘리의 말에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아까 일기장에서 본 듯했다.
“공중도시?”
“응! 언니님이 궁금하시구먼! 역시 전교 1등! 기다려봐 보여줄게!”
이엘리는 트랜스포머폰을 켜서 하늘광장의 영상을 찾아 띄웠다. 폰에서 나온 홀로그램이 엘리가 하늘광장에서 본 그대로를 재연했다. 이세벨은 단 하나의 장면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아빠의 공중도시를 감히!!!!!’
보면 볼수록 열이 받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 쿵 내리쳤다.
“언니가 봤을 때도 대단하지? 그래서 말인데~ 엄마! 나 목표가 생겼어!”
엘리는 이세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하며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
나훔엄마는 엘리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에덴 STD에 들어갈 거야! 그래서 공중도시를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 거야!”
“나도 에덴 STD에 들어갈 거야! 그래서….”
엘리가 말하자 세벨도 바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다.
“뭐라고? 앗! 언니 얼른 누워야겠다! 쉬어!”
“그래! 둘 다 에덴 STD에서 일해야지! 꼭 그래야지… 그래야… 너희 부모님이…흠흠, 아무튼…세벨아~ 엄마도 아니 아줌마도 이제 갈 테니까 필요하면 부르렴!”
나훔엄마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엘리와 함께 세벨이의 방에서 나갔다. 세벨이는 나훔엄마가 신경 쓰이기보다는 엘리가 보여준 공중도시가 신경이 쓰여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도시… 당신이 혼자 설계하고 계획했다고?’
멈출 수 없는 미움과 분노에 열 기운이 더 뜨겁게 세벨이를 짓누르자 이내 머리를 떨구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까 엘리가 듣지 못했던 뒷말을 뱉었다.
“…그래서 공중도시를 없애 버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