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시에게 심판을 - 마지막 심판(1)

-살인하지 말라 1-

by 이야기소녀

2241년 12월 30일 목요일


1 지구 기업지구와 2 지구 쇼핑과 문화지구는 거의 90프로가 거대인간로봇에게 아작이 났다. 하지만 거주지 중에는 열 가구 당 한 가구 꼴로 그나마 멀쩡한 집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난국인 사태에 사람들은 집주인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멀쩡한 집에 쳐들어가 기본의료기계로 치료를 받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한편 공중도시병원에는 다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 병원은 1층 밖에 없지만 꽤 넓기 때문에 건물 아래 깔리거나 거대인간로봇에게 밟혀 상태가 심한 사람들은 모조리 다 공중도시병원으로 옮겨졌다. 엘리와 요나 또한 상태가 심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요나가 해킹한 운반로봇과 날개로봇으로 어디에 깔렸는지 확인하고 알림에 따라 이동하여 실어 날랐다.


“이 분 곧 숨이 멎을 것 같아. 얼른 파나에 치료를 받게 해야겠어.”


엘리와 요나는 공중도시병원 안 제일 끝에 있는 큰 병실로 들어갔다.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는 파나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번 눈이 멀고 입이 닫혔을 때 파나가 소용이 없었던 이유는 파나가 초미세로봇을 질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로봇이라고만 인식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피부가 심하게 찢어지고 장기가 손상됐기 때문이었다.


“저…저 사람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파나가 있는 크고 넓은 병실에 다친 사람을 눕히는데, 파나 오른쪽 시작점에 불을 피워놓아 불 사이로 다친 사람을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환자가 오른쪽에서 왼쪽, 타원형으로 옮겨지는 과정 중에 치료가 되어서 말짱해지면, 왼쪽 끝나는 지점에서 걸어 나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바로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신이 노하신 거야! 너희도 엎드려!"


사람들은 파나 왼쪽 끝지점에 큰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절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살려주세요~."

“헙! 왜들 저래?”

“엘리! 우선 이 분 파나에 눕히자~.”


엘리는 황당했지만, 요나의 말에 숨이 멎을 것 같은 환자를 얼른 파나에 눕혔다.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처럼 파나에 누워 있었지만, 파나 속에서 나오는 치료광선들과 물질들로 인해 곧 치료가 되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치료가 끝나고 금송아지를 보더니 앞사람들과 똑같이 절하기 시작했다.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으흑흑~ 제발 살려줘요~~~.”

“금을 더 내놓을 테니 그 미친 여자를 없애주시오!!!”


각자의 소망이 담긴 말을 금송아지에게 하고 있었다.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건가….”

“그래도 그렇지 아무 생명이 없는 금에게 살려 달라니~ 이게 말이 돼?”


엘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혼자 병실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반대편 병실에서 어떤 남자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봤던 목소리야!"

엘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 당신~ 우리 딸이 정말 기특하게 잘 자랐어~ 당신도 봤어야 했는데! 우리 딸이 모든 걸 정리해 줄 거야.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종말을 선사해 주고, 나를 다시 신처럼 여기는 세상을 줄 거라고~ 하하하! 인간세상은 반복되고 또 반복될 뿐이야~ 욕심에 젖은 인간들은 돈만 많아지면, 항상 똑같이 나를 누르려고 해~ 자글자글한 죄인들을 심판하는 우리 딸. 당신이 얼른 깨어나서 봐야 하는데~ 아니야! 깨어나면 나를 버리려나? 그럼 깨어나지 마!”


‘무슨 이상한 소리야?‘


보통 정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에 엘리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우리 딸? 무슨 소리지? 내용을 들어보니 이세벨을 뜻하는 것 같은데?'


“엘리!!! 거기서 뭐 해?”


요나는 엘리를 뒤따라 나오다가 반대편 병실문에 귀를 대고 있는 엘리를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불렀다.


“야~ 조용조용!”


엘리가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병실은 이미 사람의 말소리가 잠잠해졌다.


“아~ 모르겠다! 실례합니다!!!!! 엇!!”


병실에는 침대에 누워서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한 50대로 보이는 여인만이 누워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병실을 지키는 케어로봇이었다. 엘리의 두 눈은 아까 들었던 목소리의 남자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방금 남자분 계시지 않았어요?”

“여긴 이 분과 저 둘 뿐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케어로봇은 엘리의 말에 대답을 했다.


“아~ 아니에요~.”

엘리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착각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생각 하나가 번뜩 지나갔다. 영상에서 본 얼굴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케어로봇에게 물었다.


“저 여자분 혹시 성함이 김유나 씨인가요?”

“네! 맞습니다! 문병 오셨습니까?”

엘리는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엘리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무단침입입니다. 무단침입입니다. 신고하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금방 나갈 겁니다. 엘리!!! 얼른 와~~.”


요나는 케어로봇의 경고에 엘리에게 오라고 급히 손짓했다. 엘리는 다시 김유나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병실을 나섰다.


“이상해! 내가 분명히 들었단 말이야~.”

“뭘?”

“김유나 남편!”

“김유나? 아까 누워있던 분?”

“그래!”

“김유나 남편이 누구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엘리는 눈에 힘을 풀지 않고 황금실 문 앞을 째려보며 크게 말했다.


“마도시! 에덴 STD의 대표 마도시!”




2241년 12월 31일 금요일


이제는 창세기 도시의 사람들도 모두 다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훔이 가나안 인터넷에 남긴 ‘공중도시의 실체’라는 글과 공중도시에 친척들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의 게시글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게시글들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 없이 가볍게 지나갔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공론화가 되어 심각해졌다.

그래서 창세기 도시에서는 공중도시에 경찰로봇이나 병력을 보내려 애를 썼지만 도무지 그 높이를 올라갈 수 있는 도구가 없었다. 지구종말 전 그러니까 2000년대에는 비행기나 헬리콥터, 드론이 있었지만, 2150년대 즈음에는 순식간에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지하교통시스템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행기나 헬리콥터, 드론 등 공중을 날아다니는 교통들이 퇴보하며 사라졌다. 아무래도 공중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위협으로 공중교통들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서 그때부터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이 도태되었었다.

하지만 현재 2241년, 신예 과학자들에 의해 하늘을 나는 과학기술을 만들어내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대한민국에서 하늘을 나는 핵심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은 공중도시에 있는 에덴 STD 뿐이었다. 지금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해 만들기란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창세기 도시 사람들은 그저 공중도시를 올려다보며 안전하길 바라는 기도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엘리(1)

“요나~ 이제 큰 부상을 당한 중증의 사람들은 얼추 다 옮겼으면 언니를 찾아야 돼.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엘리와 요나는 꼬박 하루 동안 거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공중도시병원으로 데려다 놓았다. 엘리와 요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여 이제 길거리에는 쓰러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건물들의 잔여물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엘리와 요나의 이자는 부서진 건물 위를 지나느라 흠집이 나기도 하고 많이 닳기도 했다.


“엘리~ 이세벨을 찾았다고 쳐. 해결할 방법 있어? 너 엊그제 이세벨 만나놓고 아무것도 못했다며~.”

“맞아~ 그래도 언니를 멈추고 집으로 데려가야지!”

“무슨 수로? 아주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어떻게 멈추고 데려갈 건대?”


요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엘리는 언니와 함께 가나안 고아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저번에 언니를 만났을 때, 자신과 다른 마음이었던 언니가 생각났다.


“하아~ 언니를 어떻게 한담~.”

“이세벨이 이 심판을 일으킨 목적이 뭔데?”


요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엘리에게 제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야~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찾아서 복수하는 거지! 앗!!”

“게임할 때랑 막판에 공부할 때는 그렇게 똑똑하더니~ 항상 본질을 생각하라고~.”

“오오~ 요나오빠님은 천재!”

“훗!”


엘리는 요나의 말에 마도시를 떠올렸다. 어제 병원에서 본 김유나도 같이.


“나는 어제 분명히 마도시 목소리를 들었으면서 왜 이렇게 헤매지?”

“그건 네가 피의 복수보다는 이세벨과 함께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해서 그래~.”

“그런가…….”


공중도시에 재입성하기 전 나훔엄마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원수 마도시, 이세벨이 공중도시에 오게 된 계기인 마도시. 이쯤 들었으면 자동적으로 연상이 될 법도 한데 말이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풀이 죽어! 마도시를 찾을 방도는 현재로선 없으니까 너 말대로 이세벨에게 갈 수밖에 없겠다. 음….”


요나는 엘리에게 힘을 주려다가 자신도 급 다운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여기서 죽음을 맞이할지 아니면 살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 우리 다 죽어요! 밖에 저 하늘 위에!”


함께 부상자들을 나르던 한 아저씨가 이자를 타고 헐레벌떡 들어오셔서는 겁먹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고, 엘리와 요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직접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늘에는 검은색 글씨들이 떠 있었다.


‘오늘 심판 주제는 ’살인하지 말라 ‘야~ 안 알려준 것 같아서~ 한 오 분 뒤에 봐요~.’


“살인하지 말라?”

“악!!!!!!!!! 난 살고 싶어!!!!”

“도망 가!!!!”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그동안의 심판들은 계명 그대로의 내용과 속뜻을 포함해 행해졌기 때문에, 이 ‘살인하지 말라’가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공중도시병원 안에 있던 사람들도, 거주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자의 덮개를 닫고 미친 듯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엘리와 요나는 이 갑작스럽게 펼쳐진 광경에 당황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서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보통 구석진 곳에 숨기도 했고, 공포가 극도로 온 사람들은 이자를 타고 땅으로 그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이자들 이삼 백여 개 정도가 우후죽순 떨어지고 있었다. 엘리는 너무 놀랐다.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이자를 타고 땅으로 내려가다니.'

맨 땅에 부딪치는 순간 이자 안에서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복잡함 속에서 요나는 집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요나! 나는 괜찮으니 가족에게 돌아가~.”

“하아~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네. 엘리! 너도 같이 가자!”

“안 돼. 나는 언니를 만나야 해. 내 유일한 피붙이잖아. 어서 가!”

“엘리…그럼 혹시 내가 필요하면 꼭 연락해!”

“응! 고마운 내 친구!”


요나는 미안해하며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엘리는 홀로 무지개 분수대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죽더라도 언니에게 한 마디라도 해보자!'


드디어 정해진 시간 5분이 지났다. 이제 심판의 시간이었다.

그때 다섯 사람이 서 있을 법한 넓이의 동그란 판이 무지개 분수대 위에 둥둥 떠오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위에는 어두운 무언가가 있었는데, 까만 머리에 까만 모자를 쓰고 까만 입술에 까만색의 벨벳 원피스를 입고 까만 실크장갑을 끼고 까만 지팡이를 짚고 까만색 가면을 쓴 이세벨이 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다소곳이 웃으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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