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 2-
이엘리(2)
“호호호~ 오늘은 가관이네. 혼자서 죽는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그럼 첫날부터 이 심판으로 쭉 갈걸 그랬어~ 다 들리지? 아! 아! 아!”
이세벨이 소리를 크게 쳤다. 공중도시 전역에 울릴 강도로 아주 크게~
“살인하지 말라! 듣고 있어? 응? 직접 사람을 죽인 사람한테만 말하는 게 아니고, 마음속으로 죽인 사람도 이 심판에 포함 돼! 다 설명해 주고 나 정말 친절하지? 그런데 사람을 직접 죽인 사람도 있어! 그 사람은 내가 직접 심판하러 갈 테니까 걱정 마~ 호호호~ 뭐라고? 응?”
이세벨은 지팡이를 짚은 반대편 손으로 자신의 귀에 갖다 대며 귀를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 누가 나 대신 심판을 해주겠다고? 오오~ 친절도 하셔라~ 그런데 누가?”
이세벨은 궁금한 표정을 짓다가 무엇을 보고는 씩 웃었다.
“저기 보인다. 내 대리 심판자!”
식당에서 쓰일 법한 칼들이 무리를 지어 공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공중도시에서 쓰이는 모든 칼들인 것 같았다. 이세벨은 칼들이 돌진해 옴과 동시에 공중으로 더 높이 올라가 서서히 공중도시를 크게 돌며 사람들이 있는 곳에 칼들을 다스리며 누볐다.
“죽여~ 죽여라~~~ 호호호!”
분수대에 있었던 사람들은 날아오는 칼들의 등장에 식겁해 반대편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그나마 멀쩡한 건물에 숨기도 했다.
“이자가 더 강해. 저 칼이 뭐가 무서워~ 참나~.”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덩치 큰 남자가 신형 이자 안에서 이자가 자신을 지켜줄 거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피하세요! 얼른요!”
“너나 피하세요!”
엘리는 덩치 큰 남자를 부르다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칼들을 피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저 칼들의 속도라면 이자를 파손시키고 뚫을 수도 있어. 저 아저씨 어떻게 해?’
엘리는 달리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방금 덩치 큰 남자와 이 남자같이 버티던 사람들은 이자 안에서 칼에 관통을 당해 숨이 멎거나 살이 깊이 파여 심하게 다쳤다.
“으아아악 살려줘!!!! 으웁!”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살아있는 칼들은 타깃을 정하면 건물 안이라도 따라 들어갔다. 이자를 관통한 칼은 스스로 빠져나와 바로 다른 타깃을 쫓고 있었다. 엘리 뒤에도 엘리를 뚫으려는 긴 칼이 바짝 붙어서 오고 있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겠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돼!!!’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본질!’
엘리는 우선 확인해야 했다. 일단 요나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요나야~ 미안한데 정말 중요해. 지금 분수대 해킹해 줘.”
요나는 가족들과 함께 숨어 있으면서 엘리의 부탁에 분수대를 해킹하려 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이세벨 편에는 피유다가 해킹을 하고 있었어서 그런지, 그 방어벽을 뚫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됐어? 아니라고? 얼른!!!”
엘리의 이자에 칼이 닿을락 말락 했다. 요나가 씨름한 결과 드디어 해킹에 성공했다.
“됐다고? 언제 해킹당할지 모르니까 빨리 말하라는 거지? 알았어! 내가 말하면 분수대 물을 뿜어야 해! 아니! 평소처럼 말고 위로 일단 뿜어보라고!”
엘리는 다시 분수대를 향해 가까스로 칼을 피해 돌아가면서 칼의 움직임을 살폈다. 엘리가 분수대를 지나고 나서 칼이 분수대 물을 지날 타이밍에 요나에게 외쳤다.
“지금이야!”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칼을 감쌌다. 그러자 칼이 점점 힘을 잃다가 결국은 땅으로 떨어졌다.
“야호! 그럼 그렇지! 저 칼도 기계일 뿐이라고! 요나야! 무지개물의 빨간 성분을 없애고 지금 공중도시 전역으로 뿌려~ 빨리! 사람들을 구해야 해!!”
요나는 엘리의 말에 무지개 분수대에 남아있는 빨간 성분을 없애고 본래 성분인 무지개색 물로 공중도시 전역에 뿌렸다. 그러자 사람들을 살인하려고 쫓고 있던 칼들이 힘을 잃고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동그란 판을 타고 공중을 날고 있는 까만 이세벨이 무지개분수물이 공중도시 전역으로 떨어지는 광경에 흠칫 놀랐는지 재빨리 칼들을 조종하는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피유다에게도 명령했지만 피유다도 어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타고 있는 동그란 판도 무지개물에 닿아 떨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세벨은 이를 악물고는 동그란 판이 최대한 땅에 떨어지기 전에 1 지구로 들어가 버렸다. 이자는 무지개물에 닿아도 상관없게 만들어졌기에 이세벨이 만든 원판과는 차원이 달랐다.
“언니! 언니!!!”
엘리는 이세벨의 행동을 보고 1 지구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언니가 어디 갔지?’
1 지구에 들어왔는데 언니의 흔적이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에덴 STD로? 거기는 무너졌는데?’
엘리는 에덴 STD이 있는 건물 쪽으로 가기 위해 다른 회사 건물들을 지나쳤다. 에덴 STD에 도착했다. 역시나 그곳에는 언니가 타고 있던 동그란 판이 땅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금 에덴 STD 건물은 위층과 중간층들이 부서져 잔여물들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엘리는 서성이며 둘러보는데 이자로 진입을 불가능했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밖에 없었다. 엘리는 이자에 내려 들어갈 수 있는 만큼만 들어가 보았다.
“언니는 어디 간 거지? 더 이상 공간이 없어!”
엘리는 폐허가 된 에덴 STD 건물 속에 멈춰 서서 혼란스러워했다.
이세벨
“여기 잘도 숨어 있었네. 여기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이세벨은 칼들을 부리던 중 피유다의 해킹에 드디어 마도시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마도시를 처벌하러 가던 중에 공교롭게도 무지개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이세벨이 타고 있던 동그란 판이 땅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상태가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덴 STD 건물에 무사히 착륙한 이세벨은 1층으로 들어와 ‘지하’라고 외쳤다.
지하는 생각보다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그동안의 에덴 STD 개발품들이 빽빽하게 진열 돼 있었다. 길이 나 있는 오른쪽으로 꺾으니 기다란 책상이 나왔고, 그 책상 끝에는 그렇게 너무나 증오했던 마도시가 앉아있었다. 자신과 같은 하얀 피부에 똑같은 눈 밑 점.
마도시는 활짝 웃으며 일어나 박수를 쳤다.
“오~~ 대단해! 아주 훌륭한 솜씨야!!!”
이세벨은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보지? 역시 뻔뻔해!'
그동안 자신이 이곳에 오려고 한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감정에 못 이겨 마도시에게 지팡이를 겨냥한 채로 뛰어갔다. 그 지팡이 끝에는 칼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 죽어!”
그때 누군가가 이세벨의 지팡이를 쳐서 날려버렸다.
“아니~ 강가인 네가 왜? 피유다 너까지?”
강가인이 마도시가 앉아 있던 벽 뒤에서 나타나 이세벨의 지팡이를 발로 차버렸고, 이와 동시에 피유다는 이세벨을 움직이지 못하게 뒤에서 잡았다.
“놀랐나 보네~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지. 강가인과 피유다~ 우리 회사와도 친분이 있는 자제들이고 말이야. 소돔 학교에서 어느 순간부터 널 따르지 않았니? 하하하하!”
마도시는 피유다에게 손짓하자 피유다는 이세벨을 강제로 의자에 앉쳤다.
“66번지 거대인간로봇 사용을 아주 잘하더구나~ 하하하!”
“뭐? 그럼 당신이? 마도시! 우리 아버지의 원수!!!”
“그럴 리가~ 너희 아버지가 누군데?”
“누구나니! 네가 죽이고도 몰라? 너 때문에 나의 삶이 망가졌어. 너의 자리에 우리 아버지가 계셨다면 내가 그런 고생들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열등감, 패배감,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을 거라고!!!!!!”
이세벨은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 채, 속에 있는 말들을 토해냈다. 하지만 마도시는 미소를 띠며, 이세벨이 하는 말을 잠잠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죽인 사람은 많지. 그런데 난 너희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어~”
“뭐?”
이세벨은 분노해서 일어나려 했지만 피유다가 제지해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네 아버지인데 내가 나를 죽이겠니? 하하하하하!”
“뭐?”
마도시의 말에 이세벨은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멍해졌다.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자그마한 의심이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알아듣겠어? 그리고 이 까만색 좀 지워!”
“…”
마도시는 작은 물병을 가져다가 이세벨의 머리 위에 부었다. 까맣던 이세벨의 머리색이 본연의 색인 은색으로 돌아왔다.
“보면 몰라? 머리색, 피부색, 얼굴 생김새, 그리고 똑똑한 두뇌까지. 네가 내 딸이 아니고서야, 누가 내 딸이겠어?”
이세벨은 마도시를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책상에 비취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봤다. 그제야 자신이 왜 마도시에게 끌리는지 알 수 있었다.
“하! 그럼 내 존재를 알았으면서 왜 데려가지 않았지? 왜!!!!”
“너를 버리려고 했으니까~ 내 앞길에 누구라도 방해가 되면 그때는 다 죽이는 시절이었지. 하하하~ 그런데 고맙게도 김선규, 최다솔이라는 과학기술원 행정직원 부부가 키워주더구나. 너희 고아원 원장부부 말이야. 그 정 많고 앞뒤 상황도 모르는 얼뜨기들. 피붙이라 그런지 호기심에 관찰했더니 너는 꽤 재능이 있었지. 아주 놀라웠어~ 그래서 내가 친히 널 테스트한 거 아니겠니? 하하하!”
이세벨이 보기에 마도시와 자신은 웃는 것까지 비슷했다.
‘나를 버리려고 했다고?’
이세벨은 화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치밀어 올랐다.
‘버리려고 했는데 이제는 필요할 것 같으니까 테스트를 해봤다고?’
“참나! 웃긴 소리 하지 마. 내가 너의 테스트에 응할 것 같아? 지금 나를 죽이던지 마음대로 해!”
“내 딸~ 섭섭하게 무슨 소리를~ 넌 이미 내 후계자로 정했어. 테스트에 아주 잘 통과했다고~ 그렇지 않니 얘들아?”
“맞습니다. 대표님!”
“이세벨 아가씨는 최고죠!”
“무…무슨 소리야!!!”
마도시는 강가인과 피유다를 향해 눈짓을 하자 피유다가 말을 꺼냈다.
“대표님은 아가씨의 두뇌와 복수심을 이용해 이 공중도시를 어떻게 무너뜨릴지의 테스트를 하셨습니다. 에덴 STD에서 스카우트를 했고, 혼자서는 힘들 수 있으니 저희들을 아가씨 곁에 붙여주셨죠.”
이세벨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마도시는 다시금 강가인과 피유다에게 손짓하자 강가인과 피유다가 이세벨의 지팡이와 해가 될 만한 것들을 뒤져 마도시에게 반납하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 어때? 이제 전 세계 1위 상속녀가 되는 거야~ 과거의 구질구질했던 고아 이세벨은 버리고 에덴 STD를 물려받을 상속녀가 되자고~ 하하하!”
이세벨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오묘했다. 방금 전까지 냈던 화의 종류가 아니었다. 에덴 STD는 전 세계적으로 가히 최고의 기업이었고, 마도시 아래로 몇 십 개의 나라들이 굽신거리는 그런 거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창세기 도시 내에 마도시에게 반기를 드는 몇몇 그룹들이 있지만 말이다.
이세벨은 자신이 상속녀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다는 즐거운 상상이 들었다. 그런데 최다솔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훔엄마가 떠올랐다.
“그럼 김유나가 내 엄마야?”
이세벨은 천천히 입을 떼며 물었다. 마도시는 눈을 깜박 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김유나가 왜 네 엄마야? 네 엄마는 죽었어~.”
“뭐? 김유나가 당신 아내라면서! 그런데 왜 내 엄마가 죽어?”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나한테 방해가 되는 사람은 다 죽였다고. 네 엄마가 그중에 하나였지. 하하하하!”
“하!”
이세벨은 기가 찼다. 자신보다 더 악랄한 사람을 만났다. 끔찍하게도 그 사람이 자신의 아빠 마도시였다.
“네가 아빠라고 믿고 있던 이공중, 내가 왜 죽인 줄 알아?”
“…”
“나보다 더 똑똑했으니까. 쓸데없는 일을 굳이 하려고 했으니까.”
“쓸데없는 일?”
“그래~ 개발시킬 필요가 없는 지역까지 형평성을 유지한답시고 쓸데없이 돈을 들이려고 한 일이지. 그놈이 있으면 나는 항상 이인자로 있어야 했어. 그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열등감을 느꼈던지~ 매번 진 느낌이 들고 그놈의 모든 것이 다 싫었어! 그런데도 그놈은 지구종말 이론을 같이 발표하자고 하고, 공중도시 계획을 내 이름과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들어보자고 하더군. 그런 어쭙잖은 동정심 때문에 짜증이! 하아! 아직도 화가 치밀어! 지가 뭔데! 사랑 많은 척하는 그놈이 짜증이 난다고! 그놈은 가치 없는 사랑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놓친 바보였으니까 죽어도 싸! 죽어도 싼 놈이었다고!”
마도시는 과거를 떠올리다가 급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하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세벨은 이 말을 들으면서 마도시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야.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짜증 나~’
“흠흠~ 흥분해서 미안하다. 그놈만 생각하면 내가 아직도 이성을 잃어버린다니까. 하아~ 이세벨, 내 하나밖에 없는 딸! 그래서 너는 상속녀의 길을 선택하겠니?”
마도시가 금세 흥분을 가라 앉치고 부드럽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 내 아버지는 마도시가 아니라고!”
그때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개발품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튀어나왔다.
이엘리였다. 마도시는 놀라운 눈빛으로 이엘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곧 기분 나쁘다는 표정과 눈빛, 목소리 등등 마도시의 모든 것에서 혐오가 분출되는 듯했다. 마치 방금 전과 같이.
“오~ 이공중의 딸! 실제로 그 인간과 보기 싫을 정도로 판박이군~ 우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