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중과 마도시의 전말(1)

by 이야기소녀


“이엘리! 네가 어떻게 이곳에….”


이세벨은 엘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흠칫 놀랐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단지 피붙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코 케이크 속에 있던 초미세로봇을 삼키지 못하게 하려고 광고로봇에게 엘리만은 제외시켜 놨었다. 그리고 피붙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적부터 느꼈던 불편한 감정을 억제하며 대면대면하게 지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래! 나는 이공중의 딸이야. 그런데 왜 내 아버지를 당신! 마도시라고 하냐고!”


엘리는 마도시가 두렵지도 않은지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며 크게 소리쳤다. 마도시는 손수 일어나 이세벨이 앉은자리를 지나치며 엘리를 위한 의문쩍은 짧은 마중을 나갔다. 몇 걸음 되지도 않지만, 엘리 앞에 서서 환영하는 인사를 하고는 책상 중앙에 있는 아주 작은 버튼을 누르면서 엘리에게 윙크를 날렸다. 엘리의 미간은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마도시가 그 버튼이 누르자마자 그 앞쪽에 있던 진열대들의 문들이 하나씩 닫히면서 하나의 큰 화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엘리가 가장 보고 싶어 할 만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



“마도시! 이 그래프를 봐. 화산들의 활동이 불규칙해졌어. 앞서 증후 없이 터진 화산들이 신호탄이 되어, 전 세계 화산들이 일제히 한날한시에 터질 거야. 그와 동시에 약한 지반도 터지면서 깊숙이 있던 지구의 핵도 터져 나오겠지. 그럼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지구 종말? 설마!”

“설마가 아니라 진짜야! 마도시! 우리가 이걸 발견했어!”

“무슨 소리야~ 너 혼자 찾은 거지. 괜히 날 끌어들이지 말라고~.”

“네가 준 화산폭발 데이터들이 아니었으면 찾지 못했을 거야! 친구! 우리 이걸 얼른 정부에 알려야 해!”


이공중은 마도시의 어깨를 얼싸안으며 자축을 벌였지만 마도시는 뜨뜻미지근한 표정이었다. 마도시는 이공중의 손을 자신의 어깨에서 내려놓으며 물었다.


“우리의 의견은 존중받지 못할 거야. 누가 신예 개발자의 말을 믿어주겠어.”

“밑져야 본전이지! 하늘이 믿어줄 사람들을 붙여주실 거라고. 지구가 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는데, 또 살아남도록 이끌어주시지 않겠어?”


이공중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마도시에게 확신에 찬 말을 하였다. 하지만 마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그럼 지구종말이 된다고 쳐. 지구 종말에 어떻게 인간이 살아남아? 죽을 수밖에 없지.”

“그것도 다 생각해 놨지! 짜잔~ 이것 봐봐!”


이공중은 미리 만들어놓은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에서는 화산들이 일제히 터질 때, 지구의 핵이 치고 올라와 약한 지반을 부쉈지만, 강한 지반이 있는 곳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엇! 여기는 단단하잖아?”

“그렇지! 이곳에 지하벙커를 만들면 돼. 벽도 아주 두껍게! 그리고 지하벙커 안은 공기가 부족할 테니 웬만하면 친환경적으로 지어야 돼. 그래서 저번에 내가 개발한 진흙젤리로 건물들을 짓는 거지. 어때?”


이공중은 침을 튀기며 은색 십자가 반지를 낀 손으로 영상화면 하나하나를 다 가리키며 설명했다. 마도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으로 동그라미 사인을 주었다.


“그리고 내 친구 도시야! 이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 중에 하나야.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뭔데?”


이공중은 지구 종말 시뮬레이션 영상을 끄고 다른 영상을 켰다. 땅 위에 동그라미로 뜬 또 다른 땅이었다.


“우와~”

“나와 너의 이름을 따서 공중도시! 어때! 멋지지? 도시 위에 도시를 만드는 거야. 어린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공원으로 말이야~ 과학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정말 머… 멋진데? 넌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매번 떠오르지? 신은 불공평해~ 에혀~”

마도시는 이공중의 아이디어를 보더니 감탄을 하면서 입이 벌어졌지만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기술개발팀의 문이 활짝 열리며 환한 에너지가 들어오는 듯했다.


“공중씨~ 이제 일 끝내고 우리 부모님 뵈러 가야지!”

“우리 사랑이~ 데이터 수집은 다 끝났어?”


이공중의 여자친구인 하사랑이 옆 데이터실에서 나오며 이공중을 껴안았다. 마도시는 언짢해하며 반대편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나는 이만~”

“잠깐! 사랑아~ 오늘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분간 사랑이 부모님 뵈러 가기 힘들 것 같아. 이거 확실해지면 사랑이에게 말해줄게! 응?”

“흥~ 그럼 난 오토바이 타러 간다~~”


하사랑은 삐진 척을 하며 이공중 볼에 뽀뽀를 한 후에 퇴근해 버렸고 이공중은 마도시와 함께 총책임자실에 지구종말 이론을 들고 갔다.



****



“잘 보고 있나? 너희 부모님이야~ 그 당시 영상이 왜 녹화가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 엄마 얼굴은 처음 보는 거겠지? 흐흐!”

“엄마?”


엘리는 하사랑이라는 여인의 얼굴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말하는 투며 분위기가 자신과 비슷했다.


“그럼 지구종말 이론도 지하벙커도, 진흙젤리도 다 이공중이 만든 게 맞아?”

“…”

이세벨이 날카롭게 묻자 마도시는 대답은 하지 않고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걸로 응답했다.


“그런데 왜 학교 역사 시간에는 다 당신이… 하! 그런 거였군. 다 죽였어.”


저번 엘리의 데이터실에서 검색했던 기록들이 떠올랐다. 지구종말 이론을 이공중이 발견했다는 걸 아는 직접 관련자들은 다 사망했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은 마도시뿐이었다. 엘리는 이세벨의 말에 정신을 차리면서 마도시에 대한 감정이 격해졌다.


“…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지? 왜?”

“이공중은 존재자체로 나를 열받게 해~ 내가 얼마나 참았는 줄 알아? 그놈의 잘난 척! 잘난 척!”

이세벨은 이 둘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영상 속 하사랑을 보면서 자신의 진짜 엄마는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세벨은 마도시가 눌렀던 버튼을 한번 더 눌러보았다.



****


지구종말 이론의 발표에 정부 관계자들의 협조는 얻어내지 못했지만, 세계 1위 산성의 팀장이자 후계자인 김유나를 만나 지하벙커를 만들게 되었다. 고위급 관계자들은 아무도 지하벙커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공 중을 믿는 사람들과 산성 사람들, 그리고 전국에서 신청을 받은 사람들 천만 명을 뽑았다.

그 후로 산성의 협조 하에 지하벙커가 착실하게 잘 만들고 있었다. 이공중의 진두지휘로 구획이 나눠지고 그 구획 안에 무엇을 지을 건지, 식량 계획은 어떻게 할 건지가 정해졌다. 마도시는 이공중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르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 브랜드로 청순하게 잘 차려입고, 방금 고급 미용실에서 화장을 받고 온 것 같은 산성의 김유나가 부끄러워하며 일하고 있는 이공중에게 다가왔다.

“공중씨~~ 저….”

“도시야~ 이건 배합을 좀 더 많이 해야지~ 앗! 네! 산성 팀장님!”

“산성 팀장님이라뇨~ 제 이름은 유나예요~.”

“그래도….”


김유나는 마도시 앞에서 이공중의 팔짱을 끼며 밥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유나 씨….”


마도시는 이 광경을 그저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작은 경차를 타고 지하벙커 맨 구석진 곳으로 가버렸다.


“도시씨! 여기 있었어~~~ 매일 여기서 담배 피우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그 모습도 너무 멋있어! 자기~ 얼마나 찾았다구우웅~.”


짧은 미니 스커트에 달라붙는 배꼽티를 입고 진한 화장에 껌을 씹는 한 여자가 마도시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안았다. 마도시는 귀찮은 듯이 그 여자를 ‘툭’하고 밀쳐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다시 또 마도시에게 안겼다.


“아! 왜!”


마도시는 아까 김유나를 볼 때와는 달리 굉장히 차갑게 이 여자를 대했다. 마치 딴 사람 같았다.


“나랑 우리 가족 여기서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평생 은혜 갚으며 살게! 자기야! 쪼옥~”


이 여자는 마도시에게 천대받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마도시가 좋아서 담배 냄새가 나는 마도시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마도시의 손을 이끌고 막 지어진 임시처소에 들어갔다.



****



“뭐야! 그만! 저 여자가 내 엄마?”


이세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질스런 영상에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마도시가 영상을 멈췄다.


“언니! 언니의 엄마는 아까 하사랑 그분이잖아. 나랑 같은 엄마!”


이세벨은 갑자기 흥분한 상태로 엘리에게로 다가가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엘리가 이세벨의 눈을 보니 심판자일 때처럼 아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이세벨에게 이제 거슬리는 것 따윈 없었다.


“너 정말 바보천치구나? 그렇게 봤으면 알아들어야지. 너랑 나랑 엄마가 다르다고! 너랑 나랑 아버지가 다르다고!”

“아니~ 우리 아빠는 이공중, 우리 엄마는 하사….”

“푸하하하하하하!”


엘리는 마도시의 웃음에 마도시와 이세벨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는 영상 속 여인들을 떠올렸다. 하사랑, 김유나, 그리고 한 여자.


“…앗…우리 쌍둥이가 아니었구나…… 아니었어….”


엘리는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언니가 힘들 거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언니 엄마는 김유나지, 저 여자가 아니잖아. 지금 언니 엄마는 공중도시병원에 입원해 계셔.”

“하! 진짜 답답해! 짜증 나!”


이세벨은 엘리를 잡은 멱살을 거칠게 내팽개치고는 마도시를 째려보며 그 앞에 섰다. 마도시는 흡족한 듯이 이세벨을 내려다보았다.


“저 영상은 우연히 지하벙커에 있던 보안카메라에서 발견한 거지. 다른 영상이 더 있긴 한데~ 정말 마음이 드나 보지? 미천한 너의 신분을 나의 고귀한 신분으로 바꿔줄 수 있어. 나의 유일한 피붙이 내 딸~ 하하하하!”


마도시는 이세벨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올렸다.


“당신의 상속녀가 되지~ 그동안 누리지 못한 걸 누려야겠어~ 내 엄마가 누구든 이제 상관없어~ 당신의 그 부와 위치가 중요할 뿐! 호호호~”

“언니!!!!”

“하하하하하하~ 역시 내 딸다워!!! 나를 쏙 빼닮았다니까~~~”


마도시는 이세벨을 포옹하면서 경악하고 있는 이엘리에게 말했다.


“아! 이공중 딸! 부모님의 뒤를 이어야 하지 않겠어? 그전에 특별히 보여줄 선물이 있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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