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시는 버튼을 두세 번 누르자 다른 영상이 나왔다. 엘리는 계속되는 충격에 그 자리에 서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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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년 3월 20일에 이공중은 마도시와 하사랑, 김유나, 과학자들 몇몇이 함께 비둘기를 지상으로 올려 보냈다. 하루이틀이 지나자 비둘기가 드디어 씨앗을 물고 왔다. 다들 기뻐하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구종말 전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디게 발전했었다. 이유는 상급과학자들의 제지로 개발이 느려지거나 멈춘 적이 많았었는데, 지구종말 이후에는 윗선들이 싹 정리가 된 덕분에 신예과학자들이 산성의 협조를 받아 자유롭게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었다. 지하벙커 2년 동안 거의 200년의 발전이 있었던 눈부신 성장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2222년 7월 7일이 지하벙커를 나가는 날로 정해졌다. 사람들은 지상으로 나가는 날까지 지하벙커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지상 위에는 사람들이 살 곳을 짓기 위해 건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먼저 올라가 '이공중의 창세기 도시' 도면대로 짓기 시작했다.
몇 달 후, 창세기 도시의 구색이 갖춰지고 행정체제가 완비가 되는 과정에서 누구의 공이 혁혁했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아무래도 창세기 도시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필요해서 일어난 소동 같았다. 이 때문에 마도시와 마도시를 지지하는 세력이 사람들 앞에 나서며 지구종말이론은 마도시가 찾아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공중과 하사랑, 몇몇 개발자들은 이를 해결하려고 마도시를 찾아갔지만, 도리어 다툼만 하고 돌아왔다. 이 무렵 김유나와 마도시가 결혼을 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소식이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유나가 술에 취해 하사랑을 찾아왔다.
“사랑 씨~ 흑흑흑~ 나 유나야~~.”
“유나 씨! 웬 술이야~~ 정신 차려~.”
“공중씨 있어? 흑흑흑.”
“아직 일이 안 끝났나 봐~ 이제 완전 지하벙커에서 나갈 거라서 바빠.”
김유나는 하사랑의 부른 배를 보며 눈물을 더 흘렸다.
“나 이공중 사랑해~ 흑흑~ 내가 이공중 처음부터 찜했었다고~~ 으엉엉엉.”
“유나 씨……. 도시씨랑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흑흑흑 공중 씨… 공중 씨….”
김유나는 술에 취해 쓰려졌고 하사랑은 이런 김유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방 안으로 옮겨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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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년 7월 7일. 창세기 도시도 빠르게 완공됐고, 사람들도 짐을 다 싸서 지상으로 옮겨놓은 상태였다. 하사랑은 곧 출산할 배를 만지며 기쁨에 젖어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공중은 날로 수척해졌다.
이공중은 지하벙커에 일이 아직 남아있어서, 창세기 도시와 지하벙커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마도시는 김유나와 결혼을 하자마자 산성의 이름을 '에덴 STD'로 바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유나는 이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마도시는 이공중이 창세기 도시에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에 확정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허구한 날 이공중을 찾아와 지하벙커에서 개발했던 것들을 에덴 STD에서 관리하는 조건으로 '이공중과 하사랑이 지상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약속'했지만 이공중은 자식 같은 개발품들을 빼앗기기 싫어 번번이 거절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마도시는 이공중에게 '마지막으로 친구로서 회포를 풀자'라고 말하며, 지하벙커 이공중의 집에서 만나자고 간청했다. 이공중은 이제 마도시가 욕심을 내려놓은 줄 알고 아무 의심 없이 마도시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그날 지하벙커에서는 화재가 났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오로지 시신 한 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다음날 경찰로봇이 지상에 있는 하사랑 집으로 찾아와 ‘이공중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알렸다. 하사랑은 이공중이 준 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며 이공중의 죽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사랑은 만삭인 상태로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지하벙커에서 친하게 지냈던 산성 직원 김선규를 만났다. 김선규는 ‘잠시 지하벙커에 짐정리를 하러 갔다가 마도시가 이공중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사랑이 직접 지하벙커에 찾아가 보니 불이 난 흔적이 있었고, 그 경찰로봇도 우연찮게 에덴 STD소속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에 펑펑 눈물이 났다. 하사랑은 마도시를 만나기 위해 에덴 STD 앞을 찾아갔지만 가는 족족 헛걸음이었다.
3일 뒤 마도시는 갑자기 하사랑에게 연락해 자수하겠으니 ‘밤 10시에 지하벙커 컨테이너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만나자’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하사랑은 그동안 행적을 기록한 일기장을 가방에 넣어 지하벙커로 향했다. 기록을 증거 삼아 따질 계획이었다. 지하로 내려가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마도시는 하사랑이 나타나자마자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사랑 씨~ 제발 그만 찾아와요. 제 곧 에덴 STD에서 대표가 될 겁니다. 그러니 이공중 대신 모든 걸 다 해드리겠습니다.”
“흑흑.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공중씨 돌려내라고요! 이 살인자! 으윽!”
하사랑은 마도시에게 울분의 소리를 지르다가 진통이 시작됨을 느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옆에 있던 침대에 누워 끙끙거렸다. 마도시는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 사람을 불러올게요.”
“으윽! 자… 잠깐! 어딜… 도망치는 거야….”
하사랑은 가려는 마도시의 재킷 끝을 붙잡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잡은 재킷 부분이 주름지게 구겨지자 금방이라도 도와줄 것 같았던 마도시는 심하게 화를 냈다.
“진짜 불러온다니까! 아! 진짜!”
마도시가 하사랑의 손을 거칠게 내팽개치자 공교롭게도 하사랑은 쓰러지면서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바닥으로 구르면서 머리에 피가 철철 흘렀다. 마도시는 당황해서 그 즉시 컨테이너를 나가려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려 잠시 멈췄다. 폰을 꺼내 누가 걸었는지 확인했다. 마도시는 갑자기 눈빛이 차갑게 바뀌며 통화를 눌렀다.
“…어~ 결혼해 줄 테니까 우리가 사랑을 나눴던 지하벙커로 와~.”
마도시를 좋아했던 여자였다. 이 여자는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를 안고 마도시가 오라는 컨테이너로 들어왔다.
“악! 뭐야! 사… 사람을 죽였어? 꺅!”
마도시는 여자가 들어오자마자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며 벽에 밀어붙였다. 그 여자는 강제적인 힘에 뒤로 밀리면서 순간적으로 들고 있던 포대기를 침대 위로 떨어뜨렸다.
“네가 뭔데 나를 협박해~ 아기로 협박이 될 것 같아? 너 같은 건 내 앞길에 방해만 될 뿐이야!”
“으읍~ 살려줘!”
그녀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마도시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컨테이너 밖으로 뛰어 나갔지만 마도시는 그녀를 잡기 위해 바로 뒤쫓아 따라갔다.
이때 막 컨테이너집들 앞에 도착한 한 부부가 어둠 속에서 컨테이너집들을 하나씩 조심조심 열어보고 있었다.
“선규 씨~ 사랑 씨가 여기라고 했지?”
“조심해야 돼. 마도시 그놈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우리가 사랑 씨라도 지켜야지.”
“맞아~.”
“이제 마지막 컨테이너야~.”
“엇! 사랑 씨다! 사랑 씨! 정신 차려 봐!”
“으윽~ 내… 아기….”
하사랑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이 희미해지는 중에도 아기를 신경 썼다.
“다솔 씨! 침대에 아기가 있어.”
포대기를 열어보니 탯줄이 남아있는 갓난아기였다. 그런데 하사랑이 뭐라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랑 씨~ 나 다솔이야~ 뭐라고?”
“아기… 아기….”
“아기는 여기 있어.”
“배… 아기… 목걸….”
마지막 말을 하며 하사랑은 의식을 잃었다. 최다솔은 하사랑의 말에 하사랑의 배를 보다가 이상한 느낌에 하사랑이 걸친 긴치마를 걷었다. 그곳에는 탯줄이 잘리지 않은 갓난아이가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아~ 불쌍한 것.”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탯줄이 잘린 걸로 봐서는 먼저 나온 아기인가 봐. 아기 받는 사람은 어디 간 거지?”
“마도시짓이겠지!”
최다솔과 김선규는 화장실에 놓여있는 새 수건으로 방금 나온 갓난아이를 감쌌다. 두 아기를 안고 나가려는데 최다솔은 하사랑의 마지막 말이 걸려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까 사랑 씨가 목걸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최다솔은 하사랑에게로 와 목을 살폈다. 은색 십자가 목걸이가 있었다.
“엇! 흑흑! 이건 공중씨와 사랑 씨의 결혼기념일 선물이잖아. 흑흑흑!”
“다솔 씨~ 얼른 나가자. 마도시가 올지 몰라.”
“응응! 흑흑!”
최다솔은 목걸이를 하사랑 목에서 풀었다. 동시에 김선규는 하사랑 등 쪽에 있는 가방을 끄집어내 열어보니 공책 한 권이 있었다. 목걸이는 탯줄을 방금 막 자른 아기 수건 안쪽에 넣어주었고, 하사랑의 공책은 먼저 나온 아기가 크면 주기로 결심했다.
이 부부는 아기들을 한 명씩 안고 무사히 컨테이너를 나갔고 곧 지하벙커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울지 않고 있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한편 컨테이너와 좀 떨어진 곳, 꺼진 가로등 아래에는 번뜩이는 까만 눈동자의 마도시가 서 있었다. 마도시 발아래는 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고, 그곳에서 마침 지하벙커를 나가는 부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김유나, 한 명만 남았군. 흐흐."
오른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과 왼손에는 정체 모를 약통을 들고 있는 마도시는 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김유나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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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어때? 평생에 모르고 지낼 부모님에 대해서 알려주니 좀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제 너도 죽어야겠지? 어차피 공중도시는 다 죽을 테니~~ 하하하하!”
“… 마도시 네가 우리 부모님을……!”
엘리는 처음 본 부모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상을 보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이고 싶은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세벨은 자신의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습에 동공이 흔들리며 혼란 스러졌다. 하지만 곧바로 무슨 결심을 했는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이전보다 더 어두운 기운을 내뿜었다.
“김선규와 최다솔을 내가 살려준 덕분에 너희가 살았지. 다 내덕이야. 내가 그날 다 죽일 수 있었어. 그 부부가 한 마디라도 벙끗하면 죽일 작정이었어. 그런데 구석진 마을로 가서는 고아원을 차리더군. 내가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쥐새끼처럼 숨어 사는 그 노력에 감동했어. 감동했다고~ 하하하하!”
“…그래서 이렇게 영상으로 증거를 남겨놓은 거야? 자신의 범죄를 전리품처럼? 이게 공개되면 마도시 당신은 영락없는 범죄자인데? 내가 세상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게 할 거야! 우리 부모님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알게 할 거라고!”
과거 영상을 본 이상 엘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과도한 감정에 못 이겨 무작정 마도시에게 달려들었다. 마도시는 순간 이세벨이 가져온 칼이 달린 지팡이를 엘리 목에 겨누었다. 엘리의 마음에는 태풍이 불어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들었지만, 엘리의 몸은 다행히 운동신경이 있어, 칼끝에서 본능적으로 멈추어졌다.
“하하하하! 더 가까이 와도 돼. 알아서 죽는 건 환영! 아니면 내가 갈까?”
마도시가 엘리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지팡이를 앞으로 강하게 뻗었다. 칼이 들어오자 엘리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칼지팡이를 피했고, 목표물을 잃은 칼지팡이는 엘리 뒤에 있었던 진열대 개발품 하나를 대차게 뚫었다. 이 난투극 속에서 이세벨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엘리는 개발품에 낀 칼지팡이를 빼지 못한 마도시에게 달려들어 펀치를 날리려고 달려들었다.
“악!”
그런데 엘리가 마도시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의 순간, 마도시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엘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엘리는 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엎어졌다. 피가 쉴 새 없이 쏟아지며 그 어떤 미동도 있지 않았다.
“즉사군. 역시 나의 솜씨란. 이공중을 죽인 칼을 그 딸에게 쓸 줄이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