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이 날을 기다려왔는데 고작 너 때문에 멈출 것 같아?”
하얀 심판자는 날개 달린 이자를 타고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왔다. 이세벨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앞에 있는 큰 집들은 모두 다 거대인간로봇이 무참히 밟아버렸다.
“시야가 탁 트이니 한결 낫군~ 후~.”
“이세벨! 오늘도 너무 훌륭했어! 이제 홀로그램이 필요 없으니 훨씬 수월한데?”
“수고했어. 피유다~.”
“나의 공도 잊지 말라고!”
“강가인, 너도!”
집에 들어오자 피유다와 강가인이 이세벨을 맞이하고 있었다. 집안은 온통 여러 홀로그램 판들과 옷들이 널려 있었다. 홀로그램 판들은 그동안의 계획을 짜고 실행시켰던 판들이었다. 이세벨은 코디로봇으로 화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드디어 본래의 이세벨로 돌아왔다.
“아까 하얀 이세벨이 더 이쁘긴 하지만 난 죽을 수 없으니 입을 다물겠습니다~ 크크!”
피유다가 음흉하게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강가인은 현재 공중도시 TV에서 나오는 거대인간로봇의 모습을 보며 격투를 하고 있었다. 거대인간로봇이 휘두르는 펀치와 강가인의 펀치모습이 얼핏 닮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싸우는 기술을 가르쳐줬는데, 저 고철덩어리가 이제는 나보다 낫네? 나중에 한 판 떠봐야겠어.”
“이제 거대인간로봇을 멈춰. 인간들에게도 쉴 시간을 줘야지~ 그래야 마지막날이 더 짜릿할 테니~.”
이세벨의 말에 피유다는 슈퍼 컴퓨터 화면을 몇 번 터치했다. 공중도시 TV 속 거대인간로봇은 에덴 STD의 건물에 주먹질을 하다가 피유다의 명령에 무지개 분수대 중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서 있는 채로 전원이 꺼졌다.
이세벨은 계획이 끝나 집 안에 널브러져 있는 홀로그램 판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계획이었던 에덴 STD의 시스템 해킹.
‘심판자’ 계획의 첫 단계로 공중도시 전체를 제어하는 힘이 있어야 했다. 마침 기술개발실에서 그 기회를 엿보았는데, 노현재 팀장의 컴퓨터가 그 대상이 되었다. 이세벨은 노현재 팀장의 초고속 슈퍼 홀로그램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함과 천 가구의 재벌 오브 재벌들을 한 자리에 모으게 하기 위해 방법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피유다 집안 AIR 회사를 떠올렸다.
AIR 회사는 거주지역에 있는 천 가구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매일 매 시간 공급하는 일을 한다. 물론 공중도시 전역이 그 대상이다. 이세벨의 명령으로 피유다는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고 신선한 공기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해킹하여 이세벨이 직접 만든 최면가스 성분을 주입시켰다. 그래서 노현재 팀장뿐만 아니라 천 가구의 재벌들에게 그 공기를 마시게 했다. 그래서 가정집에 있는 에덴 STD 로봇들을 해킹하여 사람들에게 무지개 분수대로 모이라는 최면을 걸었던 것이었다.
이에 앞서서 노현재 팀장은 회사에서 이세벨이 뿌린 최면가스를 마시고 ‘집에 가 있으라’는 명령에, 일을 하다 말고 도중에 집에 갔었다. 이때 이세벨과 피유다의 합작으로 미리 찍어놓은 금빛 여인을 무지개 분수대에서 송출할 수 있었다.
“피유다~ 너희 가족에게 찔리지 않아?”
이세벨이 처음 계획이 기록된 홀로그램판을 삭제하면서 물었다.
“그럴 리가~ 우리 가족은 나 때문에 찔린 적이 있었나? 크크!”
이세벨은 피유다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두 번째 계획인 홀로그램판을 들었다. 두 번째는 계명을 이용해 눈을 멀게 하고 입을 다물게 하는 마법 같은 계획이었다. 이걸 위해 이세벨은 에덴 STD 광고로봇들을 장악했고, 피유다를 통해 강가인의 집안 DF 회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신제품을 해킹했다.
DF 회사에서 출시될 초코 케이크에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로봇들을 넣어놓았다. 이 초미세로봇들은 하루 동안만 사람 몸 안에 있어 자동적으로 배출되는 시한로봇이었다.
광고로봇에게 케이크 신제품 이름을 ‘크리스마스의 저주‘라고 바꾸어 놓았다. 이 '크리스마스의 저주'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몸속으로 초미세로봇들이 들어간다. 이때 제어하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 이 초미세로봇들이 활성화가 되면, 사람 눈의 신경과 입의 신경에 초미세로봇이 붙어 눈은 못 보게 만들고, 입은 벌어지지 않게 만든다. 이엘리가 지적했던 헬퍼에서 무언가 나온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이었다.
“강가인~ 너희 집 DF 해킹 상관없어? 너희 아버지도 눈과 입이 자유롭지 못했잖아.”
“이세벨! 우리 가족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천 가구 사람들 중에 누가 그렇게 될지 선택했으니~ 우리 아버지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지. 으하하!”
이세벨은 두 번째 홀로그램 판도 삭제했다.
세 번째 홀로그램 판.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본인 물건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 가 있거나, 무엇이든 녹이는 노란 액체를 뱉는 이상한 동물들의 소동이 있었던 심판.
이세벨은 엄마의 일기장에서 나왔던 종이에 써진 계명들을 읽다가 궁금해졌었다. 소중한 물건이 아무런 연고 없이 이웃에게 가 있을 때, ‘어떻게 된 일인지 앞뒤 상황을 알아볼 것인지’ 아니면 ‘앞뒤 보지 않고 다툴 것인지’ 즉, 본인의 마음을 다스릴지, 이웃을 의심할지, 부자들은 이에 대해 어느 선택을 할지 새삼 알고 싶어졌다. 이세벨이 알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정의는 이미 답은 나왔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드는 궁금하지도 않은 궁금함에서 시작된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이때는 ‘미래옷’이 도구로 사용되었다. 미래옷 업그레이드를 담당하는 시스템을 해킹하려는데 보안키가 필요해서 노현재 팀장에게 최면을 건 김에 빼내오라고 시켰었다.
그래서 해킹한 에덴 STD 시스템으로 해킹한 미래옷과 헬퍼를 연동시켜 몸의 체온과 심박수에 따라 사람의 시선을 관찰하는 인공지능 기능과 에덴 STD에서 실험 중인 차원이동기술을 넣어놓았다.
몇 번 실험 끝에 성공한 이세벨과 피유다, 강가인은 약속된 심판 때를 위해 모든 재벌들의 미래옷을 미리 업그레이드를 시켜 놓았다. 그래서 업그레이드된 미래옷을 입은 사람의 시선과 체온, 심박수를 감지해 탐냈던 물건들의 기록을 저장해 두었다. 심판날 그 기록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했던 타인의 물건이 미래옷에 심은 차원이동기술을 통해 자신에게 오도록 조치해 놨던 것이었다. 즉, 미래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낸 물건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심판날에는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미래옷을 통해 건너오도록.
“폭탄이나 동물들에 대해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피유다, 강가인 제법이야~.”
건물들이 무너진 일은 강가인이 공수해 온 작은 폭탄생쥐를 보내어 터뜨린 것이었고, 이상한 동물들이 노란 액체를 뱉으며 사람들을 위협한 일은 피유다가 ON의 사료 시스템을 해킹하여 노란 독이 나오는 사료를 배합한 것이었다. 공중도시에서 사람이 손으로 만들거나 배합하는 일은 없다. 다 로봇이 하므로 에덴 STD 로봇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피유다는 이세벨의 심판 때를 맞춰 로봇들을 움직여 동물들을 풀어놓아 분수대 쪽으로 유인했었다.
이세벨에게는 모든 건물들과 모든 사람들이 그 심판의 대상이었지만, 한꺼번에 모두 다 심판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 각 심판 때마다 심판받을 사람들과 그에 딸린 건물들을 랜덤으로 돌려서 무작위로 심판을 내렸었다.
“이때 재미있었어. 서로 뜯고 싸우는 꼴이라니~ 역시 사랑이 메말라버린 돈만 많은 사람들! 아니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바보천치들~.”
두 번째 홀로그램 판을 삭제한 뒤, 세 번째 홀로그램 판을 들었다. 거대인간로봇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준비과정 중에 이엘리가 영상을 분석해서 나를 방해하려 했어. 뭐 방해했어도 소용은 없었겠지만. 어릴 적부터 너무 거추장스러운 존재야. 그때 이엘리를 가나안 고아원으로 내려보냈었지. 살려줬으면 잠자코 가만히 있을 것이지, 지가 뭔데 나를 언제 챙겼다고 이제 와서? 하! 사랑이란 사랑은 다 갈취해 버리고 이제 와서 사랑하는 척을 하다니~ 너무 위선자야~ 하! 이엘리 답다~ 너는 이공중 우리 아버지 딸 할 자격이 없어. 내가 머리가 좋은 건 우리 아버지 복수를 위해서야.’
이세벨은 세 번째 홀로그램 판을 너무 꽉 쥔 나머지 막대기가 부러졌다.
“이세벨 무슨 생각을 했길래 막대기가 부러져? 그거 세 번째 홀로그램판 아니야?”
“맞네~ 거대인간로봇. 이거는 우리만으로는 힘들었지. 운 좋게도 우리를 추종하는 사람이 제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해서 실행할 수 있었잖아. 크크크!”
그날이었다. 이세벨이 처음 빨간 여인으로 등장한 날, 날개로봇을 통해 하나의 막대편지가 왔었다.
‘거주지역 66번지 집에 당신을 위한 병기가 있습니다. 집 비밀번호는 ‘당신을 위해’ 나의 뮤즈여~ 꼭 써주십시오.’
혹시 이세벨을 잡으려 놓인 덫인 줄 알고 정찰용인 날개로봇을 보내어 정찰해 봤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런 경보시스템이나 경찰로봇들이 배치되어 있지가 않았다. 셋은 곧바로 66번지로 출발했다. 그 집은 외관상 다른 집들과 달리 꽤 높은 벽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있었다. 대문에서 비밀번호를 말하고 들어가자마자 이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인간로봇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유다가 이자에서 내려 거대인간로봇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높이 꽤 높아 올라갈 수 없었다. 날개로봇을 보내 이리저리 살펴본 결과, 거대인간로봇의 작동하는 부분과 사람이 제어하는 홀로그램을 연동시켜야 가능했다. 그래서 이세벨은 우선 자신의 이자를 개조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거대인간로봇과 함께 다닐 수 있는 높이로 이동할 수 있는 이자가 필요했다.
엘리와 나훔, 요나의 날개 달린 이자가 생각난 이세벨은 전에 우연히 고아원에서 엘리가 날개 달린 이자를 개조할 때를 떠올렸다. 그때 본 기억과 날개로봇의 작동원리를 함께 연구하여 엘리의 이자보다 훨씬 높게 올라가는 날개를 이자에 붙였다. 그랬기 때문에 개조한 이자를 타고 연동된 거대인간로봇과 함께 직접 공중도시에 등장했던 것이었다.
그전까지 이세벨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출근을 해야 했고 피유다가 대신 이세벨이 변장한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웠었다. 하지만 더 생동감 있는 심판을 하고 싶었던 이세벨은 하얀 여인 때부터 더 공포스럽게, 더 화려하게 직접 등장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무서워한다면서.
“네 번째, 마지막은 어떻게 심판하면 좋을까?”
“마지막은 처단해야 하지 않겠어? 크크크!”
“그래~ 그렇지~ 훗~ 이 공중도시의 모든 것.”
이세벨의 말에 피유다가 당연한 듯 괴기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엄~ 이 까만색~ 까만색 옷이 좋겠다! 2241년의 마지막이니까~.”
“사용 로봇은? 사용 시스템은?”
“음~ 피유다~ 그것보다는 지금 중요한 걸 빠뜨렸어. 나의 진정한 목적~~.”
강가인과 피유다는 서로 보며 ‘킬킬킬’ 웃었다.
“그놈! 그놈이 있는 곳을 찾아봐~ 그놈을 위해 이렇게까지 축제를 벌였으니 이제 처단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