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전에는 그런 줄 착각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도 나에게 껴맞추려고 했고
내 생각대로 가족을 이해했으며
세상도 그랬다.
그래서 어느 하나 잘 풀리는 게 없었다.
남자 친구와는 걸핏하면 다퉜고
가족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세상은 왜 나를 알아보지 못하냐고 불평했다.
하지만 6년 전을 기점으로 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남자 친구는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예전의 내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고
가족들은 자신들만의 사랑표현을 하고 있었으며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예전에 나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라고 하는 말에
나도 이름을 남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정작 나는 그럴 그릇도 못되고 그럴 능력도 없는데도,
그 작은 아이를 붙잡고 '너 꼭 대단한 사람이 돼! 그래야 돼!'라고 압박을 주고 부담을 줬었나 보다.
나 자신을 왜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우리 집은 노동자집안이다.
부모님과 오빠는 현실적인 감각이 있어서 세 분 다 10대 때부터 일을 하며 돈을 버셨다.
부모님은 어려운 환경이셔서 그렀다마는
오빠도 부모님께서 새벽부터 나가셔서 밤까지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첫째로서의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막내였던 철부지 나는 이런 가족의 희생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상과 생각에 자주 빠졌고 이상만 계속 바라봤던 것 같다.
한 마디로 현실감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가족 안에서는 돌연변이로 느껴졌다.
글이 돈이 안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아직도 공부만 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게 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셨던 이유를 안다.
이 각박한 현실에서, 매일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게 없고 돈이 없어서 마트 타임세일을 전전했던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오빠도 이런 부모님의 어려움을 알았고 본인도 회사에서 싸대기를 맞아가며 일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지금은 이직했다)
그래서 가족들의 기대에 맞추고 싶어서 20대 때는 글을 멀리하고 내 성향을 버렸다.
이름 있는 직장을 얻어 돈을 많이 벌어서 돈 많고 멋진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었다.
감당도 못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자꾸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하다 보니,
몸도 원체 약했고 마음도 약한 내가 죽을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고 나니 악쓰는 마음이 내려갔고, 6년을 살아오면서 비로소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벼랑으로 밀고 소리치고 압박했던 내가, 매일 울며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라는 친구는 한동안 나를 못 믿는 듯하다가
계속해서 사과하고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주니
이제야 용서해주고 비로소 하나가 되는 걸 허락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MBTI의 도움도 받았다.
내 유형을 알게 되니 내가 왜 그런지 다 설명이 되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게 되었다.
돌연변이가 아니라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었다.
물론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야 하지만
가족의 특성을 닮아가려고 나를 지워가며 맞출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서로 삐죽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그냥 존중해 주면 될 일이다.
참 왜 이렇게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게 힘들었을까?
여러 가지 욕심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되지도 않을 욕심,
분수에 넘치는 욕심,
편하게 살고픈 욕심,
대단해지고 싶은 욕심 기타 등등.
나는 세상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냥 나다.
덕지덕지 욕심을 뺀 '그냥 나'
그래서 이제는 내가 대하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 욕심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애쓴다.
가족도
지인들도
내 흘러온 삶과 살고 있는 하루하루도~
이렇게 보다 보니 사람마다 캐릭터가 보이고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희한하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