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Chardonnay

샤르도네, 샤도네이

by midsummer

최근에 와인을 골라달라고 연락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물론 멋지게 술술술 추천 와인을 늘어놓고 싶지만 나도 뜨내기이다보니 '저는 최근에 이런걸 마셔봤는데 좋았어요'정도가 최선이다. 상대방이 '뭐야 이러려고 물어본게 아닌데'싶은 내색을 보이면 조심스럽게 덧붙이는게 와인을 고르는 몇가지 기준들인데 사실 너무 기본적인 것들라서 나만이 가진 대단한 기준인 것은 아니다. 용도, 자리의 성격, 가격대, 마시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데모그래피, 함께 하는 음식...


사실 와인을 고를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건 계절, 날씨같은 전반적인 무드인 것 같다. 국가, 품종, 산도, 바디감을 따지기 전 레드냐 화이트냐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에 가장 직관적인 기준은 역시 계절이다. 여름에는 확실히 화이트 와인을 찾는 빈도가 높아진다. 눅눅하고 무더운 여름밤에는 에어컨 바람 아래서 시원하게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들이키고 싶어진다. 레드를 더 선호하지만 역시 여름엔 화이트가 먼저 생각난다. 올해 여름에는 유난히 샤르도네를 많이 마셨다. 일부러 골라 마신 건 아닌데, 돌아보니 대부분이 샤르도네다.

비가 오던 초여름 밤 신사동에서 마신 부르고뉴 샤르도네
처음 마셔본 호주 샤르도네

샤르도네는 가벼운 느낌은 아니지만 여름밤에 마시기엔 충분히 청량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네랄 향이 나는 화이트보다는 청색 과실향이 밀도감 있게 맴도는 느낌이 끌렸다. (미네랄 향이 감도는 화이트 와인은 어쩐지 겨울에 마시고 싶을 것 같다) 식사 후 간단히 글래스 와인을 마시러 오크우드 호텔 바에 갔다가 아무래도 한 잔 이상을 마실 것 같았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보틀로 주문했던 호주 샤르도네 Jacb's Creek에서는 청색 사과향과 멜론향이 났다. 멜론 프로슈토와 함께하면 정말 좋았을 법한 그런 와인이었다. 여름이 막 오려고 하던, 늦봄이라기엔 이미 공기가 눅눅했던 5월 말에 마셨던 샤도네이는 복잡하고 독특한 향이 났다. 정말 부르고뉴 다웠다. 미스트 같은 비가 흩뿌리던 밤이었다.


낮에는 보틀, 밤에는 하프보틀

종종 가는 한남동의 프렌치 식당, 화이트 와인 리스트의 가장 위에 있는 와인 Les Aureliens. 베프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며 곁들인 하프보틀도, 친한 언니와의 주말 브런치 와인도 이 프랑스 샤르도네였다. 화이트 와인 중 유일하게 caraf 용량을 판매하는 것도, 리스트의 꼭대기에 올려둔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단한 특징은 없어도 음식과 어우러져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이어서겠지. 이 두 자리에서 마셨던 와인이 같은 와인이었다는 걸 지금 글을 쓰면서 알았으니... 두 번 모두 이 자리에서 와인을 다 들이키고는, 2차에서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여름의 낮과 밤,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샤르도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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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레드를 포기할 수 없다면, 피노누아를 마실 거다. 1년 365일 가볍게 마시기 좋으니, 한 여름의 레드와인으로도 손색이 없을테니까. 루비빛 레드는 마시기 전 시각적으로도 이미 청량하니까.

미국과 프랑스의 피노누아
카멜로드를 마신 밤의 달은 밝았다


어느덧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에 찾는 와인은 조금 더 무거워지겠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와인의 향과 질감을 달리 찾게 되는 것이 새삼 오묘한 느낌을 준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 새로운 공기가 부추길 새로운 계절의 와인은 또 무엇이 될지 궁금해진다.


20200907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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