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에게 해 준 것이 많았다.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으로 나는 금연을 할 수 있었다. 술에 더욱 집착하지 않게 됐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약을 꾸준히 먹었다. 운동에 취미를 붙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돈을 빨리 벌어서 좋은 것을 해줘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다시는 죽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서 네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나는 주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웃음, 온기, 농담, 꾸준한 응원, 매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칭찬, 가끔 나도 모르게 너를 웃게 만드는 이야기들. 죄다 추상적인 것들이다. 주는 나를 나아지게 하지만 나는 주에게 모양이 없는 것들을 건넨다. 이런 것이 주에게 쓸데가 있을까 나는 망설여진다.
요즈음 인간관계에서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사람이 좋으면 그만인데, 정작 타인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서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일 수 있는데도. 조건 없는 사랑은 부모님에게만 있다고 하니, 우리는 조건을 따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저런 통상적인 이야기가 돌아다님에도 부모와 친척,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기브 앤 테이크를 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실망할 것 같은 마음이 있다. 나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쓸모 있고, 일상을 함께 지내도 괜찮은 사람임을 매번 증명하려 한다. 증명이라고 해도 별 것 없다.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말과 행동을 뱉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희미해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존감은 다소 낮지만 언젠가 올라갈테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실망하면 어떨지를 생각한다. 일그러진 얼굴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들이 있을까? 추악한 과거를 좋아할 수 없다면 현재의 나를 바라봐달라고 말할 텐데. 그럼에도 인연이 오래 이어질 사람들이라면 얼굴이 일그러져도, 가끔은 말과 행동이 뒤틀려도 그때의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애인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주가 말하는 조언들을 곧이곧대로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 너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이만큼 애쓴다며 겉치레만 하는 것은 부질없다. 무언가를 주려고 기를 쓰고 용을 쓸 필요도 없겠다. 모자란 나도 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럼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생각해 내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가끔은 내가 쌓아온 이야기와 가치관이 그에게 영감이 되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마음처럼 항상 주의 곁에 있고, 주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주가 나를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가 좋다면 내일은 많이 웃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