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희랍어시간』

by 마리안

서 론


소설 『희랍어시간』은 말을 잃은 한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한 남자가 쓴 독백형식의 편지를 통해 낯선 두 사람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지며 전개된다. 철저히 고립된 것으로 보이는 두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외로운 모습을 극도의 정제된 고요함속에서 잘 보여준다. 소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강의를 통해 배운 대로 네 가지 관점, 즉 인물의 성격적 특징, 시적묘사와 서사적 구성의 연관관계, 어둠의 이미지와 비극적 세계관의 관계, 예술적 구원은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되는가라는 소주제에 맞추어 소설의 문장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본 론


I. 인물의 성격적 특징

1. 말을 잃은 여자


'그것이 다시 왔어’


여자는 출판사, 편집대행사에서 일을 하다가, 7년 가까이 대학과 예술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해 왔다.

실어증은 원인이나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처음 시작은 반년 전 어머니를 잃고, 이혼하고, 세 차례 소송 후에 9살 아들의 양육권을 잃고 아들이 떠난 지 오 개월에 되어가고,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시작되었다. 그녀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린 시절, 언어의 미세함에 대한 지각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언어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바늘처럼 자신의 귀를 찌르고, 갑자기 언어가 사라지고 침묵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어느 평범한 수업시간, 무심한 불어 단어 하나가 입술의 침묵을 깨뜨렸다. 비블리오떼끄.


그때의 기억처럼, 이십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침묵을 찾기 위해 들어온 희랍어 시간, 그녀는 희랍어 강사인 한 남자를 만난다. 여자는 어린 시절 주위인물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자신이 태아 때 사산될 뻔 했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주위 공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차지하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말소리는 작다 못해 나중에는 말을 잃게 된다. 왜 일까? 심리치료사의 분석적인 원인처럼,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감과 두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모든 감각이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주위의 모든 말들이 그녀의 신경세포에 다 걸려들고, 그것이 아픔으로 자신을 찔렀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자는 예민하다. 마치 불에 댄 피부에 물집이 가득 잡혀 있는 것처럼, 살짝만 스쳐도 그것은 터져버린다. 자신의 아픔이 심리치료사에 의해 너무 쉽게 분석되는 것을 그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쉽게 단정 짓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복합적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픔과 두려움은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열다섯 살에 독일로 가족과 함께 간 남자는 열일곱 살에 안과 병원에서 열병을 앓다 청력을 잃은 병원장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미 실명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여인과 헤어지고, 서른한 살에 한국으로 혼자 돌아와 희랍어 강의를 하던 중, 수강생으로 등록한 말없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사랑했던 옛 여인을 연상시킨다.


그는 사춘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 독일에서 정착하게 된다. 그의 고국을 향한 그리움은 빛이 바래지는 낡은 사진처럼 흐릿해지고, 그의 시력도 점점 잃어갈 때 그는 더욱 사색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첫 사랑 요아힘 그룬델은 그가 시력을 잃듯이, 청력을 잃어가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잃어간다는 것. 그 중에서도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 역시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는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감대 속에 깊은 대화들을 나누고, 사랑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헤어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난 고국으로 그는, 자신의 의지로 홀로 돌아와 불편한 삶을 시작한다. 언젠가는 완전히 빛을 잃어버릴 종착점이 예상하는 인생. 그는 그 사실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것은 인생의 비극을 미리 받아들임으로써, 그에게는 이미 마음의 불빛이 꺼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II. 시적 묘사와 서사적 구성의 연관관계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풍성한 자목련의 아름다운 자태에 흉터가 나있다. 단 내가 날 것 같은 향기로운 봄밤이다. 향기로운 봄과 어두운 밤의 만남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그렇게 아름답지만 어두운 길을 그녀는 걷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상처 입은 자목련과 같다. 그녀는 인생의 캄캄한 밤을 걷고 있는 것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혈관의 내부처럼, 작동을 멈춘 승강기의 통로처럼 그녀의 입술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여전히 말라있는 뺨을 그녀는 손등으로 닦아낸다. 눈물이 흘렀던 길에 지도를 그려뒀더라면.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바늘 자국을, 핏자국이라도 새겨뒀더라면.


그녀의 영혼의 공허함을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는 혈관, 작동 멈춘 승강기와 같이 비유한다. 어디로 어떻게 다시 찾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연한 영혼의 상태는 다시 찾아갈 어떠한 근거도 남아있지 않은 것만 같다.


그녀의 눈 속에 침묵하는 그녀가 비쳐있고, 비쳐 있는 그녀의 눈 속에 다시 침묵하는 그녀가...그렇게 끝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침묵은 그 깊이를 계속 더 깊어지게 한다.


밤은 아까보다 더 깊어졌어.

네 목소리가 정적 속에 스며들어서,

이 정적이 어쩐지 따스하게 느껴진다.

동이 트려면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

그때까지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겠지

이제 스텐드를 끄면 어둠이 찾아오겠지

눈을 감는 것과 뜨는 것이 거의 다르지 않은, 먹보다 진한 내 눈의 밤


침묵이 반복됨으로 더 깊어지는 것처럼, 어둠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더 강도 높게 짙어진다. 그 침묵, 정적이 익숙하다 못해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둠 속에 영혼이, 영혼 속에 어둠이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은 아닐까. 먹보다 진한 내 눈의 밤. 그것은 주변의 칠흑보다 자신의 어둠이 더 강력함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듯하다.


III. 어둠의 이미지와 비극적 세계관 사이의 관계


못 견디게 그리웠던, 산사태처럼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모국어에 감격하며 한 계절을 보낸 뒤 겨울이 오자, 독일의 도시들이 그랬던 것과 꼭 같이 서울이 낯설어지기 시작했습니다...독일에서 그랬던 것과 꼭 같이,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감상과 낙관에도 빠지지 않은 채 나는 여기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고향이 그리웠고, 모국어가 너무 그리웠다. 그리움이 해소되었을 때 그는 잠시나마 감격했다. 그러나 외부적이고 환경적인 그리움이 채워졌다고 해서 내면의 텅 빈 공간이 다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무감각해졌다. 그의 눈은 지속적으로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랑하던 여인은 그와 함께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긍정적 희망의 여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완전한 어둠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의 시력이 완전히 사라져서 완벽한 어둠에 갇힐 때, 고통스런 그의 기억 역시 갇혀버리지는 않을까? 그는 절망의 날을 염려한다. 그러나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돌려서 표현한다. 완전한 어둠과 함께 그의 기억은 함께 갇혀버릴 것이다.


그녀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 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꺼져가는 촛불처럼 연약하게 태어났다. 그녀의 생명은 그녀가 선택할 수 없었고 주변에 의해서 흔들리는 존재 같았다. 그녀는 존재에 대한 자각이 어린 시절부터 강했던 것처럼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자라는 아이가 아니라, 주위를 크게 의식한 나머지 너무 작아진 자아처럼 말이다.


어둠의 이데아, 죽음의 이데아, 소멸의 이데아...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어둠에는 이데아가 없어. 그냥 어둠이야, 마이너스의 어둠...0이하의 세계에는 이데아가 없는 거야. 아무리 미약해도 좋으니 빛이 필요해. 미약한 빛이라도 없으면 이데아도 없는 거야. ..가장 미약한 아름다움, 가장 미약한 숭고함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플러스의 빛이 있어야 하는 거야


소설 속에서는 꾸준히 반복적으로 어둠과 밤, 침묵, 정적, 소멸, 죽음의 이미지가 표현된다. 두 남녀의 마음과 생각, 감정의 색깔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알게 해준다. 어두운 그들에게 밝은 세상이 있을 리가 없다. 우울한 사람에게 세상은 온통 우울하기 때문이다.


IV. 예술적 구원의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 되는가?


침묵하는 여자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를 하나로 묶어준 사건은 건물 안으로 날아 들어온 작은 박새다. 어둡고 깊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 박새를 꺼내주고 싶지만, 박새는 여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더욱 숨는다. 그때 남자가 들어오고, 남자는 여자를 도와주려고 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가 넘어지며 사고와 함께 그의 눈인 안경알이 깨어진다. 이제 남자를 도울 수 있는 존재는 건물 안에 여자뿐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다가와 그를 일으킨다.


건물에 갇힌 작은 박새의 모습을 통해 상처 입은 두 영혼의 모습이 보인다. 건물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박새의 두려움은 스스로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처럼, 두 남녀는 자신의 어두운 독방에 깊이 갇혀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는 발단은 자신들의 모습처럼 연약한 박새 한 마리였고, 상처 입은 상대방을 바라보며 치유가 시작된다.


어둠의 명도가 달라진다. 계단이 끝났다는 것을, 불 켜진 현관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아볼 수 있다. 희끄무레하고 검은 것들의 윤곽이 보인다.


계단이 끝났다는 것, 불 켜진 현관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희끄무레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이러한 표현들은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에 서서히 빛이 비추이고 있다는 암시는 아닐까?


여자는 그의 손바닥에 글씨를 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들은 대화한다. 그들은 함께 침묵의 어둠속에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파악하고 다 이해한다고 말한 심리치료사와는 소통할 수 없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서로가 연약에 처해있을 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진실은 터진 물처럼 흘러나오고 그들의 영혼은 교감한다. 그리고 소통한다. 여자는 남자의 고백을 들으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마음으로 여행한다.

영혼의 소통은 여자를 어스름한 치유의 빛줄기로 이끄는 듯이 보인다.


결론 및 느낀 점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은 어두운 밤 도시, 덥고 습기가 가득한 여름이다. 여자는 문학적이고 남자는 철학적이다. 그들은 모두 육체적으로 무언가를 상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적 상실은 정신적인 상실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이다.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심리치료사는 너무나 객관적이고 정상적이며 완전하다. 완전한 그에게 불완전한 여자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공감의 대상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공감 받지 못한 여자는 심리치료사로부터 치유를 얻기보다 오히려 완벽한 상실을 결과로 얻었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감정 없는 이성적 결론이 아니라, 같이 낮아져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자는 다른 사람이나 주위에 대해 배타적이고 완고했지만, 그 마음을 연 것은 똑같이 시름에 빠진 연약한 한 남자로부터였다. 남자 역시 자신의 아픈 과거와 마음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여자의 연약함으로부터 편안함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는 온통 강한 사람들만 사는 것 같다. 연약함을 드러내면 도태되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나 연약함은 철저히 감추어야만 한다. 그러나 진실한 자신을 감출수록 내면은 더욱 공허해지고 외로워진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는 그 누군가를 모두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쉬지를 못했다. 주인공들의 어두운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마치 무중력 공간에서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멈춘 것처럼, 소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했다. 왜 이렇게 어두워야만 하는 걸까? 소설가 한강이 생각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관점이 마치 주인공처럼 비극적이고 염세적인 것은 아닐까?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내용의 깊이나 어두움이 읽기 쉽거나 즐겁지는 않았다. 그리고 너무 깊이 빠져들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들의 심리적 방황과 어두움을 너무나 생생하고 시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작가의 글 솜씨에는 참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얇은 붓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동양화처럼, 글은 정제되어 있지만 다양한 언어의 비유를 통해 주인공들의 감정과 그들이 있는 공간을 마음으로 함께 따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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