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사람 오는 사람

보고 싶어 오는 게 잘못인가

by 뮌헨의 마리


사촌 동생들이 사람을 거절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무조건 단호해야 한다고. 그러기가 쉽나. 나 보고 싶다고 천리길을 달려오는 사람들을.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란 말이 그냥 있는 말은 아니잖나.


벤치의 추억.


부산에서 사촌 동생들이 다녀갔다. 큰 동생이 돌 지난 딸아이를 자기 남편에게 맡겨두고 둘째랑 같이 왔다.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나이 차이가 많다. 동생들은 아직 30대 중후반. 둘이 우애가 좋아 쌍둥이 자매 같다. 성격도 밝고 알뜰살뜰하고 생각 또한 깊어서 동생들인데도 배울 게 많다. 동생들이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언니는 끙끙 앓던 은행 공인인증서 문제를 동생들 도움으로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들더라고. 내가 힘들까 봐 점심때 도착해서 저녁도 안 먹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떠나기 전 카페에서 오트밀 요거트만 하나씩 먹고. (나와 큰 동생만 먹었다. 원래 그렇다. 나머지 둘은 잘 안 먹는다.)


어제는 상태가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오전에 충분히 쉬고 산책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도착했을 때도 걷는 중이었다. 충분한 숙면과 오전의 휴식과 산책이 컨디션의 50%를 보장해 주었다. 다시 샤부를 먹었고, 동생들이 밥도 사고 차도 샀다. 언니가 동생들과 일하는 동안 나는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동생들과는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이라서 나이를 먹어도 서먹하지 않다. 절대 안정이 중요하다며 사람을 거절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동생들의 팁은 무조건 단호해야 한단다. 그러기가 쉽나. 나를 보자고 천리길을 달려오는 사람들을.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란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란 건 오십이 지나 보면 안다. 다만 오후의 차 한 잔으로 양해를 구하려 한다. 다음 주가 한국의 마지막이 될 거 같아서. 비행기를 탈 체력은 남겨둬야 해서.



철쭉의 추억.


암에 걸리기 전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냐고. 그때 나는 꿈이 없었다. 작가가 되어서 책을 한 권 내 보나. 뭐 그 정도.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법한. 사촌 동생들이 말했다. 생생한 꿈을 꾸라고. 바람 정도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그래서 생긴 꿈 하나. 내년 여름에 아이와 한국에 오는 꿈. 아이는 매일 고대하던 알밥을 먹고, 교대에서 이제는 중학생이 된 연지 언니를 만나는 꿈. 나는 매일 동네 카페로 출근하는 꿈. 아침마다 카페 앞 길가에 떨어진 능소화를 줍는 꿈. 저녁 무렵 카페와 공원 사이에 무성한 능소화를 바라보는 꿈. 여름날 시원한 카페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원 없이 마셔보는 꿈. 그 카페에서 이번에 만난 사람들과 차례로 재회하는 꿈. 기쁨의 눈물까지 흘려가며. 있다. 오랜 벗들과 하동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꿈. 선희 언니의 시골집과 J언니의 시골집을 다녀오는 꿈.


오늘은 뮌헨에 사는 내 조카의 부모님인 선희 언니 가족이 온다. 언니와 형부와 큰 조카까지 팀으로. 원래 그런 가족이다. 언니만 올 리 없다고 생각은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형부가 다음엔 큰 조카가 차례로 같이 오겠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에서 화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족이어서 그렇다. 어젯밤 늦게까지 나 먹인다고 시골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느라 언니는 톡도 전화도 못 받았다. 차로 음식을 싸들고 와서 집에서 같이 먹잔다. 가늠할 수 없는 언니의 마음의 사이즈에 할 말을 잃는다. 형부는 내가 독일에서 들어오기도 전에 나를 위해 시골집에 찜질방까지 만들어주셨다. 그 시골집에서 자가격리를 했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 뮌헨의 조카는 자주 우리 집에 들러 아이와 놀아주고, 음식도 만들어준다고.


간밤에도 잘 잤다. 밥이 보약이고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매일 먹던 생선은 차츰 시들해지고 있다. 솔직히 그 정도면 먹을 만큼 먹었다. 샤부도. 어제는 고기도 먹었지만 야채도 많이 먹었다. 집밥이 아니면 배부르게 먹고 위에 부담 없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 샤부는 괜찮았다. 어제는 동생들 덕분에 평소라면 안 먹던 것도 종류별로 먹어보았다. 월남쌈과 칼국수와 죽. 오늘은 선희언니가 부산의 어시장에서 가자미를 사 와서 조림을 해 온단다. 우리 집은 생선 구이를 주로 먹어서 조림을 먹을 일이 없다. 생선의 맛은 구이 다르고 조림 다르지 않나.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액젓까지 들고 온단다. 독일에서 내가 먹을거리다. 이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버텨야 한다. 언니를 만나기 전 산책부터 나가고.



나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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