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나에게 주는 휴식 데이로 삼으려 한다. 모과나무 아래를 걸으며 호기심에 대해서도 성찰한 후에. 김범수가 나온다는 저녁의 <유명가수전> 시청과 함께.
내가 매일 산책하는 공원의 모과나무꽃.
요즘 구독자 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모과처럼 뚝뚝 떨어지는 건 아니고 한국에 와서 스무 명 정도 줄어든 것 같다. 그동안 두 번 브런치 작가명을 바꾼 것과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번에 들었다. 독일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이름이 바뀌든 말든 브런치 작가분들과는 계속 연계되었다. 문제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분들이다. 그분들께는 내 글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 부분은 생각을 못했다. 예의가 아니었구나. 나는 투병기를 싫어하는 분들이 구독을 취소하는 줄 알았다.
이생각은 E와 통화를 하다가 하게 되었다. E와는못 만나더라도 통화라도 하자, 싶어 전화를 했는데 E가 영상 통화를 하자고 했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졸린 모습으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E가 넉 달을 불면증으로 힘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변비도 심했다고. 놀랍게도 복식 호흡으로지금은 깨끗이 나았단다. 나 역시 알려줄 게 있었는데 깜빡했다. 일명 손톱 마사지. 유명하신 한의사 선생님께 들은 생생 정보다. 엄지와 검지로 손톱 양 옆을 20초간 아프게 누르는 게 전부다. 다만 넷째 손가락은 누르지 말 것. 교감 신경인가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효과란다. 돈도 안 들고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커서 안 할 이유가 없다.
전화를 끊기 전에 E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왜 브런치 글을 다 지웠어?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못 물었어. 나 안 지웠는데? 계속 쓰고 있어. 이름만 바꿨지. 허탈해하던 E의 모습. (그러게 진작 물어보지 그랬어!) 나라도 그럴 수 있겠다.E는 당장 내 브런치로 달려가 댓글로 화답했다. E와 통화를 하는 동안 언니는 쿠쿠 밥통을 사 왔다. 다 들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마사지를 받기 전에 안과에도 들렀다. 요즘 민들레 홀씨가 떠다니더니 눈이 가려웠다. 봄이 왔다는 걸 알리는 증상이다.마사지 샘들과도 유쾌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왼쪽 날갯죽지 통증은 사라지고 없다. 왼쪽 발목도 편안하다. 이제 독일로 가도 되겠다. 금요일은 나에게 주는 휴식 데이로 삼으려 한다. 김범수가 나온다는 저녁의 <유명가수전> 시청과 함께.
철쭉은 지려하고 공원의 나무들은 울창해졌다.
엄마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TV를 본다. 특별히 보고 싶은 건 없고 가끔 보는 건 <나는 자연인이다>나 <유 퀴즈> 같은 프로그램이다. 유 퀴즈 출연자 중 호기심 충만한 60세 여성을 만났다. 중국 요리 요리사에서 대학 교수로, 최근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일주를 즐기는 사람. 거침없고 솔직한 토크도 매력 있었다. 저렇게 나이를 먹을 수도 있구나. 좋아 보였다. 딸린 가족이 없고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반대인 경우는 안 될까? 딸린 가족이 많고 경제적으로 안 될 땐? 꿈만 꾸어야 하나? 꿈이라도 계속 꾸고 있어야 하나! 본인의 선택이겠다. 출연자가 한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말. 나는 그것이 인생의 답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산다는 것에 대해.
내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동네 공원에 모과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하나는 엄청 크고 다른 하나는 조금 크다. 내가 이 나무를 눈여겨본 건 오래됐는데 예쁜 꽃 때문이었다. 공원 이쪽 편의 모과나무 꽃과 저쪽 편의 명자나무 꽃이 올봄 나의 재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명자꽃의 이름을 물어보자 우리 샘이 모과꽃이 아닐까 하신 적은 있다. 사진까지 보내주시면서. 그때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반대편의 그 꽃임을. 이번에 벗들이 다녀가며 제대로 알았다. 모과나무는 나무 색깔부터 다르다는 것을. 미안하지만 모과만 보면 결코 연상되지 않는 작고 어여쁜 꽃. 그러니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유 퀴즈를 본 후에 모과나무 아래를 걸으며 생각했다. 내 삶에서 부족한 것이 그것이었구나. 호기심. 사람에 대해(몇몇 사람을 빼고!), 학문에 대해, 여행에 대해, 자연에 대해, 하다못해 취미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적었다. 관심을 기울이다가도 금세 시들해졌다. 내 안의 호기심이 적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궁금한 게 없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처럼 들리겠지만 문화 충격 비슷한 것도 전혀 없이 말이다. 바람직하단 뜻은 아니다. 내 성향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왜 호기심이 없을까.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자연, 사계절의 변화만은 궁금하다.계속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