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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29. 2021

뮌헨의 로젠가르텐에서 명자꽃을 보다

1차 항암


이 글을 읽고 놀라실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항암을 안 해서 왔을 수도 있고, 항암을 했더라도 전이는 올 수 있다. 온 것은 받아들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이자르 강가의 로젠 가르텐에 핀 명자꽃.



병원에 다녀왔다. 수술을 집도했던 숄츠 교수 Prof. Scholz를 만나러. 으로 항암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전이는 시작되었다. 전이가 왔다는 건 한국 병원에서 알았다. 목 아래 가슴뼈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얼마 후부터 가슴이 뜨끔거렸다. 퇴원을 하자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다. 침대에 눕고 일어나거나 팔을 들어 올리거나 옷을 갈아입기가 힘들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세게 안으면 가슴이 아팠다. 가족과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말은 못 하고 왔다. 충격을 받으실 거 같아서. 남편에게만 알렸다. 통증이 심해지면 독일로 못 갈까 봐 그것도 두려웠다.  글을 읽고 놀라실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받아들일 건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안 받아들이면 또 어쩔 것인가. 


놀라지 마시라는 말도 꼭 전하고 싶다. 항암을 안 해서 왔을 수도 있고, 항암을 했더라도 전이는 올 수 다. 온 것은 받아들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다행인 건 돌아오기 한 주 전부터 통증이 약해졌다는 것. 다시 팔을 들어 올리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게 되다. 더욱 다행인 건 독일로 오기 전부터  컨디션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 규칙적인 걷기로 체력이 고, 나를 찾아온 이들과 많이 웃은 게 도움이 된 듯했다. 전이와 통증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도 이유 것이다. 언니는 영양 보충제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다시 한번 투지를 다지는 듯했다. 뭐가 면 어떤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도 모른다. 어떤 경우엔 모르는 게 약일 .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기분이 좋을 때는 증상도 아지더라는 것이다.



뮌헨의 Harlaching 병원 산부인과 대기실.



프라우 오, 요즘 기분어떻습니까. 나를 보자마자 Scholz 교수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현재로 아주 좋아요. 한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요. 사실이었다. 독일로 온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컨디션은 꽤 좋은 편이었다. 매일 세 시간 이상 산책도 나가고 있었다. 그는 남편에게 내가 재수술한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가슴뼈 전이까지도. 내가 덧붙였다. 수술 두 달 만에 한국에 간 건 제 실수였어요. 바로 항암을 시작하지 않은 것도요. 진실로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지난 일은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니까요. 그 한 마디에 그가 좋아졌다. 그를 믿고 가도 좋겠다는 신뢰도 생겼다. 그에게 수술만 받았을 뿐 이야기를 나눈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를 처음 담당했던 빌케닝 의사 Dr. Wilkening  봤다.


Scholz 교수를 만나기 전 나는 무척 긴장한 상태였다. 그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의 수술은 완벽했었다. 수술 자국은 깨끗했고 단 한 번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미다스의 손. 그런 에게 수술을 받고 항암을 거부했다는 미안함이 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처럼 지난 일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남편과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 재수술 자국을 확인한 후 잘 아물고 있는 것 같으니 바로 항암을 시작해도 좋겠다고 했다. 복부의 림프절을 절반 이상 제거했기 때문에 이번 전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설명과 함께.  질문에 대한  대답듣고 안심했다는 말도 덧붙였. 언제나  기분과 컨디션과 몸에 대한 느낌이 중요하다며 서류에 적힌 증상과 수치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했다. 나는 의사 운이 좋은 것 같다. 항암은 그가 관리하는 항암팀과 시작할 것이다.



동백꽃처럼 붉은 명자꽃. 그러나 동백만큼 서럽지는 않겠지.



한국 슈퍼도 다녀왔다. 항암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언니에게 가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총각김치, 만두, 밑반찬 몇 가지, 아이를 위한 과자도 몇 개 골랐다. U반을 한 번 갈아타야 하지만 집에서 멀지는 않다. 우리 동네 U반역에 돌아왔을 때는 지하철 역 앞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샀다. 독일은 아직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테이크 아웃밖에 안 된다. 한국에 있을 때 카페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일이 벌써 추억이 되었다. (참고로 현재 독일의 1일 신규 확진자는 28,000명 정도.) 큰 길가 벤치에 앉아 먹고 마시며 언니는 무척 기뻐했다. 이태리에 살 때 먹던 맛과 똑같다고. 뉘앙스로 보아 매일 카푸치노를 마시게 될 것 같다. 일상의 행복은 가까이 있다. 이렇게 소박하게.


로젠 가르텐에서 명자꽃도 보았다. 내가 서울에서 본 여린 핑크 빛깔 명자꽃과는 달랐다. 반가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올해 독일은 사월이 유난히 추웠나 보다. 로젠 가르텐의 목련꽃들도 다 지지 않았다. 사과꽃도 개나리꽃도 벚꽃도 아직 피어 있다. 바람에 봄기운이 느껴진 건 어제부터였다. 어제 오후에는 산책을 하다가 날이 너무 좋아 늦게까지 이자르 강변 숲 속 벤치에 앉아있었다. 바람은 따스했고, 햇살은 포근했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해는 지지 않고, 어둠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자르 강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요즘은 걸으며 E가 알려준 심호흡을 하려 노력한다. 몸과 마음의 안정에도 좋을 것 같아서. 항암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뭘 하든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니까.



언니와 테이크 아웃으로 마신 카푸치노 한 잔. Y언니가 보내준 상황버섯차(위). 이자르 강변 숲과 산책길(가운데/아래). 언니가 독일에서 차려주는 정갈한 점심상(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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