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놀라실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항암을 안 해서 왔을 수도 있고, 항암을 했더라도 전이는 올 수 있다. 온 것은 받아들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이자르 강가의 로젠 가르텐에 핀 명자꽃.
병원에 다녀왔다. 수술을 집도했던숄츠 교수 Prof. Scholz를 만나러. 앞으로 항암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전이는 시작되었다. 전이가 왔다는 건 한국 병원에서 알았다. 목 아래 가슴뼈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얼마 후부터 가슴이 뜨끔거렸다. 퇴원을 하자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다. 침대에 눕고 일어나거나팔을 들어 올리거나 옷을 갈아입기가힘들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세게 안으면가슴이아팠다. 가족과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말은 못 하고 왔다. 충격을 받으실 거 같아서. 남편에게만 알렸다. 통증이심해지면 독일로 못 갈까 봐그것도두려웠다. 이 글을 읽고 놀라실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받아들일 건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안 받아들이면 또 어쩔 것인가.
놀라지 마시라는 말도 꼭 전하고 싶다. 항암을 안 해서 왔을 수도 있고, 항암을 했더라도 전이는 올 수 있다. 온 것은 받아들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다행인 건 돌아오기 한 주 전부터 통증이 약해졌다는 것. 다시 팔을 들어 올리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게 되었다.더욱 다행인 건 독일로 오기 직전부터 내컨디션이몰라보게좋아졌다는 것. 규칙적인 걷기로 체력이붙고, 나를 찾아온 이들과 많이 웃은 게 도움이 된 듯했다. 전이와 통증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도 이유일것이다. 언니는 영양 보충제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다시 한번 투지를 다지는 듯했다. 뭐가되면 어떤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도 모른다. 어떤경우엔 모르는 게 약일때도 있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기분이 좋을 때는 증상도좋아지더라는 것이다.
뮌헨의 Harlaching 병원 산부인과 대기실.
프라우 오, 요즘 기분은 어떻습니까. 나를 보자마자Scholz 교수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현재로는 아주 좋아요. 한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요. 사실이었다. 독일로 온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컨디션은 꽤 좋은 편이었다. 매일 세 시간 이상 산책도 나가고 있었다. 그는 남편에게 내가 재수술한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가슴뼈 전이까지도. 내가 덧붙였다. 수술 두 달 만에 한국에 간 건 제 실수였어요. 바로 항암을 시작하지 않은 것도요. 진실로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지난 일은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니까요. 그 한 마디에 그가 좋아졌다. 그를 믿고 가도 좋겠다는 신뢰도 생겼다. 그에게 수술만 받았을 뿐 이야기를 나눈 건 그날이처음이었다.나를 처음 담당했던빌케닝의사 Dr. Wilkening는못 봤다.
Scholz 교수를 만나기 전 나는 무척 긴장한상태였다.그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의 수술은 완벽했었다. 수술 자국은 깨끗했고 단 한 번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미다스의 손. 그런 분에게 수술을 받고 항암을 거부했다는 미안함이 컸다. 하지만그는 자신의 말처럼 지난 일에 대해서는개의치 않았다. 시간에 쫓기지도않고 남편과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 재수술 자국을 확인한 후 잘 아물고 있는 것 같으니 바로 항암을 시작해도 좋겠다고 했다. 복부의 림프절을 절반 이상 제거했기 때문에 이번 전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설명과 함께. 첫 질문에 대한 내대답을 듣고안심했다는말도덧붙였다.언제나 내 기분과 컨디션과 몸에 대한 느낌이중요하다며서류에 적힌증상과수치는 숫자에 불과하다는말도 했다.나는 의사 운이 좋은 것 같다. 항암은그가관리하는 항암팀과곧 시작할 것이다.
동백꽃처럼 붉은 명자꽃. 그러나 동백만큼 서럽지는 않겠지.
한국 슈퍼도 다녀왔다. 항암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언니에게 가는 길을알려주기위해서였다. 총각김치, 만두, 밑반찬 몇 가지, 아이를 위한 과자도 몇 개 골랐다. U반을 한 번 갈아타야 하지만 집에서 멀지는 않다. 우리 동네 U반역에 돌아왔을 때는 지하철 역 앞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샀다. 독일은 아직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테이크 아웃밖에 안 된다. 한국에 있을 때 카페에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일이 벌써 추억이 되었다. (참고로 현재 독일의 1일 신규 확진자는 28,000명 정도.) 큰 길가 벤치에 앉아 먹고 마시며 언니는 무척 기뻐했다. 이태리에 살 때 먹던 맛과 똑같다고. 뉘앙스로 보아 매일 카푸치노를 마시게 될 것 같다. 일상의행복은가까이 있다. 이렇게소박하게.
로젠 가르텐에서 명자꽃도 보았다. 내가 서울에서 본 여린 핑크 빛깔 명자꽃과는 달랐다. 반가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올해독일은 사월이 유난히 추웠나 보다. 로젠 가르텐의 목련꽃들도 다 지지 않았다. 사과꽃도 개나리꽃도 벚꽃도 아직 피어 있다. 바람에 봄기운이 느껴진 건 어제부터였다. 어제 오후에는 산책을 하다가 날이 너무 좋아 늦게까지 이자르 강변 숲 속 벤치에 앉아있었다. 바람은 따스했고, 햇살은 포근했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해는 지지 않고, 어둠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자르강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요즘은 걸으며 E가 알려준 심호흡을 하려 노력한다. 몸과 마음의 안정에도 좋을 것 같아서. 항암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뭘 하든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니까.
언니와 테이크 아웃으로 마신 카푸치노 한 잔. Y언니가 보내준 상황버섯차(위). 이자르 강변 숲과 산책길(가운데/아래). 언니가 독일에서 차려주는 정갈한 점심상(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