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산책 여부를 물었다. 이런 게 강철 독일 마인드다. 남편은 산책을 내 목숨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나갔다. 다음 날 오전부터.
이자르강 산책길. 빨간 새집과 검은 새.(새는 어디에?)
이상하다. 독일 집으로 돌아오자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도착 첫날 잠도 잘 잤고, 이튿날 아침에는 가족들과 빵도 먹었다. 오전에는 언니와 이자르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선선했다. 마스크 없이 산책을 하자 날아갈 듯했다. 언니는 이게 가능한 일이냐며 신기해했다. 많은 나무들이 아직 새잎을 내지 않았다. 오전에 주치의를 만나고 오는 길에는 언니를 주려고 동네 빵집에서 카페 라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 막 가자는 거냐고? 그건 아니고. 작은 행복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암 이후엔 커피를 딱 끊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오면 시차가 거의 없다. 저녁에 일찍 잠이 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뿐 별다른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 독일에서 한국에 갈 때는 두 배로 힘들다. 1주일 시차는 기본이다. 젊은 20대 조카들도 그러니 나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거기다 긴 비행시간이 주는 피로함도 있다. 이번에 독일로 올 때는 비즈니스석이라 편했던 것도 있고, 노심초사했던 가족들 곁으로 무사히 돌아오자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단번에 사라져 버린 덕분이기도 하다. 또 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산책 여부를 물었다. 이런 게 강철 독일 마인드다. 남편은 산책을 내 목숨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당장 나갔다. 다음 날 오전부터.
이자르 강가의 풍경.
도착 다음 날 오전에는 주치의 예약이 있어서 1시간만 걸었다. 언니와 이자르 강변 산책길인 오솔길을 걸어서 로젠 가르텐까지 갔다. 저녁에 바바라의 말을 들으니 이런 화창한 날씨는 이틀 전부터 시작했단다. 바로 우리가 도착하던 그날부터. 그런 거였어? 그동안은 어땠길래? 엄청 추웠단다. 어쩐지 도착 당일 날 날씨는 좋아도 바람은 차더라니. 집에 오자 실내는 더 추웠다. 돌집 아닌가. 거실 가스 오븐 난방은 끈 지 오래고, 부엌의 라디에이터만 아직 그대로였다. 언니가 추워해서 언니와 내가 침실로 쓸 거실 방의 라디에이터를 켰다. 다음 날은 한결 나았다. (독일은 모든 방에 문이 있다. 오픈형 거실이 드물다.)
오전 산책에 이어 오후 산책도 같이 나갔다. 이번에는 이자르강 산책길 중 강변 쪽을 걸었다. 햇살을 정면으로 받을 수 있는 길이었다. 강 바로 옆이라 바람이 제법 불었다. 점심을 먹고 나는 쉬었는데 언니는 쉬지도 않고 산책을 따라 나왔다. 해 좋을 때 걸어야 한다며. 두 시간을 넘게 걷고 돌아와 나는 쉬고 언니는 다시 저녁 준비 모드로. 저러다 쓰러질라. 앞으로 오후 산책은 나만 가기로 했다. 우리가 의식을 못할 뿐 우리 몸엔 피로가 쌓여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쉬엄쉬엄 가는 게 맞는데 언니가 쉴 생각을 하질 않는다. 지나친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 건물들. 대브분 6층 아파트다.
집에서 나와 모퉁이만 돌면 숲과 공원, 이자르강 산책로가 나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반대쪽 모퉁이엔 유기농 샵과 마트가 있다. 산책 후 언니와 유기농샵에 들러 과일과 야채를 샀다. 씻어서 껍질째 먹을 수 있으니 좋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어제는 독일 배를 먹었다. 한국 배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맛이 괜찮다. 오늘 아침엔 요구르트에 바나나와 호두와 건포도를 올려먹었다. 서울에서 내가 사랑한 오트밀 요거트의 맛은 아니지만 먹을 만했다. 통밀빵에 카망베르 치즈도 먹었다. 암 이후 치즈는 전혀 안 먹다가 지금은 먹고 싶을 때만 조금 먹는다. 독일로 오자 독일식 아침에 익숙해졌다.
저녁 여덟 시에는 양쪽 시어머니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바바라도 왔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세 시라 조금 피곤했지만 두 분 다 반가워하셨다. 주치의의 배려로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된 것도 기뻐하셨다. 이번 주 목요일 1차. 6월에 2차를 맞을 계획이다. 팔순이 넘으신 카타리나 어머니와 오토 아버지는 2차 접종까지 마치셨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1차 접종 후 나처럼 유월에 2차를 맞으신다. 어머니는 하루빨리 2차까지 마치고 우리를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 작년 구월 스스로 집에 칩거하신 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어머니가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