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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07. 2021

암병동을 방문하다

비타민 C 클리닉도


예전에 시험관을 할 때도 느낀 거지만 항암도 체력이 관건인 것 같다. 뭐라도 먹으며 잘 버텨야지. 빗속을 걸으며 의지를 다진다. 뮌헨의 로젠 가르텐에서.



비 오는 날 로젠 가르텐으로의 산책.



암병동에 갔다. Dr. 마리오글루 Marioglou를 만났다. 암병동에는 총 세 명의 의사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첫인상은 온화하고 친절했다. 중년의 간호사들은 엄살이 안 통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제대로 들은 거라면 항암 1차는 18주로 총 4개월이 소요될 듯하다. 3주 간격으로 총 6번을 맞는 것 같고 항암약은 두 가지. 부작용이 적다카보플라틴 Carboplatin(독성이 강한 시스플라틴 Cisplatin의 한 형태) 제법 강한 파클리탁셀 Paclitaxel(탁솔 Taxol이라고도 부른다). 검색해보니 난소암과 유방암 등에 사용하는 항암제다. 그래서 언제 시작하냐고? 다음 주부터!


부작용에 대해서도 었다. 뜻밖에도 구토는 적을 거란다. 손발 저림은 심할 수 있고. 심하면 손발톱이 빠질 수도 있다고. 머리카락은 당연히 빠진다. 신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물을 많이 마셔야 하고, 피부 건조도 심할 거라 수분 함량이 많은 바디로션을 꼭 발라야 한다고. 설거지를 할 때는 고무장갑 필수. 잇몸이 약해지므로 칫솔은 부드러운 모로 바꾸고 치실이나 치간 칫솔 사용은 금지. 치과 예약도 필수. 염증이 없는지 확인하란다. 피로감은 겠지만 주 3회 90분 산책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미각을 잃을 가능성이 커서 무엇이든 입에 맞는 걸 계속 먹으라 했다. 체중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항암 시기의 산책은 로젠 가르텐. 어린 묘목들을 심어놓은 밭이 나의 새로운 산책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암병동을 가던 날은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남편이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갔다. 같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그날만은 같이 가고 싶었는데. 혼자서 정신없이 들었다. 의사를 만나고 트람을 타고 돌아왔다. 남편도 일이 바쁘다. 혼자서 항암을 다닐 체력이 되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이다. 남편과 언니와 교대로 동행해야겠다. 병원을 다녀와서 우산을 쓰고 로젠 가르텐으로 산책을 갔다. 예전에 시험관을 할 때도 느낀 거지만 항암도 체력이 관건인 것 같다. 뭐라도 먹으며  버텨야지. 빗속을 걸으며 의지를 다진다.


항암을 하면 산책도 쉽지 않을 것이다. 멀리 가지는 못하고 매일 갈 곳을 정해두는 게 겠다. 어디로 갈까 고민이 필요 없도록. 내가 마음속으로 한 곳은 로젠 가르텐. 평소라면 15분이면 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30분쯤 걸리겠다. 왕복 1시간. 앞으로는 날도 좋아질 테니 30분쯤 앉아서 햇볕도 쬐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꽃들도 보면 없던 기운도 나겠지. 로젠 가르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절반은 꽃과 묘목밭. 나머지 절반은 사람들이 앉거나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 장미뿐 아니라 종류도 많다. 어린 묘목을 키우는 밭 주변을 걷는 일도 즐거웠다. 사람의 발길이 적어서 더 좋았다.



바라만 봐도 듬직한 로젠 가르텐의 나무들.



1차 백신도 맞았다. 남편은 아스트라제네카. 나는 화이자(독일에서는 비온텍 Biontech이라 부른다). 임산부나 환자, 그들의 가족은 주치의에게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주사 바늘이 꽤 길어서 긴장했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백신 등 주사는 반드시 의사가 놓는다. 독일에서는 간호사가 주사를 놓을 수 없다고. 요일은 늦게까지 진료한다. 요즘은 목요일을 백신 맞는 날로 정해 놓은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 주치의의 진료 시간은 / 08:00-12:00 15:00-18:00  08:00-12:00 15:00-20:00 / 08:00-12:00.) 합리적이지 않은가. 점심시간도 무려 세 시간! 화요일 저녁 연장 근무를 했다고 요일은 오전 근무. 금요일은 당근 오전 근무. 남의 나라지만 칭찬하고 싶다.


비타민 C 요법 클리닉도 다녀왔다. 대학병원의 암병동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을 가진 여의사였다. 나처럼 비타민 요법에 대해 미리 알고 찾아오는 환자가 대부분이라고. 보조요법 비용은 힐더가드 어머니가 대 주시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비싼 강황 요법도 같이 해보나? 쑥 요법도 있던데. 모두 항암에 좋다고 알려진 요법들이다. 뭐든지 다 해보는 거지. 중요한 건 항암으로 떨어지는 면역력을 올리기. 에 좋다는 건 먹어보겠다. 먹다 보면 알겠지. 좋은지 안 좋은지.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간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정주행.



로젠 가르텐의 라일락들(위). 로젠 가르텐의 장미는 언제쯤 필까(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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