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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07. 2021

유월의 꽃들이여

책 속의 시간이여


 유월의 꽃들이 다투어 만발하다. 비 내리는 뮌헨의 로젠 가르텐을 걸으며 생각한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은 책 속에 있다고.


핑크빛 꽃의 이름은 르노와르(위) 아래의 저 우아한 꽃 이름은 어머니께 다시 여쭤봐야지.



슈탄베르크에 사시는 카타리나 어머니댁 입구 푸른 대문 앞에는 5월부터 꽃이 만발하였다. 여러 가지 들 중 다 기억은 못하고 어머니가 알려주신 꽃들 중 가지만은 기억한다. 르노와르. 꽃 이름이 르노와르라니. 저렇게 예술적이어되는가. 평소 푸른 잎만 가득하고 눈에 띄지도 않고 내겐 별 볼 일 없는 나무로만 보였는데.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울  어찌 알았으랴. 사람도 나무도 외양만 봐서는 모르는구나. 저런 걸 반전미라고 하나. 어떤 꽃을 피울 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순간 자신 깊숙이 드러내는 존재감. 거기다 이름까지 르노와르라.


어머니의 안쪽 정원에도 소란하지 않으나 변화가 있었다. 사시사철 묵직하게 서 있던 큰 나무들에 여리여리한 자태의 꽃들한창이다. 잔디 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다 정원의 테이블 위에 놓고 바라 보아도 봄날의 정취가 가슴에 충만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원의 야외 의자에 앉아 꽃들을 바라보는 한가로운 오후의 시간. 파란 잔디에도 발디딤 에도 하얗게  지고. 오월이 가고 유월이 오듯 잔디 곳곳에 피고 지는 여린 꽃들. 순수하고 다. 꾸밈없고 수수하다. 예쁘다. 자꾸 눈이 간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비는 내리다 그치고. 해가 들어갔다 나오고. 그 사이 유월의 꽃들은 다투어 다.



카타리나 어머니의 정원.



이미 말한 대로 가슴뼈(흉골 Brustbein) 전이로 지난주에는 뼈주사(뼈액)를 맞았다. 독일어로는 Knochen Infusion. 항암 포터로 맞았으며 소요 시간은 1시간. 맞을 때에도 맞은 후에도 아프거나 불편한 건 없었다. 대신 효과는 다. 설명을 들은 적이 없어서 기대가 없었기에 놀라웠다.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는 골다공증 치료제로 불리는 '데노수맙'과 비슷한  같다. 3월 중순에 한국에서 재수술 직전에 뼈 전이 사실을 통보받았다. 수술 후 병원 복도를 걸을 때부터 가슴이 뜨끔거렸고, 3월 말 퇴원하자 그때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다.


목 아래쪽. 가슴 윗부분 정중앙. 통증 때문에 잘 때 오른쪽으로 돌아눕거나 두 팔을 들어 올리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눕고 일어날 때,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도 아팠다. 4월 말 독일로 오자 가슴 위쪽에서 일직선으로 좌우 겨드랑이 쪽으로 통증이 졌다. 오른팔과 어깨로 원을 그리며 돌릴 수가 없었다. 5월 중순 항암 시작. 6월 초에 뼈주사를 맞고 이틀 만에 가슴 통증이 없어졌다. 침대에 눕고 일어날 때도 안 아팠고, 잘 때도 오른쪽으로 돌아누울 수 있었다. 옷을 마음대로 갈아입고, 산책할 때 어깨 돌리기도 가능했다. 경미한 통증이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안했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완전히 사라진 건지 일시적인 증상인지는 두고 보려 한다. 일희일비는 말고.


레겐스부르크의 도나우 강변 산책로. 독일의 밤나무꽃은 예쁜 핑크빛. 흰 밤나무꽃도 있다.(위/가운데)



레겐스부르크에 사시는 힐더가드 어머니댁에도 다녀왔다. 첫날은 언니를 위해 시내 투어를 해주셨다.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에 금방 지쳤다. 이튿날에는 도나우 강가를 산책했고, 비가 오는 오후엔 쇼핑을 하고, 집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게임을 하며 쉬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첫날에는 남편이 부엌 발코니에서 바비큐를 했고, 저녁에는 서쪽 발코니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와인을 마시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보드 게임을 하고, TV를 보는 평범한 시간. 함께라서 좋은 시간. 늘 혼자이신 어머니께는 더더욱. 뮌헨에 돌아오자 다시 비. 로젠 가르텐을 걸으며 생각했다.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나의 '잃어버린 시간들'은 책 속에 있다고. 



콩브레 정원의 마로니에 그늘에서 보낸 화창한 일요일 오후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생각할 때면, 그대들은 내 개인적인 삶의 보잘것없는 사건들을 정성스럽게 비워 버리고 대신에 흐르는 물로 적셔진 고장의 낯선 모험과 열망으로 바꾸어 놓았던 그때의 삶을 여전히 환기하고 또 실제로 그 삶을 담고 있도다. 내가 독서를 계속해 나가고 한낮의 더위가 가시는 동안, 그대들은 조금씩 그 삶을 에워싸면서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그대들의 고요하고도 향기롭고 투명하게 울려 퍼지는 시간의 크리스털 안에 그 삶을 가두어 놓았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역, 민음사)



로젠 가르텐에 일찍 피어난 몇 송이 장미들(위). 로젠 가르텐의 이름 모를 유월의 꽃!(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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