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하며 브런치 3주년을 맞을 줄은 몰랐다. 오늘이 그날이다. 주말에는 뮌헨에 반가운 친구도 다녀갔다. 즐거운 만남이었다. 내 상태가 이만하길 다행이다. 염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빅투알리엔 마켓 옆 비어가든 Pschorr에서 먹은 전통 음식 돼지 뒷다리 슈바인 학세와 감자 크누들(왼쪽). 오른쪽은 남편이 주문한 소고기. 곁들인 건 빵으로 만든 셈멜 크누들.
토요일 레아마리네를만났다. 그것도 뮌헨에서 갑자기. 그날은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서 영사관이 없는 독일 남부 지방으로순회 영사를 온 날이었다(뮌헨에는 한국 영사관이 없다).장소는 뮌헨 인근의 소도시 이스마닝 Ismaning. 처음 뮌헨에 왔을 때는 봄마다 뮌헨의 한글학교에서 순회 영사가 있었는데, 작년 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했다. 아이의 한국 여권을 새로 만들까 생각하던 참에 순회 영사가 있다는 레아마리 맘의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당장 만나기로 했다. 당일 이른 아침에는 우리집까지 픽업을 와주었다. S반을 타고 가려니 시간이 배로 걸릴 것 같았다. 남편은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아이를 모임 장소에 데려다주어야 해서 순회 영사 후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이에른 남쪽 잘츠부르크와 인접한 곳에 사는 레아마리네를 못 만난 지도 꽤 되었다. 작년 여름과 겨울에는 아이가 레아마리네에 가서 며칠 즐겁게 놀다 왔다. 레아마리와 우리 아이는 서울 독일학교 유치원 때 만난 친구 사이다. 한국 나이로 다섯 살 때였으니 어느새 7년의 세월이 지났다. 시간은 어른들에게만 흐르는 게 아니다. 애기 티가 나던 두 아이는 어느덧 자라 독일로 왔고 둘 다 독일의 중등학교인 김나지움 5학년생이 되었다. 키도 크고 마음도 자라고 얼굴에는 뾰루지가 생기는 사춘기의 문 앞에 서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레아마리 동생 노라도 독일 초등 1학년이 되었다. 언니들이 상대가 안 될 만큼 야무지고 똘똘하게 자라는 중이다. 어떤 인물이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아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던 야외 카페 리트라투어 하우스 Literaturhaus.
뮌헨 시내로 돌아온 건 오후 2시였다. 점심은 늦게 먹었다.순회 영사에 온 사람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업무를 본다기에 정각 9시에 갔더니 벌써 50명이 번호표를 받았단다. 놀라운 민족아닌가! 어쩜 저리 부지런하고 동작이 빠르단 말인가. 4시간을 기다린 후 오후 1시에 서류를 제출하니 끝! 새 여권은 3주 반 후 우편으로 보내준단다. 놀라운 건 나와 레아마리 맘이 끝나고도 50명이 더 있더라는 것. 더 놀라운 건 영사관 측에서 점심도 안 먹고 일을 계속하더라는 것. 거기다 친절하기까지 하더라는 것. 1년 전쯤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에 갔을 때도 느낀 거지만 그때도 친절함에 놀랐다. 보통 대사관이나 영사관 하면 불친절이 답 아닌가. 못 믿겠다면 없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한 번 가보시라! (그날 오후까지 기다렸다 볼일을 봐야 했던 분들 사이에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영사관 측의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예약을 안 받은 것,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예측하지 못한 것 등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레아마리 맘의 남편 에디는 우리를 위해 운전을 하고 긴 시간을 불평도 없이 기다려 주었다 다. 번호표를 받고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임시 영사가 열리는 주변에는 카페도 빵집도 없었다. 에디가 부근의 대형 마트에서 브레첼 Butter Brezel과 음료를 사 왔다(독일은 대형 마트에서도 매일 아침 신선한 빵을 구워 판다). 지금까지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브레첼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빵 덕분에 4시간을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브레첼은 독일, 특히 남부 지방에서는 국민 간식쯤 된다. 브레첼을 가로로 잘라 그 사이에 버터를 바른 버터 브레첼(부타 브레첼 Butter Brezel)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침에도 먹고, 도시락에도 넣어오고, 야외 갈 때도 챙긴다. 특히 여름날 뮌헨에 오시는 분들은 비어가든에서 뮌헨의 명물인 바이스비어 Weißbier 맥주와 껍질을 벗겨 겨자 소스에 찍어먹는 뚱뚱한 흰 소시지와 특대형 브레첼 빵을 잊지 마시길. 투박해 보이는 브레첼 빵이 갓 지은 햇밥처럼 쫄깃하고 부드럽고 향긋하다는 걸 알고 놀라실 것이다. 브레첼은 일반 빵집에도 있다. 버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브레첼 샌드위치도 맛볼 수 있다. 브레첼에 버터와 쌉쌀한 루꼴라나 잘게 썬 잔파를 뿌린 조합도 추천 메뉴다. 빵이 짜다 싶으면 표면에 붙은 굵은소금은 떼고 먹으면 된다. (다음날 남편이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갈 때 부타 브레첼도 부탁함. 신선하고 맛있었지만 전날만큼은 아니었음!)
버터 브레첼 Butter Brezel. 버터를 너무 많이 바르는 게 흠이라면 흠. 매듭이나 하트 모양으로 유아들은 목에 걸고 다니며 먹기도 한다.
그날의 백미는 수다였다. 레아마리 맘과 우리 언니와 셋이서 한국어로 속시원히 떠드는 맛은 독일 맥주와 독일의 전통 음식인 슈바인 학세(복수는 학센)에 견줄 만했다. 슈바인 학센은 돼지 뒷다리를 오븐에 잘 구운 음식인데 한 번 먹고 나면 최소 서너 달은 생각나지 않는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럽다. 독일 맥주와 먹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간 비어가든에서는 먹기 적당하게 1/2 사이즈를 주문할 수 있었다. 긴 안부와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소식과 함께 내 투병 보고는 짧게 끝냈다. 남편들도 자기들 만의 대화로 훈훈한 분위기 연출. 날씨가 어찌나 화창하던지 사람들이 다들 집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레아마리네 차를 주차한 이탈리 Eataly 지하 주차장도 만차였다. 뮌헨 시내가 그렇게 북적이는 것을 코로나 이후 처음 보았다. 야외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단체 관광객도 보았다. 몇 주 전부터 시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규제가 풀렸다. 가게나 레스토랑 출입 시에만 마스크를 쓰고 테이블에 앉으면 벗어도 되었다. 코로나 테스트 결과지도 필요 없고, 비어가든에서만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레아마리 맘과 쇼핑도 했다. 레아마리네가 사는 곳은 멋진 호수가 많은 청정한 알프스 자락이다. 오랜만의 뮌헨행이니 시내 구경을 하며 쇼핑도 빼놓을 수 없지. 멋진 옷가게들을 둘러보는 즐거움이란. 자고로쇼핑은 여자들끼리 해야 한다. 남편들은 카페에서 쉬었다. 예정에 없던 만남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했다. 다음에는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다같이 영국정원에 갈 수 있길 바란다. 호수 앞에 있는 영국정원의 야외 비어가든은 뮌헨에 온다면 꼭 가봐야 할 장소니까. 그날은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오후 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크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리에 부종기가 있기는 했지만 다음날 산책을 하고 푹 쉬었더니 나아졌다. 주말에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가벼운 샐러드와 과일만 먹었다. 과식 때문인지 위가 아팠기 때문이다. 사흘 동안 절식을 하자 통증이 없어졌다. 위가 아프다는 소리에 사색이 되던 남편을 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과식은 금물. 항암 후 저녁에 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은 게 탈이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1킬로가 빠져서 적정 체중도 유지하고 있다.항암 부작용이 적어서 반가운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날들인가.
평일에 찍은 뮌헨 시청사. 사람들이 적다(위). 빅투알리엔 마켓 옆의 이탈리 Eataly는 슈퍼마켓+레스토랑+카페를 한 건물 안에서 이용할 수 있다(아래).
PS. 오늘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3주년째다. 총 600개의 글을 썼다. 변함 없이 응원해주신 구독자님들께 감사하다. 주말에는 댓글에 답글도 달아보았는데 쉽지 않았다. 답글은 안 달아도 괜찮다는 어느 분의 말씀에 기대어 앞으로도 읽기만 할 지도. 힘을 아껴 소식을 전하는데 집중하겠다. 3년 동안 애정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