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록다운을 계기로 최근 넥플리스로 세계의 안방을 달구고 있다는 K-드라마를 보았다. 가장 먼저 본 건 <나의 아저씨>. 록다운이 준 선물은 단연 응답하라 시리즈였다. <응답하라 1995>를 보고 든 생각. 왜 한국에 있을 때 안 봤을까. 드라마 시청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오만한 생각도 즉시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K-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도깨비>. (사진 출처:|네이버)
내가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올해 요양원 주방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쿠키. 한국 드라마 광팬이었던 그녀는 터키에서 온 50대 여인이었다. 그녀의 요리와 디저트에 대한 감각은 남달랐다. 젊을 때는 디저트 코스만 따로 배우기도 했다고. 그녀의 데코 스킬은 나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컬러의 조화가 식감을 몹시 자극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같은 디저트라도 위에 무엇을 올리느냐, 무엇과 함께 올리느냐,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내가 좋아한 건 딸기와 민트 잎과 초콜릿 무스 몇 줄. 혹은 노란 오렌지 한 조각과 초콜릿 스틱 같은 것. 평범한 초록 잎 하나도 그녀의 손이 닿기만 하면 자연스럽고 멋져 보였다. 그녀와 같은 조로 일할 때면 언성을 높이는 법도 없이 차근차근 일을 알려주는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시연을 바라보는 5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그녀가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애정과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주방에서 일한 5개월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순간을 택하겠다.
쿠키는 넉넉한 외양에 섬세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남은 건 그녀에 대한 기억뿐. 나를 괴롭히던 누군가 말고. 그녀가 폭풍처럼 사랑한 K-드라마. 그녀의 폰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K-드라마 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 절반은 제목만 알고, 나머지 절반은 제목조차 들어본 적 없는 드라마들이었다. 그녀가 사랑한 배우는 공유. 말 그대로 그녀는 공유를 죽도록 사랑했다. 왜냐고 물으니 '스위트' 해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나는 쿠키를 보며 그녀가 사랑한 드라마보다 그게 더 궁금했다. 그녀에게 한국 드라마는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오랜 노동의 대가로 얻은 발과 무릎의 통증을 잊게 하는 치료제였고, 매일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한때는 우울증 때문에 1년 반인가 입원한적도 있다는 그녀. 밤낮도 없이 그녀가 일편단심 사랑하는 공유와 K-드라마가 있는 한 다시 우울과 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가 1순위로 추천한 드라마는 당연히 공유의 <도깨비>. 공유의 광팬은 아니어서 고심 끝에 다른 드라마를 택했다.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 많은 이들의 추천 댓글을 참고로 했다. 막장이 좀 덜한 걸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와 OST를 부른 빌리 아일리시(위)/아델(아래). (사진 출처:|네이버)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알아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지. 공유를 모르듯 이선균도 몰랐다. 목소리가 '드물게' 좋은 배우라는 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드라마를 보니 더욱 좋았다, 그의 목소리. 목소리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영국 배우도 목소리가 좋다. 제레미 아이언스와 다니엘 크레이그. 세상에, 제레미 아이언스가 벌써 70이 넘었다니! 총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그의 영화 중 내가 아끼는 것은 <리스본행 야간열차(2013)>와 <레이디스 앤 젠틀맨(2002)>이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의 영화들보다 덜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대표적인 그의 3대 비극 영화는 <로리타(1997)> <M 버터플라이(1993)> <데미지(1992)>. 그의 열정적인 팬이면서 아직까지 안 보고 아껴둔 영화들도 있다. <조지아 오키프(2009)><카사노바(2005)><베니스의 상인(2004)><카프카(1991)><스완의 사랑(1984)><프랑스 중위의 여자(1981)>. 그의 이름을 모른 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는 <하우스 오브 스피릿(1993)>. 원작은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었다. 영화도 책도 둘 다 좋았던 케이스.
올해 개봉 예정이었던 다니엘 크레이크의 마지막 작품 <No Time To Die>는 코로나로 개봉이 연기되었다. 올해 4월에서 11월로, 11월에서 다시 내년 4월로. 과연 내년 봄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 나는 007 시리즈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았던 건 역대 007 시리즈 중 최고라는 평까지 들은 <카지노 로얄>. 그의 슈트처럼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역대 최고 본드걸, 에바 그린. 그리고 비장한 결말까지. 이후 007 시리즈 50 주년작 <스카이폴>은 가수 아델이 부른 OST 공도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Hello, it's me'로 시작하는 그녀의 노래 Hello는 수북이 쌓인 11월의 낙엽 위로 스며드는 겨울비 같다. 2011년 로열 앨버트 홀 라이브 공연에서 Someone like you를 부르며 흘리던 그녀의 눈물. 공연 마지막 곡 Rolling in the Deep을 부를 때 천정에서 쏟아지던 금빛 반짝이들. 그녀가 무대를 떠난 후에도 멈추지 않던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2011년 9월 그녀의 나이 만 스물세 살 때의 일이다. 우리 나이로 스물에 데뷔, 현재 만 서른두 살. 최근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젊고,더 건강해졌다. 그녀가 만드는 노래를 오래 들을 수 있겠다는 뜻이다.
<No Time To Die>의 OST는 미국의 빌리 아일리시가 불렀다. 무려 2001년도에 태어난 가수다. 나이는 다음 달에 만 19세,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다. 친오빠 피어니스와 같이 직접 노래를 만든다. 그들의 부모는 남매에게 홈스쿨링을 시켰다.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체 어떤 부모들이기에? 아버지는 배우, 어머니는 배우/음악가/시나리오 작가로 두 사람 모두 생계형 예술가들이었다. LA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함께 했고, 이후 빌리는 댄스와 연극을, 오빠 피니어스는 14살 무렵 엄마와 작곡을 배웠다. 데뷔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빌리의 댄스 선생님이 안무를 위해 노래를 부탁, 오빠가 만들어놓은 곡에 그녀의 목소리를 보탰다. 댄스 선생님 놀라시고, 음악 공유 플랫폼에 올리고, 하룻밤 새 천 명이 듣고, 나중에 댄스를 곁들여 제작한 뮤직 비디오까지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고, 음반사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함.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달성한 히트곡은 Bad Guy. 느낌은 딱 이 댓글* 같다. '귀찮은데, 시켜서 부르는 느낌인데, 잘함'. 눈빛이나 표정만큼 몽환적인 그녀의 보이스는 <No Time To Die>에서 단연 돋보인다. (젊은 애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50대 이후 노티들에게. 이런 노래, 진짜로 이해돼요? 난 되는데?)
<응답하라 1988> 포스터. (사진 출처:|네이버)
독일의 록다운도4주째로 접어들었다. 연일 확진자 수가 1만 5천~2만 명을 오르내리다가 4주째 첫날인 어제 록다운 이후 처음으로 1만 명 대로 내려왔다. 그럼에도 록다운 연장은 정해진 수순 같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사람의 취향도 취미도. 성실했던 사람을 게으르게도 만들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처럼 안 해 본 것도 해 보게 만든다. 드라마 시청 같은 것. 두세 편이 목표다. 첫 드라마를 언제 볼까 고민하다가 뜻밖에도 지난주 수요일이 독일의 공휴일이라지 뭔가. 거사일은 공휴일 전날 저녁이 되었다. 저녁에 시작해서 예상대로 밤을 새웠고, 남은 몇 편은 다음날 오전까지 보았다. 16편을 유튜브로 보았는데, 광고가 많아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나의 아저씨>는 기본 스토리에 무리한 설정도 있었지만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동 포인트는 유치한데 따뜻함. 결과가 뻔한데 눈물이 남. 외국에서 부는 K-드라마의 성공 요소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사람 사는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우리가 잃은 것과 되찾고 싶은 풍경이 한국인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K-드라마에 외국 사람들이 빠지는 이유겠다. <나의 아저씨>는 제목보다 건전한 드라마였다. <나의 '키다리' 아저씨>가 더 맞을 듯.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한 명쯤은 있지 않나. 한 가지 궁금한 건, 삼 형제와 동네 조기 축구회 친구들이 밤마다 술을 퍼마시던 단골 정희네 술값은 누가 냈을까.
최근 유튜브에서 <응답하라 1988>이 화제가 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힘이 가세했다. 상상이 되시나.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응팔을 본다. 그리고 이해한다. 심지어 감동까지 받는다. 어느 유튜버**가 응팔을 시청한 캐나다인과 멕시코인의 소감을 이렇게 소개했다. '1988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응팔은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그것이 응팔의 매력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응팔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마법 같은 드라마다'. '쌍문동은 내게 이상향 같은 곳이다. 나는 여기 응팔에서 완벽한 세상을 꿈꾼다.' 나 역시 응답하라 시리즈의 명성은 잘 알고 있었다. 독일에 와서도 한 번은 꼭 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나도 그때 20대였고, 그때는 나도 한국에 살았으니까. 내가 지나온 시절을 드라마를 통해 다시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도 궁금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나의 아저씨>를 보고 며칠 후에. 어떤 기분이었냐고? 왜 한국에 있을 때 안 봤을까 후회함. 드라마 시청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오만한 생각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림. 대본을 쓴 작가와 드라마를 만든 PD에게 감사함. 내가 가장 먼저 본 건 <응답하라 1995>였다. 현경네에서 넷플릭스로아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