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도 최근 K-Pop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코로나 동안에는 K-드라마와 K-푸드가, 코로나 이후에는 K-컬처가 물밀듯 밀려올 것 같다. 시류에 편승하여 나도 올 겨울 독일 시부모님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코리안 스타일 '할매 담요'로 승부를 걸어볼까 한다.
빈의 K-Pop Cafe (사진 출처:2010.9.25 오마이뉴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듣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수궁가에 왜 뜬금없이 범이 내려왔을까. 토끼 떼도 아니고. 판소리 <수궁가> 하면 토끼 얘기 아닌가.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자라 말이다. 용왕님 병에 용하다는 토끼의 간을 얻기 위해 토끼를 용궁으로 유인하는 이야기. 토끼를 잡기 위해 요원 선발 대회가 열렸는데 첫 번째 주자가 '게'였다는 사실도 뜻밖이다. 옆으로 걷는다는 핸디캡 때문에 그 자리를 꿰찬 건 별주부 자라. 뭍에서 토끼와 대면하기전 범과 한판 승부도 벌였다. 자라의 기지 역시 토끼에 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보인 결정적인 장면이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뭍에 당도한 자라가 절벽을 오른다.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 굴로 가야 할 게 아닌가. 자라는 목을 빼서암벽을 오른다. 절벽에 오르는 순간 토끼로 추정되는 동물이 뛰어가는 것을 보고 급한 마음에 토선생을 불렀으나 기가 파하고 발음이 새는 바람에 '토'가 '호'가 되었다는 이야기.그러자 범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고. 이것이 조선의 해학이다. 노래 <호랑이 뒷다리>는 '호 선생'의 어리숙함과 짠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범 내려온다>의 속편에해당한다.
이날치의 노래 중에는 <어류도감(A Fish Map)도 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 자신감을보시라. 백과사전도 아닌데 시작부터 도미, 오징어, 낙지, 가오리가 호명된다. 내용은 상어부터 삼치까지 여섯 종류의 물고기와 가재와 개구리가전부다. 물고기 이름이 그대로노래가되었다. (도미, 오징어, 낙지, 가오리/승상 거북, 승지는 도미/판서 민어, 주서 오징어/한림 박대, 대사성 도루묵/방첨사 조개, 해운공 방개/병사 청어, 군수 해구, 현감 홍어/조부장 조기, 부별 낙지/장대, 승대, 청다리, 가오리/좌우 나졸, 금군 모조리/상어, 솔치, 눈치, 준치, 멸치, 삼치/가재, 개구리까지 명을 듣고/어전에 입시허여 대왕에게 절을/꾸벅)
한국 호랑이 담요(사진 출처: 네이버&다음)
내게는 판소리에 대한 몇 조각의 기억이 있다. 만삭 때 2년 간의 싱가포르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그때도 11월이었다. 초겨울 바람 속에 서 있기만 해도 얼마나 시원하던지. 친정이 부산이라 부산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100년 동안 미군기지였다가 현재는 공원이 된 부산시민공원 앞에 국립 부산국악원이 있었다. 연말인가 새해인가에 친정 엄마와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갔는데 <심청가>였다. 어떤 명창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판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뱃속의 아기도 판소리 장단에 맞춰 엄마 배를 툭툭 찼다.
아기가 만 세 살이 되던 해 서울로 갔다. 서울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아이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였다. 주말에 남편과 아이와 언니와 이태리 형부까지 북촌으로 놀러 갔다. 북촌 사거리에서 경복궁, 삼청동 쪽 방향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뒤쪽 골목을 걸었다. 초여름이었나 늦여름이었나 잘 모르겠다. 북촌 일대에는 우리 소리 한마당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 한옥 마당에서 판소리 공연이 있다는 걸 들었다. 한옥 쪽마루에 끼여앉아 그날 들었던 판소리는 <춘향가>였을 것이다. 어두워져 가는 한옥 마당 구석에 등불이 켜지고, 젊은 소리꾼들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한옥 담장을 넘어갈 때 한국에 와서 참 좋구나 싶었다.
이날치 노래 중 판소리 느낌이 가장 많이 나는 것은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일명 토끼의 변이다. 넘사벽의 재기와 재치와 대담함과 임기응변과 능수능란과 능청스러움에 허세와 허풍까지 더해진 토끼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대목. 영화나 소설로 치자면 뺀질거려 얄밉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나쁜 주인공쯤 되겠다. 이날치를 듣다가 생각했다. 그런 날도 올까. 소설이 노래가 되고 세계문학의 걸출한 작가들이 랩으로 호명되는. 위대한 개츠비와 히스클리프가 폭풍의 언덕에서 비트를 타고 내려오고,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와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이 유튜브에 억 단위의 조회수를 찍고, 고래 모비딕이 굿즈로 불티나게 팔리는.
영주 호미와 돌솥(사진 출처: 블로그 소소한 이야기와 네이버)
얼마 전에 오스트리아의 빈에 K-Pop 카페라는 게 있다는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보았다.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한류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K-Pop을 듣고, 한국어 수업을 하고, 한국 음식을 만들고, 한국 굿즈를 사고,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 저런 핫한 곳이 왜 뮌헨에는 없을까.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다. 내가 직접 못하는 이유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어서. 요즘 한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아직까지 주변에서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독일인이 많다는 뜻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K-컬처가 대세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2000년 도쿄에 살 때 한류 열풍의 중심은 <겨울연가>였다. 나도 그때 누가 비디오를 빌려줘서 2박 3일 드라마 폐인이 된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K-드라마의 치명적인 마력을. 그때 이후로 드라마는 멀리 하고 살고 있다. 한 번 빠지면 영영 못 헤어날 것 같아서.
올 가을 독일어 동화 필사를 하다가 손에 맞는 볼펜을 만났다. 놀랍게도 어딘가 굴러다니던 한국의 원조 볼펜인 흑백 모나미였다. 왜 있잖나. 그 촌스럽다면 촌스럽고, 쓰다 보면 똥도 나오고, 노트 옆에 티슈를 놓고 계속 닦으며 써야 하는. 그러다가 브런치 작가 han님의 조언으로 알게 되었다. 이 모나미가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M153이라는 007 삘 나게 개명까지 하고서. 뒤도 깔끔하고 수출까지 된다는말을 듣고 독일 아마존을 검색했다가 깜놀! 진짜 있더라. 그때 장담을 했다. 곧 뜬다, 코리아. 일본, 중국은 지고.
아마존에서 '힙 아이템'으로 등극한 코리안 제품은 세 가지다. 호랑이 담요로 불리는 극세사 밍크 담요. 이 촌빨 날리는 한국 할머니 담요를 두고 유튜버 Peachy 피치라는 분이 이렇게 한 방에 정리했다. '한국 특유의 눈치 안 보는 컬러와 디자인'이라고. 아마존에서 '코리안 밍크(벨벳) 블랭킷 Korean Mink(Velvet) Blanket'으로 판매되고 있다. 장미나 목단 같은 강렬하고 화려한 꽃무늬 버전도 있다. 아마존을 열대 밀림 정도로만 알고 계시던 영주 대장간 석노기님의 호미 Ho-Mi도 유명하다. 돌솥도 가세했다. 'Korean dolsot'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고. 라면이나 고추장, 김치 등도 있다. 이러다 온돌 열풍*도 부는 게 아닐까. 다른 나라에는 바닥 난방이 없어 겨울이 너무 추우니까. 나는 마음을 정했다. 올해 시부모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국산 '할매 담요'로. 내년 부활절엔 아마도 호미?
뮌헨 마리엔 광장 앞.
*놀랍게도 한국 온돌이 발빠르게 벌써 러시아에 진출해 있었다. '경동나비엔' 보일러가 러시아 국민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소식. 유튜브 <생활백서 Lifepedia>를 참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