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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12. 2021

열두 번째 항암의 어려움

나는 소고기, 언니는 강된장!


열두 번째 항암을 앞두고 있다. 이번 주도 화요일 피검사. 수치가 낮아 호중구 주사를 집에서 맞았고, 수요일은 휴식. 목요일 아침 다시 피검사. 항암은 정오부터다.


이자르강 산책길에 보았다. 조가비에 새긴 로잘리를 사랑하는 마음. 돌다리에는 에바!



열두 번째 항암을 앞두고 있다. 지난주에는 가까스로 항암을 마쳤다. 항암 전날 피검사 후 호중구 주사를 맞았고, 항암 날에도 수치(2.7)가 완전히 올라오지 않아서 호중구 주사를 또 맞았다. 다음 날에야 수치(2.9) 마지노선에 도달했다. 지난주에는 의사 선생님 두 분께 상의를 드렸다. 먼저 마리오글루 샘. 백혈구 수치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을까요? 아무것도 없단다. 소고기를 자주 먹는  도움이 될까요? 안 된단다. 이 모든 건 항암의 강도가 세기 때문이라서. 마리오글루 샘은 항암의 강도를 줄여보겠다고 했다. 친절하신 여의사 악커만 샘의 의견도 같았다. 소고기 섭취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의외였지만 고기 섭취가 많은 나라라서 음식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악커만 샘이 간단하게 중간 검사 결과도 알려주셨다. 자궁과 뼈로 전이된 암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작아지지는 않았지만, 더 커지거나 주위로 번지도 않았다고. 그러니 다행이라고. 나 역시 감사하게 생각했다. 더 나빠지지만 않아도 좋은 게 얼마나 많은가. 인간 관계도 그렇고 암도 그렇다. 고통스럽거나 괴롭거나 힘들지 않게 항암을 계속할 수 것도 다행이고,  부작용 없이 항암의 나날보낼 있는 것도 고맙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물러가겠지. 목표는 그때까지 버티기. 이번 주도 화요일 피검사. 수치가 낮아 호중구 주사를 집에서 맞았, 수요일은 휴식. 목요일 아침 다시 피검사. 수치가 올라서 항암은 정오부터다.



이자르강 숲 속 바베큐 장소. 예약 없이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위). 비 온 뒤 이자르 강변 산책로(아래).



뮌헨의 날씨는 다시 좋아졌다. 이번 주는 계속 해 소식이다. 비도 안 온다. 기온도 평년을 되찾아 최고 기온이 26~28도. 주말에는 30도까지 오를 전망이다. 올해만큼 이상한 날씨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독일의 계절은 오월과 유월. 내게 계절의 여왕으로 등극한 그 두 달 동안 올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언니는 우리 집이 춥다며 털신을 신었고, 집안에서도 겉옷을 껴입고, 잘 때는 1인용 난방 매트를 켰다. 칠월과 팔월이 와도 반전은 없었다. 비가 와도 너무 오는 게 문제. 오죽하면 정원 때문에 비를 반기시는 카타리나 어머니마저 궂은 날씨를 원망하셨다. 팔월 중순이 지나면 기온은 다시 25도 아래로 내려갈 듯하다. 여름의 끝. 무더위에 약한 남편에겐 비교적 수월한 여름이었다. 비를 좋아하는 나도 괜찮았다. 추위를 잘 타는 언니에게만 독일 날씨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왜 하필 언니가 왔을 때 이 모양이냐고!


지난주부터 언니가 시름시름 앓았다. 언니가 독일에 온 지는 석 달. 몸살이 날 만도 했다. 말은 안 해도 한국에서 안 하던 집안 일과 삼시 세 끼 밥상 차리기와 매일 장보기가 쉬웠겠나. 언니가 말했다. 집에서 아이 키우고 집안일, 즉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 그중에서도 하루 세 번 밥하기가 이렇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고. 전업 주부들과 맞벌이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밥은 그냥 되나. 장 보고 다듬고 씻고 썰고 조리하고. 먹고 나면 치워야지 설거지해야지. 마른행주로 닦아 찬장에 들어가야 끝. 아이가 방학을 하기 전까지 언니의 하루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저녁 9시가 지나야 끝이 났다. 그게 다가 아니다. 집에서도 열치료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저녁마다 내 친구 J가 보내준 돌베개를 따끈하게 데워 내 가슴에 얹어준다. 화상 방지를 위해 이불 위에. 그리고는 내가 잠들 때까지 두 발 마사지. 부담스럽다고 한 마디 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사샤는 보았을까? 저 간절한 느낌표를! 뮌헨 동물원으로 가는 다리.



이번 주에 언니는 입술이 부르트고 눈에는 다래끼가 났다. 입술은 우리 동네 약국에서 연고를 사 와서 바른 후 조금씩 낫는 중. 눈은 오른쪽 아래 안쪽. 밖으로는 크게 표가 안 나지만 아래쪽 내부는 난리 직전. 비자를 연장하기 전에 건강보험을 들어둔 게 다행이었다. 남편이 예약해준 시내 안과에 언니와 같이 갔다. 오데온즈 플라츠 Odeonsplatz. 우리 가족은 독일에 온 지 3년이 지나도록 안과에 간 적이 없어 집 근처에 아는 곳이 없었다. 안과라고 기엔 내부가 너무나 넓고 깨끗하고 럭셔리해서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나중에 우편으로 날아올 청구서가 걱정될 정도였다. 나이 든 의사는 친절했고 영어도 유창했다. 의사가 크게 걱정할 것 없다두 가지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하루가 지나자 의사 말대로 훨씬 나았다.


안과에 가기 전에 언니는 강된장으로 점심을 먹었다. 전날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인상 깊게 보았다며. 얼마나 맛있어 보였으면 그것만 먹으면 입술 부르튼 것도 낫고, 다래끼낫고, 몸살기도 훌훌 털고 일어날 것 같았다. 그날은 배추도 삶고, 양배추도 삶고, 상추도 씻어서 한 상 차린 후에 강된장과 같이 먹었다. 언니는 강된장에 현미잡곡밥을 비벼서 쌈과 함께 먹었더니 살 것 같다고 했다. 소고기도 못한 일을 강된장이 해낸 것 같았다. 된장의 힘! 언니는 새로운 레시피로 행복해했다. 자기가 조리하니 맛이 없다며 그동안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 강된장 한 그릇에 눈빛이 살아나고 안색도 좋아졌다. 분명히 눈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어제는 정신없이 먹느라 사진을 못 찍어서 병원에서 언니가 보내줄 강된장 사진을 기다리고 있다.



팔월의 언니표 밥상은 강된장(위)! 항암날은 언니의 샌드위치(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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