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항암과 <뮌헨에서 라디오>

편지 65

by 뮌헨의 마리


열여섯 번째 항암도 마치고, 언니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뮌헨에서 라디오>라는 유튜브에서 낭독되는 샘께 띄운 저의 브런치 글 <뮌헨의 편지>를 뮌헨의 카페에 앉아 듣는 구월입니다.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카페 <헥센하우스 : 마녀의 집>



그리운 샘!


열여섯 번째 항암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두 번 남았습니다. 자축하는 뜻으로 최근 자주 가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카푸치노도 연달아 마셨고요. 반년 넘게 참았던 달콤한 디저트까지 먹었어요. 기분 최고였답니다! 뮌헨의 9월은 보름 동안 멋진 날씨를 선사했어요. 며칠 전부터 다시 흐리고 기온도 내려갔지만 괜찮습니다. 가을 햇살이 한번 더 찾아와 줄 때까지 잘 견뎌볼 생각이에요. 지난 두 주 동안 발코니의 화분에도 꽃들이 만발했답니다. 보랏빛 라벤더, 빨갛게 익은 딸기와 다육이 꽃, 이름을 모르는 노란 꽃. 꽃들의 향연에는 벌들이 찾아와 분위기를 띄워주었고요.


다육이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여야겠네요. 제가 다육이 과라는 것도 이번에 다시 깨달았거든요! 5월 초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율리아나 할머니로부터 꽃이 가득 핀 다육이를 선물 받았어요. 얼마 후 꽃은 지고 발코니 창가에 방치해둔 다육이 화분에 언니가 물을 자주 주었죠.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내버려 두는 게 나은 것들도 있잖아요. 물이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면 되고요. 지나친 게 모자람보다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저도 다육이과인가 봐요. 저는 고독을 싫어하지 않거든요. 언니와 같이 보낸 몇 달도 좋았지만,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시간도 좋답니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은 필요한 법이니까요.



자유로운 영혼. 카페에도 영혼이 있다면!



샘.

지난 주말에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형부가 건강검진을 받았거든요. 큰일이든 큰일이 아니든 둘이서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큰일이 아니라면 고맙고, 어떤 게 오더라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요. 모든 일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언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형부에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제가 그랬듯이요. 언니 덕분에 저는 '황후'의 항암을 했습니다. 다이어트에 '황제'가 있듯 항암에도 그런 표현을 붙일 수 있다면요. 부작용 없는 항암에 대해 적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언니와의 멋진 팀워크의 결과였어요. 저에게도 언니에게도 지난 넉 달은 최고의 경험이었답니다.


언니가 없다고 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요. 언니가 없는 게 기본값이고 정상이니까요. 언니가 옆에서 도와주는 게 덤이었지요. 그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언니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고, 모든 걸 내려놓고 달려와줄 상황이 되어야 하고, 언니에게 그런 의지가 있어야 하고요. 저는 그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던 케이스예요. 그렇다고 해서 좋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자주 싸웠거든요. 이런 게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어요. 100% 좋은 건 없다는 거죠. 언니가 갔다고 무너지지도 않잖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남은 항암도 걱정 마세요. 혼자서도 잘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병원 부근의 프랑스 카페. 노천 테이블 색깔도, 벽에 걸린 그림도 누가 봐도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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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행복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맘에 드는 카페를 두 개나 찾았거든요. 동네에서 하나, 병원 근처에서 하나. 동네 카페는 사람들에게 <마녀의 집>이라는 뜻으로 헥센 하우스 Hexenhaus로 불린답니다. 주변에서 그 카페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제 눈에는 나무의 집으로도 보여요. 일명 바움 하우스 Baumhaus. 나무 위에 직접 지은 건 아니지만 큰 나무의 아름드리 가지를 그대로 살려서 2층에 데크를 깔았거든요.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지! 그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만날 것 같아요.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와 위층 오스카 엄마 안도, 조카도, 현경이네도 거기서 만났고, 레아마리네도, 다른 브런치 작가님도, 뮌헨에서 유튜브를 하시는 멋진 분과도 거기서 만날 거예요.


예전에 말씀드린 유튜브 <뮌헨에서 라디오>에 제가 쓴 글 <뮌헨의 편지> 9.8일과 9. 15일 두 차례 올라가 있어요. 유튜버는 잠만자라는 분이고, 낭독하신 분은 안네라는 분인데 목소리가 참 고와요. 언젠가 저도 저의 브런치 글을 유튜브로 만들어 읽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만두었거든요. 귀찮기도 하고 유튜브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제가 생각만 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니 신기하네요. 글은 매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유튜브 같았으면 쑥스러워 홍보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다른 분의 유튜브이니 맘껏 알릴 생각입니다. <뮌헨에서 라디오> 많이 구독해 주세요! 샘도 가을볕에 더욱 건강해지시고요!



가을볕에 딸기와 다육이꽃이 익어가는 계절. 풍성한 허브들은 말해 무엇.



https://www.youtube.com/watch?v=NGwbeF-Ytwo

9.8일자 유튜브 <뮌헨에서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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