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열한 번째 항암입니다. 소고기도 먹으며 노력을 하는데 백혈구 수치가 기대만큼 오르지는 않네요. 이번 주는 호중구 주사를 두 번이나 맞고 다시 병원에 와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뮌헨의 그리스 식당 앞 광장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
그리운 샘.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TV를 보지는 못해도 매일 어떤 종목이 분발하는지, 어떤 선수들이 영광의 메달을 목에 거는지, 누가 눈물을 삼키는지 인터넷을 확인합니다. 폭염 속에 그들이 흘렸을 땀방울을 생각하며 맞이하는 팔월입니다. 올림픽은 절반을 지나 막바지를 향하고 있고, 저 역시 아홉 번째와 열 번째 항암을 지나 열한 번째 항암을 위해 사흘 동안 병원에 와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틀린 말이 아닙니다. 항암 18회의 반환점을 돌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고, 팔월 첫날에는 1일 산책 신기록도 세웠습니다. (3시간 30분/2만 4 천보/16.3킬로.걱정 마세요. 다시는 이런 무리는 안 할생각이에요. 요즘은 평소대로 1일 2시간/1만 2 천보/8킬로가 목표랍니다.)
요즘 독일은 비가 자주 옵니다. 해와 비가 사이좋게 한 주씩 찾아오네요. 올해만큼 비가 잦은 여름도 없었던 것 같아요. 기온도 따라내려가 무더위는 없습니다. 오늘도 병원에 오는데 아침 기온이 13도. 비도 왔고요. 한밤중에 비가 쏟아지는 날도 많습니다. 자정 무렵이나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어둠 속에 누워서 듣는 빗소리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요와 평안이 담겨있지요. 어느 주말에는 카타리나 어머니를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에 시누이 바바라와 언니와 셋이서 밖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바바라 집 근처 작은 광장의 그리스 식당에서요. 바바라 말로는 거기서 토요일 저녁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바바라도 탱고를 배우거든요. 클레멘스와 알리시아는 같이 안 갔냐고요? 셋이 즐겁게 놀라며 우리만 차에서 내려주고 집으로 내빼더라고요.
그날 저녁 빗속에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비가 내린 건 아니었어요. 광장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 탱고를 보며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죠. 광장 위로는 회색빛 구름이 커튼처럼 가려 있었지만 밤늦게부터 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만 부적처럼 믿었죠. 그런데 독일 날씨가 그렇게 만만한가요. 선전 포고처럼 초조하게 천둥 몇 번 울리고, 콩 튀기듯 번갯불 두어 번 번쩍이더니 주변을 추스를 새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놀라운 건 댄서들이었어요. 비가 내리는데도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계속춤을 추더라고요. 어떤 커플은 핑크빛과 하늘색의 작은 우산까지 받쳐 들고요. 빗줄기는 강해지고 음악도 탱고도 멈춘후에야 식당 안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반팔 차림의 바바라가 추워 보이기도 하고 그리스 음식과차갑게 재회하길 바라진 않았거든요. 그리스 식당의 메뉴는 언니가 갑오징어 튀김 칼라마리 calamari를, 바바라가 흰 살 생선구이를, 저는 연어구이를 주문했는데 연어의 겉이 바싹하게 구워져서 만족도는 최고였어요!
그리스 식당의 메뉴. 언니가 주문한 칼라마리 calamari는 갑오징어 튀김. 바바라는 흰살 생선구이. 나는 만족도가 높은 연어 구이!(아래)
샘.
다섯 번째 항암 이후 백혈구 수치가 낮아 두 주를 쉰 거 기억하시죠? 여섯 번째부터는 매주 호중구 주사를 맞고 있답니다. 아홉 번째와 열 번째는 전날과 당일날 두 번씩 피검사를했고, 항암은 수요일 오후로 미뤄졌지요. 드디어 열한 번째 항암을앞두고 있습니다. 소고기도 자주 먹고 노력을 하는데 백혈구 수치가 기대만큼 오르지는 않네요. 이번 주는 호중구 주사를 두 번이나 맞고 오늘 다시 병원에 와서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번 주에 항암 중간 검사도 합니다. 어제 복부 초음파를 했고, 내일은 CT를 찍습니다. 좋은 결과 알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요. 컨디션은 여전히 좋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습니다. 산책도 변함없이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4권에 도전 중입니다. 기대만큼 진도가 나가진 않지만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마침내 프루스트를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이거든요.
팔월부터는 비타민 C 요법을 열치료와 미슬토 요법과 함께 암병동 옆 자연요법센터에서 시작했어요. 용량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100ml. 시간은 15~20분 정도 걸렸어요. 가격도 예전의 개인 클리닉보다 저렴할 거 같아요. 우리 의사 샘의 비서이자 보조인 프라우 레온하르트 Frau Leonhardt가 직접 주사를 놓는데 노련하게 한 번에 성공.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받아서인지 만족도도 높았어요.강황(Curcuma/Curcumin)은 우리 동네 약국 아포테케 Apotheke에 주문했어요. 우리 자연요법 의사 샘의 처방은 1 g×주 3회 복용. 액으로 맞을 때는 500ml를 맞았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가격이 훨씬 싸고 편해요. 효과는 지나 봐야 알겠지만 무조건 믿고 가려고요. 집에서 맞고 있는 미슬토 주사도 주 3회. 1mg과 2mg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5mg/5mg/10mg. 앰플은 자연요법 의사 샘의 처방전을 받아 직접 약국에서 주문하고요. (가격은 앰플 한 개당 10유로 정도. 주치의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처방전을 거부해서 비용은 직접 지불하지만 불만은 없습니다. 모든 암 환자가 미슬토 요법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공평성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만하면 가격도 괜찮고요.)
비타민 C 요법을 자연요법센터로 옮긴 후 저의 동선은 한결 간편해졌습니다. 비타민 C는 주 2회중하루를 열치료와 같이 받기 때문이지요. 저의 스케줄은 월요일(비타민 C), 화요일(피검사), 수요일(항암/열치료/비타민 C), 목요일(림프 마사지) 순입니다. 항암을 하는 날만 빼고, 오후에 산책을 가고 저녁이나 새벽에 책을 읽는 규칙적인 루틴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지요. 불안과 공포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제가 항암에 만족하는 이유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언니와 걸어서 시내로 산책을 가기도 합니다. 산책을 하다가 새로 생긴 가게 창에 걸린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힐링이 됩니다.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내 민속 박물관 뒤편 야외 카페는 언니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요즘 뮌헨 시내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그래도 텅 빈 시내를 보는 것보다는 마음이 훨씬 좋네요. 샘, 올여름한국은 더위가 심하다고 들었어요. 산책도 힘드시지요? 부산에 정착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시고요? 낼모레가 입추네요. 절기로는 가을의 시작입니다. 한반도를 포함 지구를 덮친 무더위가 빨리 진정되기를 바라요. 샘도 건강하시고요.
언니의 정성 가득한 소고기와 목살(위). 언니와 시내 산책(가운데). 주말의 뮌헨 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