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유센터에서 물리 치료사 알더 씨를 만나고 나는 내 병에 낙관하기 시작했다. 이런 치료사라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물고기들의 왕중왕 고래를 만난 기분.
내가 묵은 병실의 발코니에서 보이던 숲은 자주 안개의 바다였다.
지난 열흘간 머물렀던 뮌헨의 자연치유센터 재활 겸 요양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코로나만 아니었더라면 많은 입소자들과도 교류를 하고 정보도 교환했으련만. 아쉽게도 모두들 강제적 혹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해야 했다. 식사는 각자의 룸에서만. 그룹 운동은 축소, 헬스장 출입도 금지. 산책도 1인 산책만 허용했기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놀란 건 입소자들 중에는 2,30대도 꽤 있더라는 것. 테라피는 물리 치료사들이 입원실로 직접 와서 했다. 편한 건 둘째 치고라도 얼마나 번거롭던지.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침대 뒤편의 보호대를 뺐다가 다시 끼우는소음까지감수해야 했다.
이번 입소 기간 동안 물리 치료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나 요양사들과의 교류도 빈번했다. 내가 놀란 건 간호사, 요양사, 물리 치료사들 중 많은 이들이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게다가 우호적이기까지 했다는 사실이었다. 믿기시는지. 나도 잘 믿기지 않았다. 독일에 살면서 이런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호감도가 더했다. 20대 독일 청년 라파엘이 그랬다. 요양 보호사였던 라파엘은 꽁지머리에 밝고 유쾌한 청년이었다. 나를 만날 때마다 한국말을 한마디씩 배워 다음부터는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한국은 컴퓨터 게임,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때문이라고.
카롤리나는 검은 머리의 젊은 간호사였다. 나이는 30대 중반쯤. 매일 간호사들이 발에오일을 발라주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장갑을 낀 채로 1~2분 만에 숙제를 해치우듯 건성으로 끝냈다. 카롤리나는 달랐다. 그녀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았다. 검은 눈은 언제나 미소로 가득. 목소리도 그랬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친절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눈과 목소리뿐임을 카롤리나를 통해 알았다. 어느 날 저녁 나의 우울을 눈치채고 전혀 표 내지 않으면서 자기가 도와줄 일이 없냐고 다정하게 물어준 사람도 그녀였다. 다음날 우울을 극복한 나에게 10분 정도 정성껏 발에 오일을 바르고 두 발 사이에 따뜻한 물주머니를 놓고 갔다. 그날 이후 안개 자욱한 산책길의 눈마저 촉촉하게 녹기 시작했다.
자연치유센터와 병원을 이어주는 숲길.
림프 마사지도 받았다. 거기서 총 세 명의 물리 치료사를 만났다. 미하엘은 60세 정도의 남자 치료사였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다며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자연치유센터에 젊은 한국인 물리 치료사가 새로 왔다는 이야기도 미하엘에게 들었다. 내가 입원한 그때는 한국인 동료가 독일 여자분과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간 때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미하엘은 한국 사람들의 강인함에 대해서도 말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며 내게도 꼭 다시 건강해질 거라며 덕담을 해주었다. 자신의 개인사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살았으며, 러시아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버지는 독일 어머니와 결혼을 했는데, 자식들이 태어나자 절대로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듣느라 그도 나도 림프 마사지에는 집중을 못했다.
베아트리체도 기억에남는 물리 치료사다. 그녀는 아홉 살 아들을 둔 엄마였다. 외모가 독일 사람 같지 않다고 혼자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프랑스계란다. 아들 이름은 야샤. 엄마 이름을 붙여서 자기 이름도 야샤트리체라고 해서 미소 짓게 한다고. 지금은 초등 4학년. 김나지움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아 기술상업계인 레알 술레를 생각한다고. 김나지움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그렇단다. 베아트리체는 림프 마사지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좋은데, 운동만큼 중요한 게 휴식이란다. 특히 다리를 높이 올려 림프 흐름을 좋아지게 하는 걸 강조했다.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러려고 나도 여기 온 거니까.때론 아무것도 안 하기를 실천하려고. 그러고도 마음이 편해야 함.
안개 자욱한 숲속의 연못.
오늘 얘기하고 싶은 분은 세 번째 물리 치료사 헤어 알더 씨 Herr Alder다. 이분을 만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 알더 씨는 연세가 많은 남자 물리 치료사다. 외모만 보면 칠십은 되어 보이신다.아담한 키에 왜소한 체격. 짐작에 정년이 가까운 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알더 씨를 본 건 오래전이다. 반년 전 항암을 시작할 때 이곳에서 대체 요법을 시작할 때부터 보았으니까. 그때마다 어떤 치료를 하시는 분일까 궁금했다. 너무 연세가 많아 보이셨기에. 알더 씨에게는 두 번 림프 마사지를 받았다. 첫 번째는 다리가 아니라 복부의 수술 자국을 집중적으로 풀어주었다. 두 번의 수술로 아랫배 부분이 나무뿌리처럼 굳어있었다. 겨드랑이로 가야 하는 림프의 흐름이 막힐 수밖에. 그런 경우엔 림프 마사지는 받을 때뿐 근본적인 부종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팔월부터 왼쪽 허벅지에 부종이 왔다. 다리가 눈에 띄게 부은 건 아니지만 나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종에 대해 의논할 의사가 없는 것도 불안을 가중시켰다. 열심히 운동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물리 치료사에게 받는 림프 마사지에 모든 걸 걸 수도 없었다. 치료사마다 방식이 달랐고, 효과도 절반 정도였다. 성의도 있고 실력도 있는 치료사를 만나기란 로또 맞기만큼 어려워 보였다. 최근 내가 만난 여성 물리 치료사 호르카 씨가 가장 나았다. 그 와중에 알더 씨는 만났다. 그는 말발굽처럼 생긴 스테인리스 도구로 내 수술 자국에 자극을 주었다.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1시간을 그토록 성실하게 치료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양쪽 갈비뼈를 양손으로 교차해서 밀고 당기며 복부의 상태를 지켜보기도 하고, 두 손으로 뒷목을 들고 풀어주기도 했다. 무조건 믿고 맡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단단하던 상처 부위가 부드러워졌다. 두 번째 치료 후에는 부종이 있는 왼쪽 다리도 가벼워졌다. 상체가 곧게 펴지면서 어깨와 등에도 긴장이 사라졌다. 고수의 내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부종이 온 곳도 중요하지만 몸의 전체적인 흐름이 먼저라고 말하는 알더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남성 치료사를 만났을 때 복부의 상처를 보여주기 주저하던 고민도 알더 씨를 만나고는 필요가 없었다. 알더 씨는 모든 환자는 상태가 다르기에 치료법도 달라진다며 괜찮다면 복부의 수술 자국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질문이 그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치료 중 그는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냉랭하거나 냉담한 것도 아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안도했다. 드디어 훌륭한 치료사를 만났구나. 알더 씨 같은 분과 함께라면 부종을 이겨내고 건강도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망대해에서 그토록 찾고 찾던 흰고래, 모비딕을 만난 에이해브 선장의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알더 씨는 내 가슴뼈 전이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몸 안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암세포처럼 몸에 나쁜 걸 잡아먹는 애들을요. 눈을 감고 그들을 불러보세요. 그리고 말하세요. 물고기들아, 먹어!!!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