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부모님의 크리스마스

츄스 2021

by 뮌헨의 마리


코로나와 함께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2021년도는 가고 2022년 새해가 왔다. 지난 한 해 동안 염려해 주시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 덕분에 어려운 시간을 무사히 건넜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힐더가드 어머니의 아침 식탁과 어머니께 드린 핑크빛 선물.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다. 자연치유센터에서 돌아온 후 지난 연말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내가 그랬다. 그렇다고 글 한 편 남길 시간마저 없었겠냐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지난 4년간 나를 사로잡았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식고 있는 까. 암투병으로 보내야 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오자 마음의 긴장이 풀린 건지도. 그래도 그렇지. 언제까지 넋 놓고만 있을 건가. 새해 인사는 해야지. 지난 한 해는 나 때문에 놀란 분들이 많았다는 것 때문에 내가 더 놀랐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두 마음이 엇갈리며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했다. 일종의 안도감.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 그런 마음. 자연치유센터를 떠날 때 1년 동안 복잡했던 마음들은 숲에다 두고 혼자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레겐스부르크의 힐더가드 어머니 댁에서 2박 3일을 지냈다. 날씨도 열 일했는데 돌아올 때는 마음이 애잔했다. 사흘 내내 해 한번 나오지 않았다. 비가 뿌리거나 먹구름이 끼거나 안개만 자욱하던 날들. 그런 곳에 어머니를 혼자 두고 돌아서는 마음이야. 얼마나 자주 깜빡하시는지 마지막 날 아침에는 아침 7시가 지나자 우리가 곤히 자고 있는 방문을 두드리며 황급히 말씀하셨다.


"너희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닌데. 전날 밤에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아침 8시 식사. 아침 9시 슈탄베르크의 카타리나 어머니 댁으로 출발. 이번에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날씨. 두 번째는 어머니의 알츠하이머 번복 선언. 세 번째는 어머니가 반년 이상 식욕이 없으신 것. 독일의 침울한 겨울 날씨야 말해 무엇하랴. 내가 놀란 건 두 번째. 크리스마스 전날(사실 독일은 이날 24일 저녁을 크리스마스라 부른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와 나만 식탁에 있을 때였다. 어머니께 물었다.



힐더가드 어머니의 크리스마스장식과 저녁 식사..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알츠하이머 신약*에 대해 주치의와 상의해 보셨나요?"

"미국에서 아직 임상이 끝난 게 아니라서 유럽에는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더라. 그런데 주치의는 내가 알츠하이머가 아니라는구나. 내가 '명사'를 기억한다고."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주 전만 해도 크리스마스 저녁 메뉴는 뭐가 좋겠냐고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셨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연어 구이를 추천했고, 어머니는 퐁듀가 어떻냐 하시고. 결국 프랑스식 생선 수프 부야베스를 먹었지만. 그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지난 3년간 어머니의 상황이 조금씩 진행되어 온 걸 걱정스럽게 지켜봤는데. 어쩌나.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시니. 거기다 대고 내가 검사는 하셨냐고 물을 수도 없고. 다행이네요, 어머니.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진실로 그러기를 바라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치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암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수치스럽다. 당연하지. 자랑할 일은 아니잖나. 내게는 수치심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어머니도 그렇지 않으실까 짐작할 뿐.


거기다 어머니의 식욕 부진도 걱정이었다. 내가 음식을 준비해갔는데 많이 드시지 못했다. 입맛이 없다시며. (혹시 맛이 없었나?) 남편과 아이와 나만 맛있게 먹었다. 메뉴는 제육볶음. 왜 제육볶음이냐고? 언젠가 어머니와 뮌헨의 한국 식당에 적이 있는데 불고기는 달아서 싫다시며, 매콤한 제육을 맛있게 드신 기억이 나서. 식욕은 삶에 대한 의욕과 동의어다. 식욕이 없으면 매사에 시큰둥해진다. 즐거움도 열정도 호기심도 설 곳이 없다. 기운은 당연히 없겠지. 항암 후 몸무게가 늘었어도 내가 다이어트에 눈을 돌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 다이어트가 문제인가. 입맛을 잃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나의 전략 아닌 전략이라면 말이 될는지. 그나저나 어머니가 음식을 좀 많이 드셔야 하는데.



카타리나 어머니 댁의 크리스마스 트리/크리스마스 쿠키/크리스아스 음식/크리스마스 선물들!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서는 점심을 먹었다. 요즘 어머니는 직접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신다. 대신 단골 이태리 레스토랑에 주문하신다. 그 점은 정말 마음에 든다. 오토 양아버지를 돌보시느라 힘드신데 음식까지 하시면 내 마음도 무거울 것 같다. 그날 점심은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메뉴답게 오리와 거위 요리를 먹었다. 쫄깃하고 둥근 감자 크누들과 함께. 카타리나 어머니의 좋은 점 하나. 언제나 밝고 씩씩하시다는 것. 저런 태도는 정말 배울 만하다. 친어머니인 카타리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힐드가드 어머니 댁에서 이틀이나 자고 온다는 말을 못 하던 남편 대신 내가 말씀드렸다.


"힐더가드 어머니 댁에서 이틀 보내고, 오늘 아침 뮌헨으로 와서 바바라 픽업하고 같이 왔어요."

솔직한 게 좋을 때란 이런 때다. 서운할 때 서운하시더라도. 바바라에게도 뮌헨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화로 말했다. 힐더가드 어머니가 요즘 부쩍 깜빡하시는 거 같아서 걱정이라고. 혼자 계셔서 더욱 그런 것 같다고. 두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카타리나 어머니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몸은 힘들어도 어쨌거나 오토랑 같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잖냐. 혼자 있는 거랑은 다르지." 그리고 나를 돌아보시며 환한 표정으로 하시는 말씀. " 우리가 밝은 얼굴로 자주 보니 정말 좋구나."


그래서 다시 만났다. 이틀 뒤 시누이 바바라의 생일날에 바바라 집에서. 독일에서는 보통 생일을 맞은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들을 초대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해야 한다는 뜻. 바바라가 집에서 점심을 준비했고, 우리는 편안히 가서 먹었다. 아이는 고모에게 줄 생일 선물을 들고, 나는 꽃다발과 바바라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사들고. 남편은 누나의 생일날에 맞춰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서 들고 온 철제 벤치를 하얀색으로 칠한 후 바바라의 발코니에 놓았다. 다행히 저녁에도 혼자가 아니라 바바라 친구 집에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고. 자기는 디저트만 준비해 가기로 했단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코로나로 10명 이상은 모이지 못했다. 새해에는 더 강화되었으려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그래도 조금 길었나 보다. 피로가 쌓였는지 회복이 더뎠다. 연말까지 날은 계속 흐렸고. 눈은 안 오고. 해는 새해가 되어서야 나왔다. 찬란하게, 눈부시게, 복되게.



나의 꽃다발. 바바라의 발코니와 점심(위). 내가 바바라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핑크 안경집과 디저트(아래).



*2021. 6월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아두카누맙' 2003년 이후 18년 만에 나온 알츠하이머 치료제다. (단, 임상이 다 끝나지 않아 약효에 대한 논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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