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안부를 쓰는 3주 동안 뮌헨에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싸락눈이 내렸습니다. 궂은 날이 지나면 다시 해도 나왔지요. 근심과 걱정 날려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뮌헨의 햇살을 편지에 담아 보냅니다. 힘드실 때 꺼내보시기 바라요.
날이 좋을 때는 이자르 강변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탑니다. 하늘은 맑고 강물은 푸릅니다.
그리운 샘께!
어느새 1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새해부터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항암이 끝나고 왼쪽 어깨가 부어올랐어요. 항암 때 왼쪽 목과 쇄골 사이에 림프 결절이 생겼는데 항암후에 커진 모양이에요. 저를 담당하시는 마리오글루 샘이 조직 검사 결과를 보시고 림프 결절에 암세포가 보이는데 초기에 하는 게 낫다며 방사선 치료를 권하셨어요. 치료를받는 곳은 왼쪽 어깨와 목 사이랍니다. 새해가 되자마자 치료를 시작했지요. 의사 샘 말씀을 잘 듣자! 이것이 올해 저의 모토거든요. 방사선은 어떤 치료일지, 부작용은 없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무사히 잘 지나고 있습니다.방사선 치료는 총 6주간 진행됩니다. 시작이 반이란 말처럼 벌써 3주가 지났네요. 앞으로 남은 건 절반. 새로운 치료와 함께 시간이 화살같이 흐르고 흐르는 1월입니다.
방사선 치료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받습니다. 치료 시간은 짧아요. 10분 정도거든요. 오전에는 다른 일을 보고, 오후는 통째로 비워놓으려 노력합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걸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1시간이 걸려요. 5킬로남짓이라 걷기에 딱 좋지요. 반쯤 걸어오면 산책로가 나옵니다. 방사선 치료와 산책의 콜라보라 할까요. 매일 운동은 해야 하고이것을 한 번에 해결할절호의 기회니까요. 저는 1월의 이 루틴이 꽤 마음에 듭니다. 방사선 치료를받을 때도 별다른 느낌은 없답니다. 5~10분 정도 누워있으면 되거든요.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지요. 나는 지금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고 있는 중이야! 그러면 기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무중력 상태처럼 몸과 마음이 붕뜨고, 깜빡 잠이 들었다 깬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진 채로깨어나지요. 방심과 무심의 한가운데서 치료가 끝나고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시원한 겨울바람이 등 뒤에서 반갑게 인사하나 싶으면 어느새제 옷소매 사이로 손살같이 달아나지요. 바람의 앞모습을 본 적이 있기나 한지.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은 저 무적의 바람의 밀당을 당할 자가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1월입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산책로. 나무는 아름답습니다.
샘.
방사선 치료 3주 만에 어깨의 부기가 제법 빠졌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던 첫날 자연요법센터에서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신 물리 치료사 알더 씨에게 림프 마사지를 받은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자연요법센터에서 휴양을 하던 지난 12월에 알게 된 알더 씨와는 새해부터 2주에 한 번씩 림프 마사지를 받기로 했어요. 왼쪽 다리의 부종과 복부의 단단한 수술 자국과 어깨의 부기까지 꼼꼼하게 치료해 주신답니다. 덕분에 걸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당기던 증세가 많이 나아졌어요. 일흔이 가까우신 알더 씨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시아버지 하네스도 알더 씨처럼 고요하고 온화하신 분이셨지요. 알더 씨처럼 체구도 작으셨고요. 몇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해 온 사람만이 가진 아우라가 알더 씨의 손끝에서 느껴집니다. 그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정년을 넘기고도 자연요법센터의 요청으로 계속 일을 하신다는 알더 씨를 만난 건 저의 행운이지요. 앞으로 2년 더 일하실 계획이라는 알더 씨와 함께 저 역시 그 사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매진하겠습니다.
새해 들어 한 주 한 주가바빠졌습니다. 매주 한 번씩 돌아가며 오전 운동을 하거든요. 노르딕 워킹, 피트니스, 항암 동기 이어리스와 산책하기 혹은 혼자 산책하기가 그렇습니다. 해가 나는 날에는 자전거도 타고요. 항암 후 운동을 시작한 지도 100일이 지났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피로를 잘 느끼지 않게 되었어요. 운동은 정직합니다. 몸이 말해주네요. 항암이 끝난 후에는 저녁마다 기진맥진하는 날이 많았답니다. 금요일이 되면 한숨을 돌리지요. 주치의의 처방전으로 일반 물리 치료실을 방문해서 림프 마사지를 받거든요. 새 물리치료센터에서 작년 가을에 만난 물리치료사 호르카 씨도 제가 좋아하는 분입니다. 보통 림프 마사지는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중년 여성인 그녀는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이 다른 치료사들보다 강한 테라피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또 제 마음에 든답니다. 복부의 세로 수술과 아랫배의 가로 수술 자국을 처음으로 치료해준 사람도 호르카 씨지요. 매번 나아지고 있어요. 그 외에도 바쁜 일정은 계속됩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아요. 자연요법센터에서 해오던 고주파 열치료는 계속 하고, 방사선 치료 기간 동안 고용량 비타민 C 요법은 쉬기로 했어요. 방사선과 샘이 그랬으면 하셔서요. 집에서 미슬토 주사 맞기는 계속합니다. 자연요법센터 Dr. 뵐펠 샘께서 방사선 치료를위해 추천하신 동종요법 알약도 먹고요. 흰 싸락눈 알갱이처럼 작은 알약을 5개씩 아침저녁으로 혀 아래 놓고 녹여먹어요. 약이라기엔 달고 맛있어서놀라죠.
석양이 질 때면 더욱 빛나는 뮌헨의 우리 동네.
샘.
새해에는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안 좋은 소식부터 말씀드릴게요. 요즘 통 글을 못썼습니다. 새 치료를 시작하느라 차분히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알리시아가 계속 잔소리를 하네요. 엄마, 요즘 왜 글 안 써? 이런! 제가 깜빡했지 뭐예요. 알리시아가 엄마 글을 보고 있다는 걸요. 작년 봄에 제가 홀로 한국에 갔다가 재수술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엄마를 다시 못 볼까 봐 밤늦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자다가도 새벽에 제 브런치에 들어와 라이킷을 누르고 가던 아이였다는것을요. 엄마, 그러다 구독자 다 떨어진다. 빨리 써! 이번 주에 두 개 안 올리면 나한테 혼난다. 엄마들만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게 아닌가 봅니다. 알리시아의 숙제를 받고 정신을 챙겨야겠구나 생각한 게 벌써 3주입니다. 그때 알리시아가 엄마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주며 말했죠. 빨리 글 써서 엄마가 책을 내야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 아니냐고요. 그리고 1000번째 글은 꼭 자기랑 애완 쥐들 얘기를 써야 한대요. 그때까지 쥐들이 버텨줘야 할 텐데요. 쥐들 수명이 3~4년밖에 안 되거든요.그게 아니면 제가 분발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저는 지금 638번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1000개의 글을 향한 고지는 까마득하고 아득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고,또다시 첫발을 내디디려 합니다.
안 좋은 소식이 또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치과의 Dr. 훔멜 샘이 뮌헨 외곽으로 근무지를 옮기셨답니다. 작년 늦가을에 샘한테 치아를 세 개 정도 치료한 적이 있어요. 치아와 잇몸 사이에 틈이 보인다고 메우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어요. 꼼꼼하게 치료를 받고도 음식물을 씹을 때 불편해서 다시 갔더니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며 다시 치료를 받았죠. 언제라도 불편하면 또 오라 해놓고 샘은 떠났네요. 그 후로 치아의 불편함은 사라졌지만 이번에는 서운함으로 마음의 틈새가 커진 느낌이에요. 타국에서 친절한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번엔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항암 후3개월째되는 날 정기 검진을 받았답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어요. 나쁘지 않으면 좋은 거지요. 자궁 쪽은 이번에도 이상이 없었어요. 가슴뼈 전이는 제자리에 얌전하게 머물러 있고요. 목과 어깨 쪽의 림프절은 방사선 치료로 호전되고 있는 모양이에요. 다른 이상 소견은 없으니까요. 지난 사흘은 감기 기운처럼 목울대가 불편해서 물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 삼키기가 어려웠답니다. 방사선 치료 부작용이 아닐까 싶어 걱정했는데 오늘은 조금 낫네요.
우리 동네 카페 <마녀의 집>.
샘.
겨울이 유난히 어둡고 길고 춥게 느껴질 때는 우리 동네 마녀 카페에 들른답니다. 카페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있거든요. 그런 날은 카페 2층의 장작불 난로앞에 앉으면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항암 후 매일 오후 이 카페에서 책도 읽고 샘께 편지도 써야지 했는데 코로나가 심해져서 몇 번 오지는 못했답니다. 독일의 코로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요즘은 매일 거의 20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답니다. 다행히저는지난해 11월에 별다른 반응 없이 3차 부스터 샷을 접종했어요. 그럼에도 카페 안에서는 마스크를 꼭 씁니다. 공간이 넓지 않거든요. 햇살이 나는 날도 좋았어요. 바깥 날씨가 어떻든장작은 활활 타오르거든요. 병원에서 뮌헨 동물원 쪽으로 걸어올 때는 작은 운하를 만나기도 합니다. 다리 위에서 운하를 바라보면 물살이 생각보다 세서 놀랄 때가 있었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 올해는 어떤 새로운 물결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적실까를 고민합니다. 병만 바라보고 살면 병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온갖 근심 걱정은 물살에 흘려보내고, 몸은 운동, 마음은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샘의 새해 소망은 무엇일지 궁금하네요. 지난 연말에는 한국이 많이 그리웠답니다. 샘과 언니들과 친구들과 매일 차를 마시던 그 옛날 부산의 찻집들과봄엔 벚꽃 가을엔 낙엽 흩날리던 범어사로 가는 남산길과 봄볕 가을볕을 등에 업고 산책하던 동래 온천천도요. 올해 샘도 더욱 건강하시길요. 저도 꼭 그렇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