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디의 추억

애완 쥐를 보내며

by 뮌헨의 마리


애완 쥐 골디와 우리는 1년을 함께 살았다. 상호 교류는 없었다. 우리가 가족인 줄은 알았을까. 골디는 우리만 보면 도망치고 숨기 바빴다. 겁쟁이 골디. 그 골디가 죽어서 숨은 곳은 우리 마음속. 어디서고 자꾸 골디의 흔적과 만나게 되는 2월.


아플 때 따뜻하게 데워준 돌 위에 반쯤 눈을 감고 엎드려있던 골디.



열흘 전 골디가 우리 곁을 떠났다. 골디는 1년 전에 우리가 입양한 애완 쥐 세 마리 중 하나다. 햄스터는 아니고, 독일어로 렌 마우스 Rennmaus (복수형으로는 렌 모이제 Rennmäuse)라고 불리는 귀여운 쥐다. 우리말로 하자면 '달리는 쥐'쯤 되겠다. 안 달리는 쥐도 있냐고? 글쎄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궁금하겠지. 쥐가 어떻게 귀여울 수 있냐고. 맞다. 우리에게는 그랬다. 그래도 인정하기 힘드신 분들께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추천한다. 골디가 떠나기 직전 우리도 그 영화를 보았다. 골디는 일주일 동안 아팠다. 마지막 며칠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윤기 잃은 털 아래 뼈만 앙상했다. 골디의 마지막을 직감한 아이가 다 같이 <라따뚜이>를 보자고 제안했다. 아이 방에 따뜻한 매트를 켜고 방바닥에 셋이 나란히 누워 보았다. 맞은편에 쥐들도 함께.


애완용 쥐를 입양한 건 작년 봄이다. 내가 암수술 후 항암 대신 한국에 가서 두 달간 쉬다 오기로 결정한 때였다. 아이에게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울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햄스터는 서로 싸울 수 있어서 주로 한 마리를 키우고, 밤낮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는 말에 포기. 애완 쥐들은 몇 마리가 함께 사는 게 좋다는 것과, 자고 는 패턴이 3시간씩 반복되어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괜찮겠다 싶었겠지. 아무렴 하나보다야 여럿이 낫지.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결정적으로 쥐들이 너무 귀여웠을 것이다. 3월 초 내가 애완 숍에 같이 갔을 때는 입양이 허락되지 않았다. 아직 어리고 예방접종도 끝나지 않았다며 며칠 뒤에 오라 했다. 내가 떠나고 아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회색 쥐, 금빛 쥐, 검은 쥐 세 마리를 골랐다. 그렇게 프록키, 골디, 라디셴이 우리 집으로 왔다.


쥐들은 셋 모두 암컷이었다. 수컷은 냄새가 심하고 암컷이 오히려 깨끗하다 하니 고민도 필요없었다. 새끼들을 바라지 않던 우리에게 그보다 나은 선택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물은 매일 갈아주고, 먹이는 애완 숍에서 사 온 사료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쥐들은 많이 먹지 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부지런히 굴을 뚫고, 지치지도 않고 유리를 긁고, 나무를 갉았다. 집은 너무 작지 않은 것으로 골랐다. 법정 최소 사이즈가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쥐들 집은 아이 방으로 정하고 폭은 넓고 높이는 낮은 이케아 서랍장 위에 놓았다. 유리로 된 아래층과 철망으로 된 2층 집 구조였다. 아래에는 통나무와 마른풀과 톱밥 등으로 굴을 파고 놀거나 자게 하고, 위에는 먹이와 물과 돌방과 코코넛 방과 모래터를 만들었다. 쥐들 수명이 3~4년은 된다는 말에 아이는 크게 안심을 했다. (골디가 떠나고 전문가분께 들은 바로는 보통 1~2년 정도라고.) 쥐들 생일은 2월의 마지막 날로 정했다. 아이와 남편의 생일 중간. 아이는 생일 한번 못하고 간 골디를 가슴 아파했다. 몇 년을 살 거라 기대했는데 자기 혼자 한 약속이면서 안 지키고 떠났다고 골디를 원망했다.



쥐들 집(위). 가운데가 골디(아래). 빨간 눈에 순하고 겁이 많은 쥐였다.



쥐가 아픈 게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검은 쥐 라디셴이 아팠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라디셴이 아파. 밥도 안 먹고, 눈도 못 떠.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혈기왕성한 청춘을 믿었다. 쥐들도 아프면서 크는 거겠지. 기다려보자! 라디셴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병원에도 안 가고 사흘 만에 회복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건강하다. 그래서였다. 금빛 쥐 골디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걱정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그런데 괜찮지가 않았다. 골디는 셋 중 가장 겁이 많은 쥐였다. 라디셴이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쥐라면, 골디는 소심하고 어쩌면 병약할 수도 있는 쥐였다. 사흘이 지나고 먹이를 먹길래 회복할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삼키지 못했던 같다. 작은 골디의 몸에 손을 자 뼈 밖에 없었으니까. 숨거나 도망 갈 힘도 없이. 쥐들처럼 작은 동물을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뮌헨에도 없었다. 남편이 여러 곳에 문의한 후 오라는 곳으로 골디를 데리고 갔다.


수의사가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아픈 이유도 알기 힘들고, 가망도 없어 보인다고. 골디를 박스에 담아 파파와 같이 다녀온 아이는 눈이 골디처럼 빨개져서 돌아왔다. 병원에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맞고, 하루에 한 번 입에 넣어주라는 주사액을 다섯 개 받아왔다. 골디는 그중 하나만 맞고 갔다. 다음날 내가 골디의 입을 벌리고 아이가 액을 밀어주었다. 그것도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골디가 떠나기 며칠 전에는 추위에 떠는 골디를 위해 돌을 데워 주었다. 따뜻한 돌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쉬던 골디의 모습을 잊을 없다. 그 작은 쥐가 아픈데도 돌을 데워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동물병원에 다녀온 날이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는 밤새 골디를 넣은 박스를 거실의 난방 오븐 앞에 두었다. 몸이 따뜻해지면 기운을 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우유는 먹을 수 있으려나. 다음날 아침 골디는 눈도 못 뜨고, 걷지도 못하고, 어떤 것도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골디가 마지막 순간에 쥐들과 떨어져 혼자 외롭게 죽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가슴을 졸이며 학교로 갔다. 남편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무실로 다. 밝고 따스한 아침이었다. 햇살이 방 안에 깊숙이 비치는 시간이었다. 나는 골디의 박스 앞에 혼자 앉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운이 없으면서도 박스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러는 사이 몸이 왼쪽으로 자주 기울어 넘어지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아, 골디가 다른 쥐들을 찾고 있구나! 골디는 자기가 떠날 때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 골디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고 서둘러 원래 있던 집으로 돌려보냈다. 록키와 라디셴 두 마리가 번개 같이 달려와 골디의 몸에 코를 박고 몸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쥐들의 환호에도 골디는 시종일관 고요했다. 다른 쥐들에게 가만히 몸을 기대고 있던 골디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의 생일 카드(위). 골디가 살아있을 때 아이와 내가 놀랐다. 골디가 떠난 후 아이의 생일날 아침 새벽 하늘. 골디를 생각하는 우리 마음도 저렇게 붉다.



나는 골디의 마지막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지난 열흘을 보냈다. 내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골디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부담도 되었다. 골디는 쥐들과의 만남 이후 혼자로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힘겹게 내려왔다. 천천히 천천히.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쥐들의 방은 아래층 뒤편 속이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 골디가 그곳으로 내려가려 한다는 걸 알았다. 골디와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굴 속으로 내려가기 직전 골디는 아래층의 유리 앞에 잠시 머물렀다. 숨을 고른 걸까. 골디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의 시간. 다른 쥐는 없었다. 오로지 골디와 나뿐. 골디야, 잘 가. 우리한테 와줘서 고마웠어. 많이 그리울 거야. 골디는 천천히 일어나 유리 뒤편 굴 속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쥐들의 보금자리, 골디의 마지막 장소. 떠나는 순간까지 다른 쥐들의 체취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안온한 곳. 혼자가 아닌 곳. 그 후 다시는 골디를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은 맞았다. 가파른 굴에서 올라오기는 어려울 같았다. 그 안에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다는 게 걸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골디를 묻고 돌아왔다. 추운 밤이었다. 바람도 불었다.


우리가 두 마리 쥐를 격리시키고 쥐들 굴을 파서 골디를 찾았을 때 골디는 온몸이 경직된 채 늘어져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이후 오래지 않아 떠난 것 같았다. 골디는 뒤쪽 굴이 아니라 앞쪽 통나무 밑동 공간에 누워있었다. 한쪽 다리가 심하게 늘어난 걸 보고 다음날 남편이 말했다. 대장인 회색 쥐 프록키가 본능적으로 골디를 통나무 아래로 끌고 간 건 아닐까. 우리가 찾지 못하도록. 골디를 숨기려고. 골디를 보호하려고. 골디를 잃지 않으려고. 남편이 퇴근 때 사 온 작은 상자에 마른풀을 깔고 골디를 넣자 아이가 털이 푹신한 갈색 햄스터 인형을 넣어주었다. 다른 쥐 인형은 없었다. 그래야 우리 골디가 안 춥고 안 외롭지. 그래, 잘했어. 늦은 밤 우리는 마른풀 포대와 작은 삽을 들고 공원으로 갔다. 언젠가 아이와 아이의 친구 율리아나가 길가에 버려진 죽은 다람쥐를 묻어준 곳이었다. 남편이 땅을 파고 건초를 깔고 골디를 묻을 때 아이는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골디의 얼굴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예뻤다.


골디를 보내고 열흘이 넘도록 나는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적당히 끝맺으면 안 것도 없는데. 골디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남편과 아이가 사무실과 학교로 간 아침. 아이 방에 해가 비칠 때. 남은 두 마리는 쥐 죽은 듯 고요하고. 평소 세 마리만으로 활력이 넘치고 작아 보이던 쥐 집이 얼마나 커 보이던지. 그때의 마음은 또 얼마나 허전한지에 대해서.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산책로를 걸을 때 햇살과 나란히 벤치에 앉아 골디를 생각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도. 골디를 보내고 남편이 매일 저녁 애완 쥐에 관한 유튜브를 보며 골디를 위해 부족한 게 뭐였는지 복기할 때. 남편과 아이의 폰 바탕 화면이 골디 사진으로 도배될 때. 그런데 내가 골디를 보내고 마음이 비틀거린 이유는 또 있었다. 셋 중 하나가 떠나는 일은 셋을 떠받치던 완벽한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쥐들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셋은 독립적이면서 완벽하게 삼각형의 한 축을 떠받치고 살았다. 죽은 자만 서럽다고? 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예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삶이 없겠는가. 가슴이 무너질 듯한 자각은 섬광처럼 찾아온다. 골디가 떠난 후 아이 책상 위에 새겨진 골디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처럼. 여섯 철자 중 다섯 번째인 i자 위에 곱게 놓인 아직 다 전하지 못한 하트처럼. 나도 다시 한번 작별을 고하련다. 골디여, 안녕..



마지막 날 아침 골디는 눈을 뜨지 못했다. 아이가 책상 위에 새긴 골디의 이름. 골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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