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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r 31. 2022

나의 독일어 선생님 홀가

<어린 왕자 Der kleine Prinz>


3월이 가고 4월이 온다.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 하듯 4월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왕자>를 독일어로 읽기. 나의 새 독일어 선생님 홀가와 함께.


<어린 왕자> 책 뒷쪽 라벨을 보니 2000.10.13. 레겐스부르크 후겐두벨 서점에서 구입. 유로화가 되기 직전 마르크로 계산. 9.80마르크. (유로화로 치면 약 4.90유로)



다시 독일어 샘과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서는 버거운 독일어 문학책 읽기. 3월 셋째 주 일요일이었다. 절기로는 춘분 전날.  생각하는 건 절기 이름이 참 예쁘다는 것. 큰 추위를 뜻하는 '대한' 이후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까지. 그 사이에 재하는 여섯 개의 절기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특히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으나 낮의 길이가 약간 길다는 '춘분'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춘분 지나고부터> 생각나 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문학 강의를 듣던  인생의 봄날들 생각난다. 세계문학이라는 그 눈부시게 빛나던 은빛 물결도.


책으로는 일 아동문학가 에리히 캐스트너 Erich Kästner(1899-1974)의 <하늘을 나는 교실 Das fliegende Klassenzimmer>. 어린이 도서라면 좀 낫겠지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이분의 책이 결코 만만하지 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전 김나지움의 다섯 남자아이들과 선생들의 에피소드다. 오래전 이야기라 약간 올드한 단어 없지 않다. 우리 아이도 김나지움에 다니고 있지만 그 당시엔 대부분 남학생 기숙사 학교였다. 남녀공학이 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3월에 3회 정도 읽고는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했다. 4월의 책은 <어린 왕자 Der kleine Prinz>.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난이도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고 기대치는 높다. 혼자서도 읽은 적이 있어 더더욱 기대된다. 어린 왕자를 독일어로? 레알? 가슴이 두근두근.



<하늘을 나는 교실> by 에리히 캐스트너.



나의  독일어 선생님은 홀가다. 홀가와 나는 2002년 독일 중부 헤센 지방의 대학 도시 마르부르크 Marburg에서 만났다. 홀가는 나를 친언니처럼 따르던 M의 남자 친구였다. (M은 지금 한국에 돌아가 열심히 살고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홀가는 컴퓨터와 교육학을 복수로 전공했다. 독일 대학은 5년 제로 학사와 석사를 동시에 수료하고 전공도 2개인 학제다. 당연히 졸업이 어렵다. 대학만 10년을 다닌다는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독일 학생도 그 숫자가 부지기수인데 외국인 학생들은 말해 무엇하랴. M은 그 어려운 대학 과정을 정상으로 마쳤다. 본인의 어마 무시한 노력과 강철 같은 정신력과 홀가의 도움으로. 내게 홀가는 그때부터 검증된 선생님이었다.


내가 만난 20대의 홀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에 마음이 따뜻하고 온화청년이었다. 중년 지금도 그 느낌은 마찬가지다. 내게 홀가는 언제나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얼굴도 목소리도 품성까지도. 오랜 병도 그의  품성을 바꾸어놓지는 못한 것 같다. 홀가가 병에 걸린 건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전화로 울먹이던 M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아픈 남자 친구를 어떻게 나 몰라라 하겠냐던 착하디 착하던 친구. 그리고 둘은 뮌스터로 떠났다. (뮌스터는 북독일의 도시로 허수경 시인이 박사 과정을 공부하살다 떠나신 곳이다. 시인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셨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 집의 봄꽃은 장미.



M에게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한다. M은 뮌스터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나는 M이 독일에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잘 알기에 그녀가 박사 학위를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홀가 역시 명석한 두뇌와 젊음이 었기에 병을 극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든 교사든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정확한 병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직장 생활을 포함한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었 것 같다. 다시 몇 년의 시간이 흐르 M을 두 번 만났다. 두 번 다 뮌스터에서. 그사이 M은 건강을 조금씩 잃어가고 다. 원인 모를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M에게 나는 귀국을 권했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강조하며. 본인의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다고 던 내가 아팠다. 이 무슨 인생의 아이러니인가..!)


나는 두 번을 권했고, M은 두 번을 사양했다. 아픈 사람을 두고 떠날 수는 없다. 이해했다. 원래 그런 친구였다. 한두 해가 지나고 서울에 살던 내게 M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돌아온 M이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지금은 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봄 내가 한국에서 다시 수술을 받고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할 때는 M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때 서울에 M은 부산에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체력 소모가 컸지만 거절 역시 쉽지 않았다. 거절을 서운해하지 않을 두 명만 빼고. 부산의 M과 대학 동기 C. 나 안 죽는다. 걱정 . 건강하게 살아 돌아올게. 그때 다시 만나자. 맛있는  사 준다는 약속 잊지 말고. (나는 재작년에 독일에서 자궁암 수술을, 작년에 서울에서 한번 더 수술과 독일에서 항암을, 올해  사선 치료를  후 지금은 검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옆 동네 우반역 앞 공원에도 벚꽃이 피었다. 잔디밭에는 범상한 포스의 비둘기 한 마리.



홀가와의 독일어 책 읽기는 전부터 생각했다. 3년 전 린다와 <이방인>을 읽다가 중단한 이후부터. 그런데 마음만 있고 계기가 없었다. 그 사이 코로나가 터졌고, 나도 아팠다. 아파보니 알겠더라. 자주 외롭고 자주 막막했다. 거창한 삶의 목표도 좋지만 일상의 작은 목표가 소중해졌다. 오늘 하루 뭘 할 것인가. 내일은? 오늘 해야 할 일, 집 밖으로 나갈 일, 누군가를 만나는 일, 정기적인 운동 일정 같은 게 중요했다. 안 그러면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몸도 마음도 처졌다. 기회는 생각지도 않게 굴러들어왔다. 처음에는 홀가에게 아이의 독일어 작문을 도와달라고 부탁 생각이었다. 이런 일에 홀가보다 나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국어라는 과목이 좀 어려운가. 우리 아이에게도 독일어가 그랬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겠다나. 그 말은 과외 받기 싫다는 뜻이겠지. 어쩐다. 홀가에게도 말해놨는데. 지금 와서 안 한다는 건  아니지. 그럼 나라도 해볼까?


홀가와 독일어 책 읽기는 대성공이었다. 몸에 안 좋은 기름과 거품을 걷어내듯 공부라는 개념을 쏙 빼고 마음 편하고 기분 좋게 1주일에 1시간씩 하고 있다. 익숙해지면 시간을 조금씩 늘려도 좋겠다. 내 목표는  가지. 첫 번째는 독일어로 세계문학 읽기. 까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 체호프의 4대 단편 등 대기 중인 리스트는 무궁무진 길다. 이보다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마치 독일어로 문학 강의를 듣는 기분. 홀가는 작가에 관한 에피소드와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각 챕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설명해주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단어나 문장 속에 숨은 의미까지. 이보다 친절한 선생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나.



뮌헨의 우리 동네 첫 벚꽃은 아직도 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목표도 중요하다. 홀가와 나에게 작은 일상의 변화 주기. 혼자 투병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자극을 받거나 동기 부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1주일에 단 한 번 책 읽기가 내게는 물론 홀가에게도 즐거움이  것이다. 이런 선생님 있잖나. 1시간 가르치기 위해 3시간 이상 공부하고 준비하는 선생님. 홀가가 그렇다. 지난번에는 주인공 남자아이들 다섯 명의 이름을 캐릭터와 연관 지어 설명해주고, 다음 시간에는 일목 요연하게 정리해서 pdf 파일로 올려주었다. 내가 어려워한 문법도 따로 정리해 주고. 에리히 캐스트너에 관한 일화도 들려주었는데 2차 대전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독일을 떠났지만 독일에 남은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는 것도 홀가에게 들었다. 이유도 훌륭하다. 독일을 떠나면 그 시대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 그리고 그의 작품이 나치에 의해 불태워지는 현장에도 직접 있었다고. 비록 나치나 다른 이들은 그가 에리히 캐스트너라는 걸 몰랐지만. 이런 에피소드는 재밌다. 뇌리에 남아 절대 잊히지 않는다.

문학과 어학에 지적 소양을 고루 갖춘 독일어 선생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독일어만 배우기보다 문학책을 통해 독일어를 습득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을 때 열심히 해보자가 올봄의 목표다.



3월의 끝자락 뮌헨에는 꽃샘 추위가 찾아오고 비도 오고 눈도 온다고. 어제부터 흐렸고 오늘부터 기온이 내려갔다. 그래도 믿는다. 길어봐야 얼마나 길겠나. 봄은 벌써 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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