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 왔다. 사방에 꽃이 피고 연둣빛 새잎이 나고 있다. 2주라는 긴 방학이 시작되자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매일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다. 저리 좋을까. 보는 내가 다 즐겁다.
올해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부활절 계란!(뮌헨의 카페 마마스에서).
머리카락이 점점 길고 있다. 가발을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발을 벗은 건 올해 3월부터다. 독일에서 만난 H 언니가 만날 때마다 왜 아직 가발을 쓰냐고 물었다. 대답이 궁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아니고습관일 뿐. 그냥편해서. 돌아보니 작년 6월부터 가발을 썼다.내겐가발을 쓰지 않은 짧은머리가더 어색했다. 항암 때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는데 짧게 밀었던 머리가 자라면서 원래 있던곱슬기도심해지고 새치도 더 늘었다.이해를 돕고자 내 머리를 한마디로정의하자면 사자머리혹은 폭탄머리쯤되겠다.
작년 5월에항암을 시작한 후 두 번 머리를 밀었다. 작년 6월에는 가발을 산 가게에서, 작년 8월에는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을 보고 남편이 가발쓰기덥다고 집에서 한 번 더. 그러다 보니대충 민귀 주변 머리카락이 다른 곳보다 보기 싫게 삐죽 자라나왔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해 본 적이 언제던가. 짧은머리카락을 보자 난해하고난감한 심정.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고. 그래서 찾아갔다. 우리 동네 미용사 파비를. 그라면 이 정신없는 머리를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 줄 것 같았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시누이 바바라가 선물한 미용실 티켓 한 장이빛을 발했다.삐져나온 머리칼을 다듬겠다고 50유로나 주는 건 아깝지. 바바라는 내 머리가 계속자라는것을 보고봄이 오면 미용실에서 멋진 쇼트커트를 해보라며 내단골미용실에서쿠폰을 구입해서 내게 선물했다. (바바라의 헤어 스타일은늘 쇼트커트인데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내가 쇼트커트를 한사코 피하려는 이유다.) 파비에게는 작년에 벌써 내 항암과가발에 대해말했기에 편했다. 내가 파비를 신뢰하는 건 지난 4년 동안 그에게 머리를 하고 후회해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대단한 스킬이나 드라마틱한 변신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50대가 되면 그런 게 필요하지 않다.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무대를 늘 준비하고 있기에. 20대 중반의 이 젊고 조용한 청년은 머리를 감고 손가락을 머릿속에 넣은 채말리기만 하면 끝나는 초간단 심플 스타일로 마무리했다.
뮌헨의 카페 마마스. 내 머리의 과거와 현재가 꼭 저렇다!
앞머리는 눈썹 위로 훌쩍 올라가고 끝부분의 숱을 살짝 친 뱅 스타일로, 옆머리와 뒷머리는 적당히 정리해서 굵은 펌을 넣은 듯한 자연스러운헤어스타일이었다. 집에 와서 혼자손질하기도 편했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파비는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사진을 보여주길 원했는데 이번에는 머리를기를거라 적당히 정리해달라고했다.파비와 몇 마디 대화도하고 폰도보다가눈을 감고 쉬었다. 파비가끝났다며 마음에 드냐고 묻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당연히마음에 들었다. 파비, 난 니가 내 머리를 맘에 쏙 들게해 줄줄 알고있었어! 그러자 팔에는 문신을, 코에는 피어싱을 한 부끄럼 많은 청년의 두 눈에기쁨이봄꽃처럼활짝피었다.
짧은 머리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자 가발을 벗어던지는 일도 쉬웠다. 매주 열치료를 받으러 가는 자연요법센터 직원들이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하신 분들은 시부모님들. 시누이 바바라와 남편과 아이도 좋아한다. 아이의 절친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도, 우리 윗집 오스카 엄마 안도 자신의 일처럼 좋아해 주었다. 머리카락 하나로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다가도 그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공감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진심을 다해 가슴 아파해 주는일도 어렵다. 우리는 각자자기 자신과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운 인생들을 살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바바라에게 받은 게많다. 재작년 겨울 암 수술을 받을 무렵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산책용 앵클부츠를 사주었다. 사이즈도 딱 맞고 따뜻하고 무엇보다발이편했다. 작년 겨울과 올 겨울 바바라가 사 준 신발을 신고 추운 줄도 모르고 매일 산책을 다니며 겨울을 무사히 건너왔다. (4월인데도 아직 신고 다닌다!)또 있다. 4년 전 뮌헨에 온 첫해에는 CD가 딸린 <어린 왕자> 독일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지금 내가 독일어 샘 홀가와 읽고 있는것과 똑같은 책,20년 전내가 샀던 그 <어린 왕자>책을. 이 정도면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는 다시 좋은 사이가 되어 2주에 한 번씩 카타리나 어머니를 함께 방문하고 있다.
우리 아이(위)와 율리아나(아래)가 서로 주고받은 부활절 선물!
레겐스부르크의 힐더가드 어머니 방문은 당분간 자제하고 있다. 어머니가 오미크론 창궐로 최대한 접촉을 안 하려 하시기 때문이다. 대신 매일 저녁 어머니와의 안부 전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2주간의 아이 부활절 방학이 끝나는 4월 마지막 주에 여행을 가신다. 2년 전 우리와 함께 간 적이 있는 남부 스페인의 바닷가 휴양지로. 친구분들과 함께 가셔서 골프도 치시고 바닷가 부드러운 모래 해변을 맨발로 산책하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계신다. 그러니까 조심하시는 것. 행여 코로나에라도 걸리면 여행은 물 건너 가고 마니까. 어머니가 여행을 다니실 만큼 여전히 건강하시고, 같이 갈 친구분들이 계시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신 게 감사하다.
슈탄베르크의 카타리나 어머니는 우리가 레겐스부르크에 가지 않을 거라 하자 부활절 방학동안주말마다 오기를 바라셨다. 적극적인 부모님들이 자식들 얼굴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사례다. 방학 첫 주말에는 어머니 댁에서 점심을 먹고 슈탄베르크 호숫가를 산책했다.두 번째 주는 티타임을 하고 돌아왔다. 올해 독일의 부활절 방학은 4/9(토)~4/24(일)까지 2주간. 부활절은 4/17 일요일이었다. 직전 금요일과 다음날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일반 직장인들은 4일을 쉴 수 있다. 샌드위치 데이인4/16 토요일에는 슈퍼나 마트가 문을 열었다. 신기한 건 해마다 부활절 날짜가달라진다는 것. 음력으로 세는 우리 설날이나 추석처럼. 그런데 내 음력 생일 개념은 왜이해를못 하실까.
부활절에는 선물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서양의 부활절과 성탄절은 우리의 설날이나추석과맞먹는 양대 명절이니까. 아이의 방학이 시작하기 전에 바구니와 캔디와 초콜릿과 토끼 인형 등을 샀다. (한국에 다이소가 있다면 독일에는 <1유로shop>이 있다.) 올해는 아이의 절친인 율리아나와 남동생 제이슨 선물까지준비하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율리아나도 부활절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뻐하는 걸 보는 일보다 더 흐뭇한 풍경도 없다. 아이는 두 분 독일 할머니와 우리 이웃에 사시는 이태리 이모부의 독일 외숙모님께 방학 첫 주에 부활절 축하 엽서도 보냈다. (물론 엄마가 시켜서..) 나보다 엽서를 많이 쓰는 아이는 아무도 없을 거야. 쫑알대며 친구 율리아나와 남동생까지 포함 그날만총 다섯 통의 엽서를 쓰고 엽서에 그림도 그렸다. 할머니들세대가 손편지나 손엽서를 선호하시니 어쩔수가 없다. 당장 세 분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외숙모님은 당장 전화를, 레겐스부르크 할머니는 아이의 엽서를 받자마자 용돈을 보내셨다. 이것은 진리. 엽서는 용돈을 부른다. 모든 의미 있는 일에는 보답이 온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아니든. 물질과 마음, 둘 다 귀하고 중하다.금쪽같은 부활절 방학은 아직 한 주가 더 남아있다.
카타리나 어머니 댁의 부활절 식탁 장식(위). 토끼 신부와 신랑은 40년 전 두 분이 재혼하실 때부터 가지고 계시는 아이템. 율리아나 집 부활절 달걀(아래). 색깔은 직접 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