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맞춤법은 고치는 게 아니지

한국의 할머니께 보내는 엽서

by 뮌헨의 마리


오월이 왔다! 매년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뮌헨의 테레지엔 비제에는 봄축제가 한창이다. 그런데 날이 안 받쳐준다. 주말 내내 흐리다. 이런 날엔 엽서가 제격이지..


외할머니께 쓰는 엽서!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글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부모님 전상서. 부모님 전에 올리는 편지쯤 되겠다. 어제 아이는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께 엽서를 썼다. 일명 할머니 전상서. 이모부 생일 엽서를 쓰다가 할머니께 보낼 엽서도 같이 쓰기로 한 것이다. 독일로 온 아이는 크면 클수록 가면 갈수록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한다. 태어나서 만 3년을 할머니 품에서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한가. 아님 독일의 두 분 할머니를 보면서 한국의 할머니를 더 생각하게 걸까. 아이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의 대명사가 바로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이기 때문이다.


독일 할머니들의 사랑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아니다. 독일의 할머니들은 그분들의 방식대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신다. 다만 당신의 손녀라고 무조건 좋게 봐주시는 건 아니다. 지킬 건 지켜야 한다. 용돈을 받으면 감사 손엽서 보내기 같은 것.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같은 규칙도 없다. 매사에 합리적으로 평가하신다. 어설픈 어리광 같은 설 자리도 없다. 우리 정서로 보자면 냉정하거나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7년 넘게 살다 독일로 온 아이가 한국을 그리워하는 에는 이런 정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아이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로 전해져 와 마음이 찡할 때도 있다. 가령 이럴 때. 아이는 아직도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할 때면 부끄러워한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께 대답도 크게 못한다. 엄마 옆에 딱 붙어서 수줍은 미소만 날린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영상 전화가 끝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엄마가 왜 그래, 니 아이 왈, 우리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이고 그랬구나. 그토록 할머니를 사랑하는구나. 할머니가 통화 내내 함박웃음을 띄우신 채로 "할머니는 우리 알리시아를 제일 사랑해. 매일 우리 손녀 사진만 본단다. 할머니는 그때가 제일로 행복해. 사랑한다 우리 알리시아!" 매번 반복되는 할머니의 멘트에 스며 있는 진심을 아이는 아는 것일까. 그 변함없는 사랑에 아이도 감동하는 것일까.



이모부께 쓰는 생일 엽서(위). 우리 형부의 최근 그림에는 더욱 봄향기 가득하다(가운데/아래). 그림들 by Roberto Pasi.



먼저 시작한 건 이모부에게 보내는 엽서. 정기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간 이모부가 하룻밤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음날 아침 퇴원한다는 정보 입수. 퇴원하는 날 아침이 바로 이모부의 생일이었다. '사랑하는 이모부, 생신을 축하드려요.' 이 한 구절에 걸린 시간이 무려 10분. 이유는 '생일 Geburtstag'이라는 독일어 단어가 엄청 길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글자 위에다 여섯 송이의 꽃을 피우겠노라는 노력 때문이기도 했다. 엽서 말미에는 오렌지와 핑크빛으로 물든 케이크도 하나. 케이크의 오른편에는 아는 사람만 알아볼 법한 초콜릿 조각도 하나. 이모부께서 카드를 받고 엄청 감동하셨다는 후문이 독일의 새벽녘에 카톡에 남겨져 있었다.


할머니께 드리는 엽서에는 조금 더 품이 들어갔다. 한글로 초안을 쓰고,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먼저 아이가 쓰고 싶은 문장을 말하고 종이에 써보도록 다. 아이가 가장 헷갈려하는 맞춤법은 예나 지금이나 '-세'와 '-새'다. 우리도 헷갈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아이에게 용기를 백 배 실어주고. 할머니가 들으시면 기뻐하시고 눈물을 글썽이실 문장도 하나 읊어주었다. 마무리로 넘어가기 직전 아이가 모르고 쓴 오자는 슬그머니 패스. 받아쓰기 시험도 아니겠고, 완벽한 글에 무슨 재미가 있다고. 엄마가 브레이크를 안 걸자 신이 난 아이가 '마니마니' 를 넣어 대미를 장식했다. 아이의 관심은 마지막 글자인 '올림'에 있었다. 안 틀리게 잘 쓴 거 맞지? 그럼 그럼..


할머니께 드리는 엽서의 초안을 브런치에 올린 걸 알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부끄럽게 그런 걸 왜 올리냐고. 한 가지 믿는 구석이라면 엄마 글은 제목만 보고 라이킷을 누르고 재빨리 내뺀다는 것. 절대로 정독은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만에 하나 초서로 갈겨쓴 초안 사진을 본다면? 뭐, 어쩌겠나. 사진 내리라고 난리를 친대도 그냥 웃고 말아야지. 보물 같은 사진을 내가 왜 포기하나. 언젠가 아이가 엄마와 지지고 볶던 시절을 소환하고 싶을 때 이보다 더 생생한 자료가 있으려고. 갑자기 이런 얘기는 왜 하냐고? 불안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다. 정기 검진은 담주로 미뤄졌다는 말씀을 드리려다 서두가 길어졌다. 매는 빨리 맞는 게 낫다지만 검사가 미뤄져서 나쁠 것도 없었다. 검사 결과가 어떻든 앞만 보고 미동도 없이 걸어갈 생각이라서.



4.15 빅투알리엔 마켓. 항암 후 만 6개월이 지나 가발을 벗었다(위). 엄마 아빠가 생일날에 받은 손편지(위/가운데). 할머니께 보낸 엽서 초안(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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