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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극기 훈련이라니!

뮌헨에서 보디 플라잉 체험기

by 뮌헨의 마리
아이의 보디 플라잉 체험!



보디 플라잉 Bodyflying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처음 보디 플라잉에 대해 알게 된 건 아이가 대여섯 살이던 8년 전 싱가포르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였다. 보디 플라잉은 거기서 남편이 발견한 신세계로, 스포츠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고 '공중 날기' 체험쯤 되겠다.


우리 남편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익스트림 스포츠 애호가(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한창 젊을 때 얘기다. 남편이 한 때 혹은 오래 사랑한 종목을 꼽아 보자면 끝이 없다. 스노보드, 산악자전거, 스카이 다이빙, 래프팅, 암벽 등반, 카약, 스쿠버 다이빙, 트라이애슬론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번지 점프..


아프리카에서 고래상어를 보러 바닷속으로 들어간 건 애교에 속한다. 난 그것도 같이 못했지만. 나는 바닷속에 못 들어간다. 무서워서. 예전에 번 언급한 대로 남편과 스노클링을 하러 갔다가 눈앞에서 바닷속 절벽 같은 깊은 심연을 본 후로 폐소공포증 내지 호흡 곤란이 온 적이 있어서. 그때 이후로 바닷속에 들어갈 생각이 결단코 없다. (<아바타 2>는 현실이 아니라서 흥미진진했던 거고.)



사이드카 모터 사이클. 출처:(좌)sidecar safety-(주)우랄모터코리아. (우)사이드카 on Pinterest.



정점은 중국에 살 때 사이드카를 장착한 모터 사이클을 타고 그룹으로 고비사막 횡단을 감행한 거였다. 이때 안 따라간 걸 난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겐 죽음! 막상 해보면 후회 안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 극혐이다. 호불호에도 정도가 있는 법.. 그때 같이 못 간 걸 남편이 두고두고 애석해해서 한 번 따라나섰다가 혼났다. 중국 쪽에서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경계선을 따라 백두산까지. 사이드 카 모터 사이클 뒤에 타고. 길이 하도 울퉁불퉁해서 엉덩이는 멍이 들고. 한겨울이라 날씨는 글자 그대로 북풍한파. 진짜로 죽는 줄..)


남편이 마지막으로 즐기던 스포츠는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 난다. 있잖나, 수상 스키 비슷한. 보트에 로프를 연결한 게 아니라 행글라이드를 등에 매달고 두 팔로 행글라이드를 꼭 잡고 호수나 바다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것. 보는 것만으로 극강의 체력을 요구하는. 언젠가 겨울에 스위스의 유명한 스키장이 있는 상트 모리츠에 갔다가 꽝꽝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그것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장관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부엌으로 등장하신 남편에게 직접 물어보니, 카이트 서핑 혹은 웨이크 보딩이라고. 이런 걸 물어주기만 해도 벌써 신 나심! 물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싱가포르에 살 때 남편을 따라 F1 레이스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 소음! 이해가 안 갔다. 그 시끄러운 걸 견디며 본다고? 내가 모르는 스피드와 낙하에 따르는 짜릿함과 강렬함도 있겠지. 왜 없겠는가. 아니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목숨을 걸고 질주하겠는가. 거기다 비싼 돈까지 내면서. 다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까지 끌고 가지는 말자는 거지. 자기가 좋아한다고 남도 좋아할 거라는 억지만큼 억장이 무너지는 일도 없다. 같이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은 둘째 치고.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니 이제 F1은 더 이상 남편의 흥미를 못 끄나 보다. 지루하다나. 차라리 고카트가 낫다고. 있잖나, 장난감 자동차 같은 걸 타고 서로 치고받고 좋아서 난리인.)



카이트 서핑. (출처:구글 검색 kr.freepic.com)



슬픈 이야기도 덤으로 딸려 나왔다. 커피 한 잔 가지러 부엌으로 와서는 선 채로 각 잡고 와이프가 물어주는 자기 전성기 때 취미와 시절을 열심히 소환했다. 일명 호놀룰루 스카이 다이빙 낭패기.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호놀룰루에서 마라톤 대회도 참가했던 것 같다. (아닌가? 이젠 내 기억을 나도 믿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 살 때였는데 호놀룰루에 스카이 다이빙을 신청한 날짜와 출국 날짜가 스텝이 꼬인 거였다. 시차 변경선을 생각 못하고 일어난 참사였단다. 그래서 스키이 다이빙은 했다는 거야 못했다는 거야? 못 했단다. 그 후로도. 언젠가 한국에서 번지 점프를 하려다 80kg 이내 가능이라는 조항에 걸려 좌절한 적도 있다.


남편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일본에 살던 때였다. 우리는 도쿄 남쪽에서 살았는데 평화로운 동네였다. 도쿄 시내의 지멘스 본사로 출퇴근을 하던 남편은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살인적인 근무 시간으로 배가 나오고 몸무게가 느는 것을 보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은 괜찮은 나이였다. 일본 국내와 외국 대회에도 몇 번 출전했다. 달린 지 1-2년 만에 몸이 날렵해졌다. 지금은 체중 때문에 안/못 달리신다. 오십을 넘긴 나이라 배가 들어갈 극단의 조치는 대략 난감이다.


독일에 온 후로 우리 남편은 더 이상 익스트림한 스포츠에 쏟아부을 열정이 없는 것 같다. 나이도 있고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가끔 스키나 트레킹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일 때문에 자주는 못 가고. 소소하고 소박한 즐거움은 가을에 딸아이와 옥토버 페스트에서 최고로 익스트림한 기구를 골라 타는 것. 다행히 딸이 나처럼 무서워하지 않고 파파랑 잘 놀아준다. 사춘기가 와도 그 정도는 파파랑 계속해 줬으면 싶은데 쉽지는 않을 듯.



뮌헨 보디 플라잉 브로슈.



그러던 남편이 올해 아이 생일 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게 바로 보디 플라잉! 아이는 당연히 어릴 때 싱가포르에서 파파와 탄 걸 까맣게 잊었고. 그때 나는 당연히 안 탔다. 그런데 올해는 꼭 나랑 아이가 타야 한단다. 자기는 우리 사진을 찍어야 된다나, 나 참. 죽을 맛이었다. 타기도 전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 일단 갔다. 뮌헨에는 이케아가 두 군데 있는데 남쪽에 있는 이케아 바로 옆에 있었다.


체험 시간은 총 2분. 다행인 건 시범 조교와 내내 함께라는 것. 설마 죽기야 않겠지. 훈련된 조교가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아아, 이런 걸 왜, 굳이, 꼭 해야 하는지. 더 가관인 건 내가 두 번, 아이는 한 번으로 예약이 되어 있더라는 것. 그걸 안 순간 불안 지수가 두 배가 아니라 20배로 뛰어오르더라는. 아니, 왜! 갈 때는 애가 두 번 타고 난 한 번만 탄다더니.


우주복 같은 걸 입고 무중력 같은 대기 공간으로 들어서면 바꾸지도 못한다. 나랑 애 몸무게에 따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거기다 귀마개랑 헬멧을 쓰고 소음 때문에라도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다. 아이는 하기 싫음 포기하라고 눈과 손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걸 말이라고. 돈이 얼만데!(가격은 2분/성인(120kg 이하) 69,90 어린이(만 4세 이상) 59,90유로. 4분/성인 139,90 어린이 119,90유로. 보디 플라잉을 체험하려면 인터넷 예약 필수. 신체 조건에 대한 자료 조사에도 성실히 답할 것. 체험 전 비디오를 보고 보디 사인 배움. 우주복, 고글, 헬멧, 귀마개 착용 후 격리된 공간에서 단체로 대기함. 체험 시 휴대폰은 당연히 소지 불가. 반지, 귀걸이, 목걸이도 빼야 함. 피어싱은 모르겠고. 가장 높이 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4km.)



보디 플라잉 직접 체험 중(두 번째 시도!).



그래서 탔냐고? 탔다! 둥근 원통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고 입구에 서서 양팔을 들고 앞쪽으로 엎어지듯 쓰러지면 조교가 몸을 받아준다. 문제는 그때부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너무 세서 숨을 못 쉬었다. 호흡 곤란. 조교가 내 눈을 바라보며 보디 사인을 주었다. 입을 벌리고 입으로 숨을 쉬라고. 따라 했는데도 쉽지 않았다. 원통 안을 낮게 이리저리 날며 비행 준비를 한다. 그 와중에 이쪽저쪽 둥근 벽으로 날아가 박히기도 여러 차례. 조교가 검지로 위를 가리키며 위로 올라가겠냐고 묻는다.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 명쯤 되는 우리 그룹에서 포기한 건 나뿐. 그것도 첫 번째로 나갔는데. 투명 원통 밖에서는 사람들이 구경 중이고. 아시아 대표로 나갔다가 탈락한 기분이 이럴까?


아이는 유연하게 잘 날았다. 호흡 곤란 같은 촌스러운 상황도 없었다. 숙련된 조교와 윈통 아래에서 균형 잡기를 연습한 후 조교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이좋게 양손을 맞잡고 인어처럼 날렵하게 위로 날아오르더라. 왜 새처럼, 이 아니고 인어처럼? 글쎄다. 까마득히 원통 위로 세 번을 날아오르는 모습이 인어 같았다. 처음과 끝 두 번이 내 차례였다. 다시 입구에 서자 이태리 남자 조교가 의외라는 듯 놀라면서 그러나 미소를 띤 채 엄지 척을 했다. 죽어도 저기서 죽으리라! 끝끝내 날아오르리라! 나는 한국인이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입으로는 숨을 쉬며 균형 잡기부터. 조교의 사인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삼 세 번 비상 미션 완료! 얏호, 해냈다! 아이와 남편이 나보다 더 좋아했다. 이게 뭐라고, 목숨을 거나. 우주복과 헬멧벗어던지자 속이 후련했다. 막상 날아보니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다. 남편이 기대했던 것도 혹시 이것? 담력 키우기. 무서움은 머릿속에나 있다는 사실 알려주기. 그 부분은 조금 성공한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다.



이케아 옆 뮌헨의 보디 플라잉 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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