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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이자르강 산책

뮌헨의 일요일

by 뮌헨의 마리


일요일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다. 오전엔 쉬고, 오후엔 산책. 일요일이 두 번이면 좋겠다!


2022.5.22 일요일 뮌헨의 이자르 강변. 다리 위에서 이쪽과 저쪽을 찍었다. (같은 날인데 다른 느낌, 뭐지?) 위 사진 오른쪽은 도이치 뮤지엄.



5월 중순을 지날 뿐인데 뮌헨은 며칠 동안 30도를 넘었다. 오우, 이건 아니지. 날씨가 제정신이 아닌가. 온난화의 반격인가. 다행히 다음 주부터는 평년 기온을 되찾는다는 일기예보에 역시 평상심을 되찾는다. 이자르 강가와 산책길엔 인산인해는 아니라 해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성격 급한 이들은 벌써 이자르 강물 속으로 뛰어드시고. 아직은 물이 찰 텐데. 5월 초부터 야외 수영장도 문을 열었다. 우리도 가면 좋으련만 우리 집 청소년이 꿈적을 안 하신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시겠다고. 부부도 부모 자식도 서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집안에 평화가 온다. 아이는 오전 내내 세밀화 그림에 색칠을 하고, 남편은 오전에 나는 늦은 오후에 각자 산책을 나갔다. 강물도 초록 나뭇잎들도 노란 들꽃들도 산책길도 부드럽게 예의를 갖추는 오후의 늦은 햇살 속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렸다.



일요일 오후의 산책길. 사람 없을 때 찍음. (지니다니는 사람 있습니다. 자전거도요.^^;;;)



일요일의 한가함은 언제나 옳다. 일요일의 늦은 아침도 옳다. 토요일 오전의 한글학교는 5월부터 아이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온전한 휴일이라 보기는 어렵다. 일요일을 목메어 기다리는 이유다. 아침 8시까지 맘 놓고 늦잠을 잘 수 있고, 침대에서 <어린 왕자> 독일어 책도 소리 내어 읽어 볼 수 있고, 아무 계획도 약속도 없는 일요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 빵은 아이에게 사 오라 했다. 파파를 위한 카페라떼 한 잔도. 가는 길에 플라스틱과 병도 좀 버리고. 왜 자기가 해야 하냐고 입이 나오리란 건 예상했다. 그래도 하렴. 엄마와 파파도 일요일은 좀 쉬어야지. 이건 시작일 뿐이란 말은 참았다. 깊은 뜻이 있는 엄마의 입가엔 옅은 미소만. 아이의 나이는 만 열두 살, 한국 나이로는 열세 살. 그만하면 집안 일도 배울 나이 아닌가. 시키니까 또 잘 하더란 말이지.



생선 발라놓은 거 아닙니다. 바나나 자른 거예요! 아랫쪽 가운데는 바나나 팬케이크. 보기보다 맛있어요. 산책 갔던 남편이 사 온 소세지와 브레첼과 아이가 사 온 빵.



일요일 오후에는 바나나 구이와 바나나 팬케이크도 했다. 바바나를 좋아해서 자주 사다 놓는 편이다. 많이 익은 바나나를 부침 가루와 물을 넣고 팬에 전 부치듯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설탕을 쏟아부었나 싶을 만큼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이에게는 부침 가루 없이 바나나를 반으로 잘라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웠다. 아이는 맛만 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내 입에는 맛있기만 하던데. 남편은 바나나를 안 먹고 아이의 반응도 별로였지만 설탕이 금지된 내겐 일요일 최고의 디저트였다! 너무 달아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일요일 오전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절대로! 발코니의 화초에 물도 주고, 오전의 햇살이 식탁 위에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것도 지켜보며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 그 시간이 꿀처럼 달아서. 독일의 어머니날에 산 카네이션 열아홉 송이 중 열 송이가 2주나 버텨주는 것도 너무 기특하고.



발코니의 초록이들과 카네이션 열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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