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마리 엄마가 다녀갔다. 뮌헨에 레아마리랑 같이. 레아마리는 우리 아이와 서울 독일학교 유치원 동기다. 두 아이가 만난 게 세 살 때니까 십 년지기. 그렇게 따지면 나도 레아마리 엄마를 만난 세월이 벌써 십 년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레아마리 엄마가 보내준 아이들 유치원 때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내가 레아마리 엄마를 만났을때가 지금의 그녀 나이였다. 그때나는 글쓰기와 문학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 바빴고, 학교 행사나 모임엔 늘 요리조리 빠졌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그녀는 사교성으로 꼽자면 서울독일학교에서 탑에 속했다. 독일로 와서도 레아마리 아빠 고향이자 알프스에 가까운 바이에른 남쪽에서 독일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이루며 잘 지내는것 같다.
그녀와 나는 친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사이였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온 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잘 만나고 있는비결인지는 모른다.그런데 이번 만남에서는 결이 좀 달랐다. 내 마음과 말과 태도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는 말이다. 십 년이란 단어를 생각하자 마음에 따스한 물기가 생겼다고 할까. 만나도 지나치게 깍듯하지는 말고, 예의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선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뭐지, 이게? 써놓고 보니 무슨 소린지..) 그냥 맘편하게 만났다는 뜻이다.나오는 대로 솔직담백한 리액션도 술술 해가면서 말이다.
그날 들은 레아마리 엄마의 신박한 결심 때문에 더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피아노 레슨도 받고, 취미로 발레도 다시 배울 계획이고, 현재는 독일어 수업을 듣고 있다고. 미래엔 괜찮은 직업도 갖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부활절에 어울리는 신선한 결심인가. 싱그러운 봄바람과 연둣빛 봄새순처럼 말이다. 나는 사십 대가 여성들에게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나도 그랬으니까. 누구의 아내 혹은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이니셜로 새겨진 빨간 씨앗에물을 주다 보면 언젠가 그 열매를 맛볼 날도 올 것이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없고 거창하거나 찬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꿈을 밑거름 삼아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 오십 대에 휘몰아칠 갱년기라는 내면의 폭풍도 무탈하게 지날 수 있을것이고. 내겐 그것이 글쓰기와 문학이었는데, 레아마리 엄마 S에겐 과연 무엇이될지 궁금하다.
카타리나 엄마 베아테가 초대한 뮌헨의 꽃을 테마로 한 전시회 <Flowers Forever>에 전시된 작품들.
2. 카타리나 엄마, 베아테
카타리나는 우리 아이의 독일 초등학교인 그룬트 슐레 Grundschule 친구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4년제인데 우리 아이는 2학년 2학기에 독일로 전학을 왔다. 상당 기간 반에서 친한 친구가 없다가 극적으로 카타리나와 가까워졌다. 듣고 있으면 카나리아 새가 노래하는 것 같은 카타리나가 말수가 적으신 우리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붙여주신 덕분이아닐까 싶다.알고 보니 독일 가족인 카타리나 엄마 아빠가 우리 부부와 나이대도 비슷했다.(우리는 다 나이가 많은 부모들이었다. 베아테는 카타리나보다 몇 살 많은 아들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이번에 보니 베아테가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다! 난 동갑인 줄. 독일은 친해도 서로 나이를 잘 묻지는 않는 것 같은데, 우연히 베아테가 자기 띠 얘기를 하길래 출생 연도를 물었다. 띠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정정해 주려고.)
베아테와는 오랫동안 친해지지 않았다. 카타리나는 몸이 약해서 자주 결석을 했고, 가끔 학교에서 베아테와 마주치면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다. 그것도 할로! 한마디면 끝. 베아테가 일을 하고 있어서 바쁘기도 했고. (베아테는 뮤지엄에서 일하는데, 전시회 때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다. 일을 그만둘 거라 하더니 아직도 다니고 있었다. 독일 엄마들은 거의 일을 한다.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파트타임이나 알바 자리가 충분하고 근무 시간이나 시스템이유연해서 가능한것 같다. 무슨 일은 하냐고 대뜸 물어서 아무 일도 안 한다고 대답하면 뻘쭘해질 때도 있다. 왜 일을 안 하지? 대놓고 묻진 않아도 눈빛과 표정이 많은 걸 알려주기때문이다. 대신 화가나 작가나 음악가처럼 예술 분야에 대해선 평가가 인색하지 않아 제법 쳐준다. 생각해 보니 베아테의 인상이 무서웠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솔직히 웃는 상은 아니셨음.)
결정적으로 베아테와 친해진 건 아이들이 4학년 때다. 코로나 이전이어서 아이들이 이쪽저쪽 서로의 집을 방문하며 파자마 파티도 자주 했다. 슈바빙 지역에 사는 카타리나 가족이 우리 동네로 와서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식사를 한 적도 있다. 그때 베아테가 유쾌하고 코믹할 소지가 다분한 캐릭터라는 걸 알았다. 그 집은 아빠만 빼고 나머지 셋이 말을 해도 너무 잘한다. 아이들이 다른 김나지움을 간 이후로 코로나가 터졌고 자주 만나지 못했다. 아이들은 주 1회 전화 통화를 시작했고, 주로 카타리나가 먼저 전화를 했다. 돌아보면 그때 베아테가 투병 중이라 어린 마음에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 후 내가 암투병을 하고, 베아테가 나보다 먼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이번 부활절 방학 때는 베아테가 먼저 연락해서 나와 아이를 꽃 전시회에 초대했다. 꽃을 테마로 한 전시회였는데 클라이맥스는 역시 마지막. 마른 꽃들이 꽃비처럼 쏟아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저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지, 계속 감탄하며 보고 또 보았다.
전시회 후에는 카페에서 차와 쿠헨도 먹었다. 엄마들이 서로의 투병 얘기를 나누는 사이 옆에서 아이들도 밀린 얘기로 바빴다. 통증은 여전하다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심해 보이지는않아서 나도 안심. 베아테가 말했다. 카타리나를 위해 뮌헨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암에 걸린 부모의 어린 자녀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카타리나 오빠는 안 받지만 알리시아도 필요할지 모르니 신청해 보라 했다. 아이들이 동의하면 공동 상담도 가능할 거라며.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물으니 상담은 좋지만 카타리나와 같이는 싫고 혼자 받고 싶다 했다. 이해했다. 아이들에게도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싫은 각자만의 고충이 있을테니까. 암에 걸린 엄마들의 고민은 기승전아이들. 어린그들에게도 기댈 곳이 있어야 해서. 집에서는 내색하지 못하는 심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그게 어디든 누구든믿을 만한 곳이라면. 그러므로 부활절 연휴에 의기투합한 두 엄마의 결심도 아이들이었다. 아직 사춘기도 제대로 찾아오지 않은 이 꽃 같은 어린 소녀들 말이다. 베아테와는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아무 때고 연락해서 다시 뭉치기로 약속했다. 헤어지기 직전 유월 핑스턴 방학 때는 우리 집에서 한국 음식이나 먹을까 제안하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진작 물어볼 걸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초대 너무 잘했다고 폭풍 칭찬도 듣고. 그래서 고민 시작. 이참에 아이를 한국 요리에 입문시켜 봐?(한국 할머니께 효도 차원에서 이번 부활절 방학 때 고도리는 성공적으로 입문시켰다.)
율리아나 가족과 우리 동네 이태리 레스토랑 산타마리아에서 저녁. 올해 첫 아스파라거스, 슈파겔 Spagel은 이사벨라가 주문함. 나도 저걸 시켰어야.. 왜냐고? 맛있어 보여서!
3.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
율리아나가 전학을 간다고 한다. 율리아나는 우리 아이 초등 때부터 절친으로 같은 동네에 살고, 초등 때 반에서 유일하게 둘만 같은 김나지움에 갔다. 이번부활절 방학 때 아이의 절친 4인방 왓츠앱 단톡방에 율리아나가 폭탄선언을 한 모양이었다. 아이에게 들은 대로 옮겨보자면 요점은 이렇다. '너희들에게는 안 좋은 소식. 나한테는 좋은 소식. 나 가을(새 학기/8학년)에 전학 감.' 어감상 반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너에겐 왜 반가움? 우리랑 절친 아님? 그럼 너도 서운해야 되는 거 아님?블라블라..'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더 이상 말을 안 해줘서. 사춘기를 앞둔 딸과의 대화 불문율은 이렇다. 아이가 학교 생활 혹은 친구 관계 등 사생활을 말할 때는 적당한 무심을 가장해서 듣는다. 아이가 입을 꾹 다물 때는 아무리 궁금해도 파지도 캐지도 찌르지도 밑밥을 던지거나 당기지도 않는다. 가족끼리 만난 날 둘은 여전히 화기애애했다.
율리아나가 왜 전학을 가기로 했는지 추측은 가능했다. 아이의 설명 역시 그랬다.아이와 율리아나가 다니는 김나지움은 이과 계열 특성 학교다(외국어나 음악 특성 김나지움도 있다). 당장 올 가을에 8학년만 되어도 주요 4과목(독일어/수학/영어/라틴어 or 불어)에 물리나 화학 등이 추가된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학에 강한 율리아나에겐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제1 외국어가 영어, 제2를 불어를 선택한 율리아나에겐 선택의여지가 별로 없다. 과학 대신 어학을 하나 더 선택할 경우 라틴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틴어는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가 학창 시절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치를 떠는 과목이라서 선택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그래서! 전학.
두 아이가 다닌 초등학교는 뮌헨의 시내 노른자인 빅투알리엔 마켓 부근이었다. 빅투알리엔 마켓은 아시다시피 뮌헨 시청사가 있는 마리엔 플라츠 바로 옆이고, 아이들의 초등학교는 빅투알리엔 마켓 옆이었다. 문제는 뮌헨에 몇 안 되는 가톨릭계 여자 초등학교이자 여자 김나지움이라는 것. 이 김나지움이 음악 특성 학교로 율리아나에게는 두 가지 메리트가 있었다. 율리아나와 절친이었던 초등 친구들 대부분이 이 여자 김나지움으로 진학했고, 이 학교에서는 제3 어학이 라틴어 말고도 스페인어가 가능하기 때문. 프랑어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한 율리아나에겐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두의 율리아나로서는 기쁜 일이 될 수 있겠고. 전학을 가더라도 옛 친구들이 있어 어색하지 않고, 과학보단 어학이 나을 테니까. 급하다 보면 앞뒤 문맥 다 자르고 팩트만 나오는 건 어른이나 애들이나 매한가지.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해 봤다. 무슨 정신이 있겠나 싶어서. 율리아나 남동생도 초등 4학년이라 김나지움이냐 레알 슐레냐 아님 그 한 단계 아래냐로 중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는 때라서. 점수 채점에 꽤나 보수적이고 거기다 엄하기까지 한 선생님을 4학년 담임으로 만나 이사벨라의 마음 고생이 큰 것 같았다. 일요일 오후에전화해서 그날 저녁을 함께 먹자는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이사벨라가 반색했다. 독일에서는 이런 게 오래 아는 막역한 사이에서나 가능한 거라서. 몇 시간 후 양쪽 가족이 다 모이니 어른 넷, 아이 셋. 이사벨라가 우리가 안 가 본 큰 도로 쪽 이태리 레스토랑을 추천하길래 바로 전화해서 내 이름으로 예약을 넣었다. (이럴 때 너무 좋다. 내가 모르는 맛집을 추천받을 때. 내가 전화로 직접 예약할 수 있는 일상 독일어 회화가 가능하다는 사실. 전화든 뭐든 겁 없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율리아나 전학 건도, 남동생 진학 건도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한 가지씩 순서대로 터져도 해결이 쉽지 않은데 두 가지가 한꺼번에 터지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아빠 지미는 태국 사람이라 이런경우 모든 결정과 처리가 이사벨라 몫이다. 이사벨라도 일을 하고 있어 시간적, 심리적 부담이 당연히 클 것이고. 두 가지 다 속편한 결정도 아니어서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얼마나 쓰라릴 것인가. 형제자매가 김나지움에 다니면 동생은 같은 김나지움에 들어올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날 오면(아직도 춥다!) 같이 산행이나 하자며 위로 아닌 위로를 전했다. 이사벨라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중에 율리아나가 진로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미리 교통정리를 확실히 하겠다는 것. 율리아나 남동생이 김나지움으로 못 가면 플랜 B로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까지 감수하겠다는 것. 거기에 율리아나 아빠 지미의 결심까지 살짝 보태자면 독일 귀화 시험에 합격을 해놓고도 고민 끝에 귀화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고.내 경우를 묻길래 난 귀화 시험은 물론이고 귀화 자체를 고민해 본 적도 없다고 숟가락에 슬쩍 힘을 실어줬다. 지미의 표정이 등불을 켠 듯 환해지며 자기는 애들 대학 가고 자립하면 이사벨라와 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넌 안그러냐고 2년 전 연말에 물은 걸 또 물었다. 난 일 년에 두 달만 한국살이를 할 수만 있대도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은데 라며 속마음에서 한 달을 쓱 빼고 말했다. 난 그사이 혼자서 한번 한국을 다녀오다 병 상태를 키운 적도 있지만,올여름 율리아나 가족과 나와 우리 아이는 2019년 여름 이후 처음으로 그리운 태국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어떤 결심이란 이토록 좋은 것이다.
네 엄마에게, 우리 동네 마녀 카페 입구에 있는 저 소박하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화분을 하나씩 안겨주고 싶음. 율리아나 아빠에겐 저 화환을 목에 걸어주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