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에 시작한 뮌헨한글학교 문학 특강은 7월 둘째 주에 끝났다. 지난 5개월 동안 세 개 반에서 총 11강을 했다. 한글학교 아이들에게 문학 수업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한국어 듣기 공부를 문학으로 한다는 것만으로도얼마나 멋진가. 거기다 읽기 교재로 전래동화를 벗어나기 힘든 한글학교 아이들에게 세계문학을 접할 소중한 기회가 된다.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으니까!많은 아이들에게 문학의 감동을 안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중 몇몇 아이들 가슴속에라도 문학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뮌헨의 한글학교는 성인반 두 개를 빼고 유치반부터 청소년반까지 총 열 개 반이 있다. 그중 수박반과 청소년반 아이들이 가장 나이가 많다. 유치반부터 초등 1~2학년반을 제외하면 나머지 다섯 개 반은사과/복숭아/참외/수박/청소년반이다. 내가 문학 특강이 가능하다고 보는 대상도 그들이다. 이 아이들은 독일의 초등학교 고학년에 해당하는 3~4학년부터 김나지움 학생들이다. 이번 학기에는 사과반(8-9세), 복숭아반(9-10세) 그리고 수박반(12-14세)에서 특강을 했다. 2학기에는 다른 반에서도 할 계획이다.
사과반에서는 7강을 했다. 커리는 세계문학 중단편 위주로 골랐다. 시간상의 제약으로 장편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변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까뮈의 <이방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그리고 마지막 작품으로는 러시아 작가 레스코프의 <왼손잡이>를 골랐는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작품은 <변신>과 <왼손잡이>였다. <노인과 바다> <필경사 바틀비> <체스>도 괜찮았다. <이방인>과 <달과 6펜스>는 난해하고 복잡한 스토리로 아이들에게 조금 힘들었던 듯하다. 무슨 생각으로 그 두 작품들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용기만 가상했다고 해 두자.
복숭아반과 수박반에서는 각각 2강과 3강을 했는데 <변신>와 <노인과 바다> 그리고 <왼손잡이>였다. 첫 문학 강의로도 적당하다고 보고 아이들의 연령대도 고려했는데, 강의 후에 든 생각은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폭풍 같은 작품들도 괜찮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 고학년 반에서 시도했던 두 작품 <이방인>과 <달과 6펜스>와 <폭풍의 언덕> <프랑켄슈타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개츠비>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작품들 말이다. 햄릿의4대 비극은 청소년기로 접어든 수박반과 청소년반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가을과 겨울에 어울리는 러시아 작가 플라토노프의 서정적인 단편들과 가슴이 미어지는 고골의 단편 <외투>도 생각 중이다.아이들이 너무 가슴 아파하면 안 되는데. 한여름 납량 특집으로 에드거 앨런 포우의 오싹한 이야기들은 내년으로 넘겨야겠다.
공로상은 멜빌과 츠바이크와 헤밍웨이에게.
아이들의 반응은 높은 집중도와 몰입도로 표현되었다. 그중 연령대가 가장 낮았던 사과반에서는 절반이 넘는 남자아이들의 집중도를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잘 따라와 주었다.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각 반마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변신>을 듣고 가슴이 아프다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L이라는 여자 아이가 <달과 6펜스>를 듣고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해서 나를 좌절시킨 적도 있다.
"선생님,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요. 이름이 어려워요!"
아, 맞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니, 그를 극진히 돌보는 화가의 이름은 더크 스트로브. 이 얼마나 한국말로 발음하기 어려운 성들인가. 더군다나 열 살짜리들에게 그의 기행을 이해하기를 기대하기란 밤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인데. 나도 참. 그런데 반전도 있었다. 마지막 사과반 수업은 담임샘께 의논을 드렸다. 두 러시아 작가 플라토노프의 <귀향>과 레스코프의 <왼손잡이> 중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끝이 좋으면 다 좋으니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문학샘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감동과 재미라는 배틀에서 담임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미'의 손을 들어주셨고 예상은 적중했다. <왼손잡이> 수업이 끝나자 L이 다시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해서 내 가슴에 감동의 불꽃놀이를 선사 했으니까.
"선생님, 오늘 이야기 제 마음에 쏙 들어요."
아, 아이들이란! 물방울처럼 톡톡 튀는 이 맑은 감수성. 학부모 중에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필경사 바틀비> 수업에 오셨던 분 같은데, 수업이 끝나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무 오랜만에 필기까지 하며 집중해서 들은 강의였다고. 감사와 쑥스러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르고. 몇 명 더 있다(이런 건 잊기 전에 기록해 두어야 한다). 복숭아 반 J라는 아이가 그렇다. 수줍음이 많아서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자기 엄마에게 얘기한 모양이었다. 운동회날 J의 엄마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변신>을 듣고 울었대요. 너무 감동해서요."
나도 울 뻔.그 귀한 마음 오래오래 간직하길. 수박반에도 있다. 올해 참외반에서 올라와 기존 수박반 형 누나들과 합반을 하게 된 개구쟁이 삼총사 남자 애들 셋이 주인공이다. 문학 수업 전에 미리 삼총사 3인방에게 부탁을 했다. 샘 수업 때 잘 부탁한다고. 그중 S가 <변신> 수업이 끝나자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거의 울 뻔했어요." 그날 S는 내게 <변신> 독일어 책을 빌려갔다. 두 번째 수업 <노인과 바다> 후에는 삼총사 중 또 한 명의 S가 말했다. "선생님, 이번 주랑 저번 주랑 이야기 다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게 최고 아닌가. 삼총사 중 J는 수업 중 미동도 없이 집중해 주었다. 이런 아이들 덕분에 이번 학기 내내 난 행복한 문학 선생님이었다. 문학 수업 마지막 주에는 한글학교복도에서 어느 반 담임샘을 만났는데, 그 샘의 아이가 내 문학 수업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주셨다. 2학기에는 그 샘 반에서도 수업을 하기로.
노력상은 까뮈와 몸에게. 분발은 나의 몫!
이번 학기에 들은 말 중 하이라이트는 W라는 남자아이다. 이 반에서 수업하기 직전에 W의 엄마는 걱정 한가득인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W가 문학 수업을 집중해서 들을지 모르겠어요."
과연 그랬다. 총 일곱 번을 수업했는데 수업 중 그 애와 눈을 마주친 적은 없었으니까. 고개를 들지 않아서. 그래도 떠들거나 산만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해서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열 살 언저리의 남자아이들이 그 정도만 해줘도 얼마나 고마운가. 그 반의 마지막 문학 수업이 끝나고 운동회 관련 회의가 그 반에서 열렸다. 내가 앉은자리가 W의 책상이었던 모양이다. 인사도 기척도 없이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 묵묵히 자기 책가방을 싸던 W가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무표정하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우리 반에 또 언제 오실 건데요?"
순간 내 귀를 의심한 나는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W야, 너 지금 나한테 하는 얘기니?"
"예. 다음에는 무슨 이야기해 주실 건데요?"
이런 사랑스러운 애를 봤나! 순간 W를 안아줄 뻔했다. 초인적인 힘으로 참았는데 잘한 거 같다. 안 그랬다면그 무뚝뚝한 남자아이가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르니까.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떤 약속이라도 해야 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찾아갈 것인가를.
"W야, 너는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니? 이런 이야기는 어때?"
정신을 수습하고 <프랑켄슈타인>의 대강의 줄거리를 들려줬다.
"이런 이야기도 괜찮아?"
W는 예,라는 짤막한 대답과함께 온 것처럼 조용히 교실을 나갔다. 그때 깨달은 것 하나. 아, 내가 이 아이들을 좋아하는구나. 아이들의 솔직함보다귀한 게 또 있을까. W의 엄마에게는 아직 이 얘기를 전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와 차를 마실 기회가 오면 꼭 들려줄 생각으로 아껴두고 있다. 아들을 안 키워봐서 잘은 몰라도 무뚝뚝함은 10대 남자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특기이자 장기가 아닐까.
한 학기 수업을 통해 알게 된 건 아이들이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 같아도 관심 없는 척 앉아 있어도 다 듣고 있다는 것.그래서 소망한다. 때로 문학의 깃털이 그들의 옆구리나 겨드랑이나 뒷덜미를 살살 간질이고 슬쩍 건드려 주기를. 그들의 가슴이 주인공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에 함께 웃고 혼자 눈물짓는 순간이 있기를. 가장 외로운 시간이나 마음에 광풍이 휘몰아칠 때도 책이 그들의 친구가 되고 주인공들이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가져다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