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어떠신가요. 육신을 벗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허공 속으로 떠나시니 편안하신가요. 아직 그 강을 건너진 않으셨겠지요. 지금쯤 그 강가에서 서성이시며 이곳을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아직은 떠나실 때가 아니잖아요. 스님께서 육십오 년을 입고 계시던 몸이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잖아요. 스님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돌아갈 때까지는여기 계셔주세요. 딱 이틀만 더요. 그것이 스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주시는 마지막 보살행이라고 저는 우길 거예요. 스님은 그런 분이시잖아요. 무정한 분 아니시잖아요. 황망한 마음 수습도못한 채 부치는 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부디 받아주세요.
스님 떠나시던날은 칠월의 첫날 아침이었습니다. 무더운 유월이 지나고 더 무더울지도 모를 칠월을 반긴 이유는 칠월의 끝에 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검사 결과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좋은 결과 나오리라 믿고 등산을 다니며 체력을 기르는 중이었어요. 뮌헨에서 인천까지 비행기로 열두 시간에서 열세 시간을 버텨야 하니까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부산에서 제주까지 그리운 분들을 만나고돌아와야 하니까요. 제 투병으로 염려하셨을 스님께 완치까지는 아니라 해도 건강한 모습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그 시간이 마침내 칠월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찌 기쁘지 않았겠어요. 투병소식 이후 잘 지낸다고, 염려 마시라는 안부조차 못 드린 지 오래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도무심하게 지나갔고요. 여름에 찾아뵐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씀도 못 전하고 스님을 보내야하는 제 심정이 어찌 애통하고 절통하지 않겠어요.
그날은 토요일이었어요. 아이와 뮌헨의 한글학교에 가는 날이었지요. 뮌헨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탈때 한글학교에 가는 중인지 묻는 언니의 톡을 받았어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평소와 느낌이 달랐거든요. 그 질문이 뭐라고 왜 그렇게 무섭게 들렸을까요. 무슨 일이냐, 무슨 소식이냐, 빨리 말하라고 언니를 다그쳤죠. 설마 그 대답이 스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면서요. 저는 울었습니다. 걸으면서도 울고 버스를 타면서도 울고 중간에 내려서도 울었지요. 울면서 한글학교로 걸었습니다. 제 옆에서 걷던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울어주었어요. 스님 암자에서 연등을 만들고 스님 암자의 넓은 마당에서 들꽃으로 꽃다발을 만들던 그 애기 말이에요. 그 아이가 엄마 키만큼 자란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록 훌륭한 엄마는 못 되지만 아이는 엄마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 모든 것이 스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요.
스님 떠나시고 다음 날.
스님 가시고 둘째 날입니다. 밤새 뮌헨에는 비가 내렸어요. 빗소리를 들으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스님과 공부하던 금강경을 펼쳤습니다. "2017.7.1 토요일". 첫 장에 날짜가 쓰여져있네요. 꼭 6년 전이에요. 스님 떠나신 날과 같은 날요. 스님께서 직접 해석하신 금강경과 스님께 배운 육조단경과 유마경이 있는 한 스님은 저희를 떠나실 수 없어요. 스님께서 남기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스님의 경전 해석을 읽기만 해도 스님의 모습과 목소리가생생하게 보이고 들리는듯하니까요. 상해에서 3년, 서울에서 3년. 스님과 공부하던 그때 그 시절 저는 행복했습니다. 환희심에 벅차 올라 불교를 배웠지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시던 스님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이란 두 글자였어요. 남과 비교하지 말라,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말라시던 뜻 가슴 깊이 새기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도 모르고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했던 말씀을 이제야 전합니다. 스님을 만난 건 제 인생의 로또였어요. 아시죠, 스님? 스님을 통해서 부처님 말씀만 배운 게 아니라는 것을요.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어주는가를 저는 스님께 배웠어요. 입 다물고 조용히 듣는 법 말이에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미덕 같은 것도요. 아직 완전히는 아니라서 제 것으로 만들려면 평생의 과제가 될 것 같아요. 서두르는 법이 없으시던 스님의 모습과 나직한 목소리와 고요하던 눈빛을 저는 언제나 기억할 거예요. 스님을 무람 없이 대할 수 있었던 건 스님의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으시던 관대함 덕분이었어요. 스님께선 모르셨을 스님의 인간적인 모습 말이에요.
생각나네요, 스님. 오래전 부처님 오신 날에 함께 제주로 찾아간 저희 보살들에게 스님께서 단체로 CD를 선물하시던 기억요. 어젯밤 찾아봤는데 못 찾았어요. 그렇다고 잊지는 않았답니다. 스님께서 CD에 녹음해 주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요. 베토벤을 들을 때마다 스님이 생각날 거예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마다 소박한연통에 커피를 볶으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를 거고요. 스님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안 되나요. 스님은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저는 묻고 싶어요. 세상의 하고 많은 즐거움 중에 그런 소소한 낙도 없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삶의 고적함과 적적함 말이에요. 스님이든 우리든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니까요.
저는 오늘도 뮌헨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테게른제 호숫가로 왔습니다. 기차를 내린 후 제 발길은 처음으로 산 쪽이 아니라 호숫가로 향했어요. 우리 스님도 지금쯤 그 강 앞에 서 계시겠지, 생각도 많으시겠지, 싶어서요. 지금 한국은 자정이 넘어 스님 가시고 셋째 날로 접어들고 있겠네요. 아침이 밝으면 스님은 다시 먼 길을 떠나실 거고요. 그 시간까지 저는 잠들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압니다. 스님은 정토 세계로 떠나시는 거예요. 나뭇가지마다 아름다운 보석들이 열린다는 그곳, 바람이 불면 갖가지 보석들이 부딪혀 영롱한 방울 소리를 낸다는 그곳으로요. 그래도 스님,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마세요. 꼭 다시 돌아오세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스님을 스승으로 만나고 싶어요. 어느 생에선가 분발해서 스님과 도반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가질 수도 있을까요. 이 생에 저의 스승으로 와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했어요. 부디 극락왕생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