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뒷모습. 저 뒷모습을 지난 15년 동안 뵈었다. 독일에 온 지 5년 동안은 못 뵈었다. 무심했던 지난 날을 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하랴. (사진 출처:다음카페 동파)
스님, 먼 길 무탈하게 잘 가시고 계신가요.
며칠 전 스님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받아보았어요. 출근 준비를 하던 아침이었어요. 거울 앞에서 스님을 부르며 저는 울었답니다. 버스를타고 가는 동안 마음을 추슬러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함께 일하는 언니가 저를 보고 놀라서 물었어요. 눈이 왜 부었냐고요. 우리 스님이 돌아가셔서요, 했더니 듣고 있던 노래를 끄시고 다른 노래를 켜주시더군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하시면서요. 슬플 땐 노래지. 오래된 가수의 '님은 먼 곳에' 였답니다. 언니 말씀이 맞았어요. 그날 아침에는 노래 한 곡이 백 마디 말보다 위로가 되었어요. 그래요, 스님. 스님은 먼 곳으로 떠나셨지요.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요. 육신을 가진 채로는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스님의 뒷모습조차볼 수 없는 강 저편으로요. 그래서 슬퍼요. 그래서 웁니다. 운다고 스님이 돌아오실 리 만무하다는 걸 알면서도요.
오늘은 스님의 사십 구재 중 초재날이었어요.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더니 이곳 독일 시간으로 오후 2시무렵 유튜브에 스님의 초재 동영상이 올라왔답니다. 말씀 안 드렸죠? 저는 2년 전 항암 이후로 금요일마다 면역 치료차 열치료와 왼쪽 다리에 부종 테라피를 받고 있어요. 스님은 가실 때조차 저를 배려하시네요. 스님의 사십 구재가 금요일로 결정된 건 저에겐 크나큰 선물입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6월 말에 그만두고 새 직원이 오는 7월 중순까지 제가 일을 조금 더 하기로 했거든요. 근무일이 평소보다 이틀이나 늘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슬픔을 견디는 법중 최고는 일인것 같아요.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스님. 일을 안 했더라면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거예요. 스님의 사십 구재가 있는 금요일은 쉬는 날이라 스님을 추모하기에 더없이 좋아요.
스님이 떠나신 제주도 서연암. (사진 출처:다음카페 동파)
스님의 초재일을 하루 앞두고 저는 스님께서 풀어쓰신 대주 선사의 돈오입도요문론을 펼쳤습니다. 차례만 훑어봐도 스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깨달음은 지금이다/마음은 머무르지 않는다/공부는 어디서나/집착하면 막힌다/극락과 지옥은 어디에/누구나 다 부처다/부처는 항상 내 곁에/진리는 가까이에 있다/돈오란 무념이다/무심이 전부다/진리는 없다/무심이 중도/무심이 해탈..' 저는 언제 그 무심의 경지에 도달할까요, 스님. 스승을 잃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무심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럼 저는 무심 안 하겠습니다. 스님과 공부하며 단 한 번도 기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특히 저는 스님이 마음에 대해 비유해 주실 때가 좋았습니다.
"마음은 어떠한 모습도 갖고 있지 않다. 이름을 붙일 수도, 언어로 설명할 수도, 생각으로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마음을 부처님은 49년간 중생들에게 설명을 하셨다. 그것이 바로 8만 4천 법문 즉 경전이다. 그러므로 8만 4천 가지 법문들은 오직 마음 하나를 설명하기 위한 '마음 설명서'인 셈이다. 부처님은 우주가 만들어진 근원을 설명하거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말하거나 전생이나 내생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매일 쓰고 있는 이 마음을 설명하신 것이다. 돈오입도요문론을 쓴 대주 스님 역시 마음의 본래 모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참마음을 깨달을 수 있으며, 깨달음이란 바로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말씀도 좋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경전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너무 높고 먼 이론만 나열하고 나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죽은 언어나 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즐거울 때 즐거워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이 정상이며 인간적이다. 실수를 하고 반성을 하며 화를 내고 후회를 하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불교는 이런 감정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공유하라고 말한다. 남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고, 남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돌이나 나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 스님. 이런 가르침을 어디서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삶이 나태해지고 사는 게 지루하고 비루할 때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맑은 죽비가 되고, 기운을 잃고 용기가 땅바닥에 떨어지기직전 손을 내밀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앞길 밝혀주시던 등불 같던 스님의 말씀 말이에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말씀도 저는 좋아했어요. 미워하되 좋아할 줄 알고 좋아하되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요. 미워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없다면 신이거나그렇지 않다면 돌부처지 인간이라고 할 수있겠느냐고, 그러니 무아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자 철저한 긍정을 뜻한다고 하시던 말씀을 저는 기억할 거예요. 저희가 살아있는한, 살아서 스님을 잊지 않는한 스님은 저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실거잖아요. 그렇지요, 스님? 아닌가요?
오, 방랑자여.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스님의 초재일에 들린 작은 기도처에서. 스님, 가시다 다리 아프시면 저 벤치에 들리셔서 언제든 쉬었다 가세요.
스님.
스님 가시고 벌써일곱 번째 날입니다. 앞으로 49일 동안 스님은 먼 길을 가시겠지요.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실 건가요. 등에는 가벼운 봇짐 하나, 손에는 단단한 지팡이 하나 드시고 돌길 자갈길 가시밭길을 헤쳐가실 건가요. 아니면 저희가 배운 대로 정토 세계로 가시는 길엔 꽃비 단비가 내릴까요. 저는 모릅니다. 스님이 가셔야 할 길과 당도하실 곳을요. 그러나 스님.저희가 49일 동안 스님과 함께 있어 드릴게요. 너무 외로워 마시고 그리워도 마세요. 외롭고 서럽고 괴롭고 그리운 건 남겨진 저희 몫으로 두시고 스님은 뒤돌아보지 마시고 앞만 보고 가세요. 지금까지 살아오신 그 모습 그대로요.
스님 가시고 매일 우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닌가 봐요. 저는 벌써 몇 사람을 알고 있는 걸요. 스님 가시고 사흘 내내 스님의 단호한 가르침이 밤낮으로 귓가에 울려 후회와 회한으로 속이 검게 타도록 울었다는 보살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그리워하지도 지난날을 후회하지도 말고 살아있는 남편과 부모와 곁에 있는 이를 부처님 공양하듯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라 하신대요. 스님은 가시면서도 자신에게 통렬한 가르침을 주신다며 울었어요. 또 있습니다. 스님 가시고 어떻게 사냐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스승을 잃었다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우는 이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제주에서 이런 분들이 어디 한둘일까요, 스님.
최근에 어떤 사람이 그런 법문을 들었대요.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고요.이 말을 전해준 이에게 저는 기쁨에 차서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요. 그토록 운이 좋은 사람이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깨달음은커녕 아직도 어리석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건 스승의 허물이 아니라 온전히 저의 탓입니다. 부처님 가실 때도 수많은 제자들이 그랬다지요. 부처님 가시면 우리는 어찌하냐고요. 저희 마음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살아생전 스님께서 그토록 누누이 당부하셨는데도요.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고 걸림 없이 살라고요. 생사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스님.
뮌헨의 밤이 깊어갑니다. 스님의 초재가 끝난 밤입니다. 오전에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작은 기도처에 들러 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스님의 초재를 동영상으로 지켜보며 스님 이다지도 빨리 떠나신 게 서러워 울었습니다. 이곳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하늘에는 하나 둘 별이 빛나네요. 스님이 가실 곳도 저기일까요. 제 머리 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밝게 빛나는 저 별이 스님이 가실 곳일까요. 스님 길 잃지 마시라고 저리도 환하게 빛나고 있는 걸까요. 스님 그리울 때마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게요. 저희도 언젠가 이 생이 다할 때 스님 별 옆에 오손도손 모여 의지가지 하며 서로를 빛내고 세상을 밝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까요, 스님. 그 답이 별이라면 스님 없는 세상을 살아도 마음이 덜 쓰리고 덜 아플 것 같네요. 스님,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면 별의 마음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극락왕생하세요.
스님의 초재일. 뮌헨의 밤은 깊어 가고 별은 빛나는데.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