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누울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 복부를 절개해야 하나. 벌써 두 번이나 열었는데. 아니지, 2006년 상해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한다고 한 번. 2010년 제왕절개를 한다고 또 같은 자리를 두 번. 10년 후 이번엔 자궁암이라고 세 번.수술한 지 두 달 지나 사고로 수술 부위가 터져서 네 번.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고 쳐도 다섯 번은 좀 아니지 않나, 그런 걱정.
이번에는복부 쪽은 아니란 생각이 든 건 지극히 정상적인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고. 어떻게 수술을 할지는 의사들 마음 아니겠는가. 같은 부위의 방사선 치료는 복부 쪽으로 했는데. 다행히 깨어보니 허리 뒤쪽을 수술했더라. 복부가 멀쩡하고 허리 뒤쪽이 당기는 걸 보니. 그것도 감사한 일 중 하나. 뭐? 어디를 어떻게 수술할 건지도 모르고 수술대에 누웠냐고? 뭘 어떡하겠나. 딱히 안다고 도움이 될 것도 아니고. 그냥 맡기는 수밖에. 의사들이 여기를 이렇게 저렇게 수술할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물어줄 리는 없고. 자기들도 권위라는 게 있는데.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되도록 시간을 확인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깨어나야 할 시간에 미리 무의식의 주파수를 맞춘다는 심정으로.2023.10.9 월요일 아침 8시 40분. 기억하자. 수술은 9시 시작이라 했으니 난 12시쯤 깨는 거야. 뭘 한 건지도 모른 채 산소 호흡기를 갖다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난 마취가 잘 듣는 편인가 보다. 그것도 전신 마취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이것도 감사한 일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깨어보니 오픈된 공간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시계를 보려고 노력했는데 동공이 흔들려서 초점이 맞지 않았다. 12시 반쯤 깬 것 같다. 그때부터 2시까지 그곳에서 침대에 누워기다렸다. 뭘 기다리는지는 몰라도 마취가 충분히 풀려야 입원실로 가는 시스템 같았다. 수술도 몇 번 해보니 루틴이 나오더라. 젊은 남자 간호사가 규칙적으로 내 팔을 툭툭 치면서 심호흡을 하세요, 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아, 심호흡을 해야 하는 거구나, 하며 따라 하려 애썼다. 드디어 6층 새 병실로 갈 때, 그것도 1인실로 갈 때는 날씨가 얼마나 화창하던지 보송보송한 목화솜 같은 햇살이 병실 안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그 환희로움! 나 잘하면 이번에도 잘 낫겠는걸, 그런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시월의 햇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과 후 아이가 와서 공부를 하다 돌아갔다. 굳이 병실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가는 그 심정을 엄마라고 다 알겠는가.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법이니.
2년 전 한국에서 사고가 나서 암 수술 부위를 다시 재수술을 받을 때 가장 걸리는 건 독일에 두고 온 아이였다. 그때 아이는 열 살에서 막 열한 살이 되었다(지금은 어언 열세 살! 이만해도 다 컸다).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지 그때의 아이 마음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독일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미션 때문에 나는 나대로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여지가 없었기에. 돌아가기만 하면 아이에게 준 상처와 트라우마도 절로 씻기는 줄 알았다. 있잖나, 미션 클리어! 깔끔하게. 그런데 아니었다. 그 트라우마는 아이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학교 상담실에 불려 가서 상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한 번 마음에 새겨진 트라우마란 저절로 없어지는 게 아니란 것을.
아이가 자꾸만 병원엘 온다. 파파랑도 오고 혼자서도 온다. 남편은 이 와중에 내가 수술받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루마니아로 출장을 갔다. 혼자서도 괜찮다는 아이가 염려되어 조카에게 부탁하니 사흘쯤 아이와 같이 있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목요일에는 시누이 바바라에게 아이와 저녁을 먹어달라고 부탁했다. 수술을 받던 월요일 아침엔 남편이 아이의 오전 수업을 두 시간이나 빼고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병실로 와서 아이와 내가 함께 있을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는 자꾸만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옛날의 트라우마를 자가 치료중이라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꼭 안아주기, 오래 안아주기였다.
한편으로 나는 아이에게 허세를 왕창 떨었다. 엄마 대단한 거 알지? 엄마 엄청 용감한 것도 알지? 엄마는 하나도 안 무서워. 걱정도 안 돼. 왜 걱정을 해? 내가 누구 엄만데! 이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우리 딸 엄만데. 그러니까 당연히 엄마도 운이 좋겠지, 안 그래? 그 대목에서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들며 피식하고 웃는다. 정말이야. 옛날에 J이모 따라서 여수까지 내려가서 운수를 보고 왔는데 넌 정말 운이 좋은 애래. 그러니까 엄마도 운 좋은 엄마이지 않겠어? 엄마를 믿어. 너의 운도 믿고. 그리고 엄마랑 있을 때는 막 울어도 돼. 혼자 있을 때도 울고. 그럼 훨씬 마음이 편해질 거야. 그러자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수술을 받은 날은 오후에 통화만 했고, 수술 다음날 아침엔 학교도 가기 전에 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오후에 병원 가도 돼?"
"그럼, 당근!"
택시를 타고 오겠다는 아이에게 우반 지하철과 트람을 타고 걸어오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오는 길에 프랑스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 한 잔과 샌드위치 하나도 사 오라고 일렀다. 아이는 물어물어 찾아와서 숙제를 하고 해가 질 때쯤 돌아갔다.택시비를 용돈으로 주자 배시시 웃었다. 좋아서. 현금 앞에 약해지는 건 우리 모두 똑같다. 애나 어른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돌아갈 때는 누워서도 씩씩한 엄마를 촉촉한 눈길로 오래 보다가 돌아섰다. 아, 정말! 이 아이들을 두고 엄마들은 맘 놓고 편히 아플 수도 없구나. 아이가 가는 길에 스님이 남기고 가신 금강경을 펼친다. 오늘은 수보리의 마음이 내 마음. 이 험한 세상을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자꾸만 묻고 싶어지는 날.
아이가 달아주고 간 초록이.
세존이시여..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생사윤회의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진리의 삶을 살고자 마음을 낸 선남자 선여인(보리심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삶의 여정 중에 일어나는 온갖 상념과 두려움 그리고 수시로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 등은 어떤 방법으로 다스려야 합니까?
수보리여..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도하여 모든 번뇌가 없는 완전한 무여열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하더라도, 실제로는 제도되어 열반에 든 중생이 한 사람도 없으며, 마음속에도 중생을 제도했다는 집착이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생전 스님이 말씀하셨네.
중생이란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말한다. 망상이 일어나면 중생이요 망상이 없으면 중생도 없다. 망상이란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다만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중생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다. 본래 없는 것이라면 따로 없애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중생, 부처, 번뇌, 열반, 설법, 제도, 깨달음 등등의 말들은 모두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망상이 중생이 앓고 있는 병이라면, 설법은 부처님의 치료약이다. 병이 완치되어 본래 병들기 전의 자기로 돌아오면 의사도 약도 필요가 없다. 이 사람에게 무슨 앓고 있는 중생이 있으며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약이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한량없는 중생을 다 제도했지만 실제로 제도한 중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한 것이다..
저 촘촘한 그물망을 뚫고 생생하게 살아오는 석양빛처럼 저 촘촘한 고해의 바다를 헤치고 우리는 현재를 살고 또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