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시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by 뮌헨의 마리
수술한 지 이틀째인 수요일. 먹고 힘내라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 온 수민 엄마의 푸른 음식 가방. 저 안에 든 것을 먹고 힘 내서 복도를 걸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한국의 친정 엄마와 독일의 두 시어머니. 세 분 중 유일하게 이번 허리 수술에 대해 말하지 못한 사람은 우리 엄마다. 엄마도 오랫동안 무릎과 허리가 안 좋으시다. 그런 허리와 무릎으로 올해 팔순을 넘기셨다. 올초에는 빙판길에 넘어지셔서 갈비뼈에 금이 가고 몇 달을 고생하셨는데 올여름에 찾아뵈니 많이 여위셨다. 언니가 엄마께만 알리지 않았다고 했을 때 나도 안심했다. 아시면 뭐 하나. 괜히 마음만 아프시게.


독일의 두 시어머니께는 다 말씀드렸다. 이게 독일 문화랄까 풍토다. 굿 뉴스든 배드 뉴스든 모든 걸 다 밝힌다. 하나에서 열까지.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 심지어 매일 브리핑 수준의 보고까지 한다. 그것도 자세하게. 뭐 괜찮습니다. 다 좋아지고 있어요. 두루뭉술, 이런 건 안 통한다. 이쪽에서 설명이 부실하다 싶으면 디테일한 질문이 어온다. 피하려야 피할 도리가 없다. 이쯤 되면 무방비로 쪽의 패를 다 내보이는 게 최고의 책이자 도리겠다. 론은 일 저녁 두 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있다.


수술 전에는 내가 직접 연락을 안 드렸다. 설명도 긴데 질문과 답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남편에게 떠넘겼다. 내 수술 소식에 힐더가드 어머니가 먼저 왓츠앱을 보내셨다. 너 얘기 듣고 깜짝 놀랐다, 뭐 그런 말씀.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신다는. 나도 재빨리 왓츠앱으로 답다. 죄송하다고, 실은 나도 이렇게 수술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고. 수술 잘 받고 좋은 소식 전해드리겠다, 로 문장을 맺었다. 카타리나 어머니와는 직접 통화를 했다. 시누이가 어머니 댁에서 전화를 했기에. 카타리나 어머니는 말씀을 돌려서 하시지 못한다. 독일식 화법이자 어머니의 장점이다.


"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지? 살 수 있는 데까진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너도 나도.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것과는 하등 상관없이 말이다."


듣고 있는데 굉장히 철학적인 말씀이다 싶었다. 최근에 나눈 어머니와의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할까. 철학과도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우리는 누구든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든 좋든 어떤 이유든. 악착 같이. 어쩌면 내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께 드리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 말씀에 귀가 번쩍 뜨였나 보다.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어머니. 저 용감하잖아요. 이 정도 수술로 물러서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자동으로 튀어나올 답안 늘 주머니 안에 준비되어 있었.



수술한 지 이틀째 병문안을 오신 S언니가 손수 그리신 그림엽서.



내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매일 아침 군단을 이끌고 나타나신다. 정확히 아침 7시 30분. 내가 아침 식사를 받고 딱딱한 뮤슬리에 플레인 요구르트나 오늘처럼 우유 한 잔을 부어놓고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릴 즈음에. 디션은 떠냐. 오늘은 피주머니를 떼고 그다음에는 소변줄을 뽑기로 하자. 입원실에는 얼마나 더 있을지, 이후에는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을지는 암센터와 계속 논의 중이라 했다. 일찍 집으로 퇴원하는 것에는 내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남편이 이번주와 다음 주 계속 출장 계획이 있어서다. 나로서는 병원 입원이 가장 좋은 경우의 수다. 수술 담당 의사가 퇴장하시고 사수쯤 되어 보이는 의사분이 두어 명과 재등장. 내게 위로를 건네며 악수를 청한다. 뭔진 잘 모르겠는데 약간의 인류애 같은 게 느껴 건 착각일까.


물리치료사 수술 다음날에 왔다. 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옆으로 누워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리고 상체를 일으키고 앉기를 연습했다. 수술한 날은 허리 뒤쪽에 뻣뻣한 판자를 대놓은 기분이었다. 반듯하게 누워서도 허리 아래에 그런 이물감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느낌이 조금 덜했다. 내친김에 물리치료사 손을 잡고 침대에서 일어서기도 했다. 일어선 김에 몇 발 내디뎌보 해서 또 시키는 대로 하고. 그리고는 온 만큼 다시 뒤로 물러나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올리고 눕는 과정을 반대로 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는 동작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어떻게든 살려면 이것이 중요하다. 한 발씩 옮기 앉고 일어서고 눕기. 그것을 혼자잘하기.


수술 후 둘째 날에 기다리던 물리 치료사는 오후에 왔다. 보조기를 끌고. 벌써 걷나? 살짝 움츠러드는 마음. 차분한 30대 여성 물리 치료사는 어제보다는 한 걸음 더, 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단호함이 나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오른발을 뗄 때는 괜찮았는데 왼발을 떼려니 허리 뒤편이 삐걱거리는 기분. 그녀와 병실 문을 열고 나가 복도를 한 바퀴 걷고 돌아왔다. 마침 아이도 와 있어서 아이에게 엄마의 강인함을 한 차례 보인 것 같아 흐뭇했다. 병문안을 와 주신 분들도 있다. 수민 엄마. 미역국에 호박죽에 잡곡밥에 불고기에 멸치볶음, 야채 전, 숙주나물, 양파 절임, 신선한 야채 모둠과 과일까지. 수민 엄마가 아팠다면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참느라 애먹었다. 알리시아 먹을 것까지 따로 준비해 오시고. 그 마음에 힘입어 오늘 복도를 걸었다. 오른쪽 출입구로 한 바퀴를 돌 걸 왼쪽까지 가서 한 바퀴를 더 돌고 병실로 돌아왔다. 지켜보던 수민 엄마와 아이가 박수를 쳐주었다. 또 다른 두 분 언니도 계시다. 내가 좋아하는 귤과 오렌지와 감을 사들고 오신 언니들. S언니가 직접 그리고 만드셨다는 수제 엽서는 예술적!


갑자기 생각난 건데, 빨리 회복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11월에 기다리던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뮌헨의 임윤찬 공연. 수민 엄마와도 같이 가고, 레아마리 엄마와도 같이 갈 계획이다. 9월의 조성진 공연 때는 레아마리 엄마와 갔었는데, 허리 통증이 막 시작되던 때라 오래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공연에 집중을 못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나아서 즐겁게 볼 수 있겠지? 11월 공연에 가서도 인증샷을 남겨야지. 수술 전처럼 밝은 모습으로!(사진은 구독자 suni님의 요청에 응답한 것임).



2023.9.21 조성진 공연. 사진은 레아마리 엄마가 찍음. 난 통증 때문에 사진 못 찍음. 한국 다녀온 직후라 표정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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