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오니 남는 게 시간이라

수민 엄마의 음식을 먹고 프루스트를 읽었다

by 뮌헨의 마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소돔과 고모라>.



어제는 종일 비몽사몽이었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자서. S언니가 병원에서 주로 뭐 하냐고 물으시길래 언니를 보내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병원에 온 지 6일. 난 뭘 했지? 엉덩이 통증은 무통으로 잘 넘겼고, 허리 수술로 척추뼈 사이에 전이된 종양도 제거했고, 브런치 글도 세 편이나 올렸다. 간밤엔 잠도 잘 잤고,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도 다녀오고.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 혼자 다녀니 30분이 걸렸다. 아침에는 밥을 먹기 전에 큰맘 먹고 다시 한번 화장실 미션에 도전했다. 수술 이후 사흘 동안 소변줄을 꽂고 있었기에 소변은 그렇다 치고 통이 막혀버리면 곤란하니까. 금 어려움은 있었지만 잘 해결했다. 볼 일을 잘 보게 오늘 하루는 따듯한 차를 많이 마시고 귤도 자주 먹을 생각이다. 섬유질이 많으니 도움이 되겠지? 수민 엄마가 놓고 간 한국 음식도 있고.


아침빵을 조금 먹고 병실 안 창가를 걸었다. 일명 방구석 산책. 앉고 서기가 한결 수월해져서 매시간 자리에서 일어나 10분씩 걸을 생각이다. 표는 녁 8시까지 10회 정도. 그럼 잠도 잘 수 있겠지? 수술 후 소변줄만 빼면 그다음은 본인 하기 나름이란 걸 몇 번의 수술을 통해 배웠다. 오늘 하루가 꽤나 알찰 것 같은 예감. 보니 1시간이 이렇게 긴 지 몰랐다. 제는 수면 부족으로 글의 마무리도 흐지부지 끝내고 았기에 다시 읽어보고 손을 보았다. 글과 사진이 맥락이 닿아야 하데. 충분한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공연 사진에 본인 사진까지 올려놓고 끝이라니! 다행히 간밤에는 잠을 충분히 자서 정신이 명료하다. 잠이 보약이란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나처럼 회복기 환자에겐. 생각해 보니 애가 병원에 오던 날 카푸치노 한 잔을 사 오라 해서 오후 늦게 마신 게 화근이었 듯.



병실 깊숙히 들어오는 햇살. 가을의 과일은 감. 화장실 문제가 생길까봐 덤비지는 못하고 감상만 하고 있다.



오후에는 물리 치료사와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녀가 오기 전부터 나는 혼자 병실 안을 걷고 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들어올 때부터 좀 놀라시던 물리 치료사님. 내가 단기 목표는 제법 잘하는 타입이라. 나를 위해 이틀 동안 수고해 주셨는데 이 정도는 보답해야지. 삘 받으신 우리 물리 치료사님이 내일은 복도 계단으로 진출하자고 하신다. 걷기의 마지막은 계단 오르기인 모양이다. 그녀로부터 허리가 좀 나은 후에 할 수 있는 등 근육 강화 스트레칭도 세 가지 배웠다. 지금은 절대 하면 안 고. 허리가 나으려면 열흘에서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방사선과도 다녀왔다. 날 우리 병실을 다녀가신 암센터 담당의 마리오글루 샘께 들은 것처럼 허리가 낫는 대로 방사선 치료 필요하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나는 방사선 치료가 주저되긴 하. 올봄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부터 위가 안 좋아져서 소화력도 많이 떨어졌고 몇 번 체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음식을 많이 조심한 것도 혹시 체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다녀온 후 9월 마지막 날에 크게 체해서 며칠 안 고생을 했다. 병원 오기 전까지 통증에 체기까지 해서 잘 먹지 못했. 입원하던 날 니 3kg나 빠졌더라는. 다행히 병원에 온 후로 매끼를 열심히 챙겨먹고 수민 엄마가 만들어준 미역국과 음식지 먹었더니 1주일 만에 몸무게가 정상이 었다.



병원에서 받는 미역국과 밥은 눈물이다. 호박색처럼 고운 수민 엄마의 마음.



방사선과에는 처음 보는 남자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었다. 내 진료 기록을 열심히 들여다 보시던 그분이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 태도에 왠지 신뢰가 갔다.


"프라우 오, 저는 프라우 오의 이번 방사선 치료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죠, 선생님?"


"리스크가 너무 커요."


"무슨 리스크요?"


"마비요. 프라우 오는 저희 방사선과에서 두 번이나 방사선 치료를 하셨어요. 그것도 고용량으로요. 지금 다시 방사선 치료를 하는 건 무 빨라요. 본인에게 좋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비의 위험이 커요."


에공, 마비라니(다들 너무 놀라지 마시길요). 마비가 아니라도 방사선 치료가 주저됐는데. 병실로 돌아서 남편과 통화를 했다. 남편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냐마는 일단은 이 난제는 의사들에게 맡겨놓고 나는 쉬기로 다. 방사선과에 다녀와서는 복도로 나가 다시 걷고 돌아왔다. 걷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내일은 당연히 더 낫겠지. 병원 밥을 밀쳐 두고 저녁 식사로 택한 건 수민 엄마의 밥과 미역국. 먹자마자 금방 기운이 살아났다. 그래, 기운을 내는 거다. 방사선 치료가 안 되면 다른 거라도 있겠지. 없으면 찾으면 되고. 맨발 걷기도 고. 금 추우려나. 그게 뭐 대수인가. 부작용 없이 운동도 하고 치료 효과도 본다고 생각하면 좋잖나. 희망을 잃지 말자. 어떠한 경우에도. 희망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어니까!



2023.10.12(목) 오늘 아침 발코니로 걸어나가 직접 찍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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