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도망간다'는 레시피를 들었다

알로에, 강황, 생강 그리고 꿀

by 뮌헨의 마리
이어리스가 병문안 때 들고 온 뉴트로지나 보습 크림.



나와 함께 항암을 했던 70대 중반 독일 할머니 이어리스가 병원에 다녀갔다. 뉴트로지나 Neutrogena 보습 크림을 사들고. 이 크림이 노르웨이 제품이란 것도 이번에 알았다. 자나 깨나 내 다리 부종을 염려해 주시는 이어리스의 마음이 크림 안에 뿍 담겨있었다. 성의를 생각해서 저녁다 팔과 다리에 바르고 있다. 꽤 부드다. 이어리스는 성실해서 매일 저녁 내가 일러준 대로 부종이 있는 다리에 마사지하듯 크림을 바르고 잔다. 예전에 부종 테라피를 받을 때 물리 치료사에게 들은 걸 내가 알려준 대로. 정작 나는 안 다. 저녁만 되면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서.


이번에는 원에서 물리 치료사게 호흡법을 웠다. 간단하다. 가슴으로 한 번 쉬고 양손을 배 위에 얹은 뒤 복식 호흡을 하라 것. 누구에게나 좋다며. 다만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쉴 것. 만나는 사람마다 배우는 게 있다. 특히 이런 몸 전문가들에겐. 이란 신기하다. 허리 수술을 하고 사흘 만에 일어나 걷고 화장실을 가는 나 자신을 보며 놀랄 때가 있다. 뭐냐, 몸 너는? 한창 때도 아니고 오십 중반의 서히 낡아가는 몸이 거뜬하게 수술을 이겨내고 곧바로 일어서는 게 신방통다(의지력이라고 우겨보고 싶은 기분도 강하게 다).


더 신기한 건 이런 비상사태 때 몸의 반응이다. 양치만 하고 세수는 하는 둥 마는 둥 하지만 그럭저럭 지낸다. 더 놀라운 건 머리다. 병원 오는 날 아침에 감았으니 1주일 째인데도 기름이 끼지도 가렵지도 않고 버틸 만하다. 이상하다. 집에 있을 때는 길어야 사흘에 한 번은 감아야 하는데. 틀에 한번 감다가 사흘로 늘린 건 아이의 충고 때문이었다. 아이가 사흘에 한 번씩 감는 게 더 낫다고 해서. 이유는 모르겠다. 요즘 전반적으로 뷰티에 관심이 많을 나이라서 뷰티 정보를 솔솔 하게는다. 대부분 들을 때뿐이지만. 뷰티의 다른 이름은 부지런함인 듯다. 샤워 대신 아침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따듯한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이번 주말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한 번 감아볼 생각이다.



등과 허리 피부 알러지에 발라준 비판텐 크림. 계속 바르라며 간호사에게 한 통을 선물로 받았다.



처음 며칠은 똑바로 누워만 있었더니 등이 불편했다. 옆으로 눕고 싶어도 수술 직후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을 지냈더니 등과 허리 쪽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 땀이 나서가 아니라 허리와 등에 길게 붙인 밴드가 피부와 닿는 부분에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다. 긁지 않도록 조심했다. 잘못하면 피부가 벗겨져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디기 힘들 땐 을 뒤로 돌려 위로 한두 번 문지르는 걸로 대신했다. 계속 누워있어야 하는데 피부 트러블이 심해지면 곤란하다. 다행히 지금은 돌아누울 수도 있어서 등 쪽에 공기가 통해서인지 증상이 한결 낫다. 착해 보이는 간호사에게 등에 크림을 발라달라고 부탁야겠다( 이런 탁은 사람 봐가며 해야 한다. 번이나 부탁했는데 나중에 오겠다고 하고는 둘 다 안 왔다. 세 번째 호사가 발라준 비판텐 보디 크림 비판톨 Bepanthol. 아이를 키우는 집은 하나씩 있는 순한 크림이다.)


며칠 전 병원 간호사한테서 우연히 '암도 도망간다'는 레시피를 들었다. 들은 대로 소개하자면 알로에, 강황, 생강 그리고 꿀. 일명 꿀 조합. 알로에는 먹는 알로에 베라, 꿀은 진짜 꿀이어야 한다. 여기다 추가할 수 있는 건 사프란. 뭔가 좋은 것만 모아놓은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분이 추천한 건 반드시 샷 shot으로 먹으라는 것. 즉 마시라는 것이다. 음료처럼 물에 타서. 유는 모르겠고, 이런 종류의 마시는 건강 음료가 꽤 있는 걸로 봐서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치매를 염려하시는 힐더가드 어머니도 댁에서 직접 생강과 강황과 레몬을 넣어 만들어 시는 걸 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육식을 끊으시고 거의 채식주의자로 변모하셨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치매로 의심했던 초기 증상들이 많이 완화되셨다. 물론 깜빡깜빡하시는 건 여전하시지만.


알로에 최근 우리 아이가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다 내게 물어본 것 중 하나다. 진짜 알로에를 키우고 싶다는 것. 아하, 과민한 피부에도 좋을 것 같으니까 키우면서 피부에도 바르려는 게 아닐까. 수요일까지 매일 병원에 와서 눈물 바람을 하던 아이는 목요일부터는 안 오고 있다. 수요일에 자기 눈으로 엄마가 걷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던 걸까. 이가 안 오는 날은 저녁에 통화만 하는데 목소리가 힘차고 밝다. 원래 그런 것이다. 수술도 옆에서 직접 보면 괜찮은데 눈에서 안 보이면 더 걱정되는 법. 아이는 나름 한숨 돌린 이다. 수술해도 엄마가 안 죽는구나. 우리 엄마 용감한 거 맞는구나 하면서. 나도 분발해서 아이가 오지 않는 동안 병원 복도를 자주 걸었고, 물리 치료사와 복도 계단 오르내리기도 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아래층이 암센터였다. 병실 발코니로 나가서 아래를 바라보자 암센터 휴게실 발코니에 꽃들이 만발했다.



내가 있는 병실 아래층 발코니는 암센터 휴게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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