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즐거움은 또 어디서
우리 마음속에서
일요일 나의 저녁은 수민 엄마가 두고 간 여덟 가지 과일과 달콤 쌉싸름한 생강차.
수술 후 등허리에 길쭉하게 밴드를 붙이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맨 처음 병원 복도를 걸을 때는 누가 내 등허리에 한 번 붙으면 좀처럼 뜯어지지 않는 끈끈한 본드를 가죽 장갑에 바르고 두 손을 내 허리에 대고 뒤에서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왜 아시잖나. 스파이더맨의 끈끈이 손과 거미줄. 쇠심줄처럼 단단해서 누구도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며칠 동안 복도를 걸었더니 그 느낌은 조금 덜해졌지만, 오늘은 팔도 한 번 저어보자 싶어서 걸을 때 양팔을 몸에 딱 붙이고 앞뒤로 흔들며 걸어보았다. 그랬더니 밴드를 붙인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등 근육이 말라가는 논바닥이나 거북이 등처럼 삐걱대면서 조각조각들로 나뉘어 물결이나 파도처럼 출렁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등 근육이 강해지고 있다는 강한 확신 때문에.
무통 주사를 안 맞은 지 이틀째 날에 자다가 엉덩이 쪽 깊은 곳에서 잠시 꿈틀 하는 익숙한 통증을 느낀 적이 있다. 두어 번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잠결에도 에고, 이 통증이 다시 살아나면 무통 주사를 다시 놓아달라고 해야겠네, 생각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다행히 그게 다였다. 그 엉덩이 통증은 뭐였을까. 나를 허리 수술까지 하게 만든 그 통증의 원인은. 뼈에 금이 간 게 직접적인 원인이겠지. 뼈에 금 간 건 다른 도리가 있으랴, 쉬는 게 답이다 싶어 신경을 끄고 지낸다. 일단 통증은 사라졌으니까. 그러면 두 가지가 충돌한다. 뼈에 금이 갔으니 드러눕는 게 답인데, 허리가 좋아지려면 또 움직여야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을 듣지 못했지만 병원에서 신경 쓰는 건 허리인 것 같다. 내 수술의 팩트는 척추 사이에 전이된 종양 제거였으니까.
뼈에 금이 간 건 아직까지도 기억이 없다. 최근에 넘어지거나 무거운 걸 들다가 삐끗하거나 어디에 부딪쳐서 다치거나 그런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봄쯤이었나. 뮌헨의 우리 동네 지하철 앞에서 도보로 올라오다가 턱을 못 보고 살짝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건 너무 오래전 얘기고. 7월에 우리 동네 할머니 요가 수업을 갔다가 요가 동작 대신 술래잡기 비슷한 게임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머리를 벽에 박고 방바닥에 무릎을 깬 게 가장 유력한 최근의 기억이다. 그런데 그때 뼈에 금이 갔다면 두 달이 지나서 통증이 생긴 것도 이상하다. 아무튼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내 기억으로는 알 길이 없다.
다시 수민 엄마가 들고 온 성찬. 국은 꼬리곰탕!
일요일이라 남편이랑 딸이 왔다. 일요일 저녁 출장을 가야 하는 남편은 일찍 보내고 딸은 좀 더 있어주었다. 딸이 등에 비판텐 크림도 발라주고, 머리도 감겨주었다. 바쁜 간호사들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딸의 손발이 차가워서 내 침대에 30분 정도 같이 누웠더니 딸의 손발이 금세 따뜻해졌다. 아이를 위해 병실 안 라디에이터를 켰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이었다. 아이가 전날 내가 올린 브런치 글에 라이킷을 누르더니 평소처럼 곧장 내빼지 않고 엄마 글을 읽었는지 이렇게 물었다.
"엄만 왜 글을 슬프게 써?"
"뭐가 슬픈데? 때론 슬픈 게 아름다운 거야."
"그래도 너무 슬프잖아." 그랬나? 딸에게 허세를 부리다 들킨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겐 슬프게 읽혔는지, 엄마가 새로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을 보더니 또 시비를 건다. "이번 제목도 우리 마음속에서, 라니. 너무 슬프잖아!" 아니, '마음'이 그렇게 슬픈 단어였나?
"그럼 엄마가 수술하고 병원에 누워서 막 까부는 것도 좀 그렇잖아." 나도 딴지를 걸었다. "지금 엄마 기분 같아서는 걷다가 곧 달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적으면 엄마 구독자님들이 얼마나 놀라시겠냐?" 맥락 없는 엄마의 말을 아이가 무 자르듯 단번에 잘랐다.
"오버한다, 오버해! 1주일 있으면 등산도 갈 수 있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딸아. 이런 티키타카가 딸과 주말에 비좁은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니.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수민 엄마가 통째로 들고 온 쿠헨, 잠 못 이루는 나를 위해 준비한 디카페인 커피, 색깔도 고운 채소들, 직접 담근 김치와 고소한 멸치 볶음.
오후에 다시 수민 엄마가 왔다. 수민이까지 데리고. 우리 아이도 당연히 한글학교 단짝인 수민이를 기다렸다. 나를 위해 차려준 수민 엄마의 두 번째 성찬은 꼬리곰탕. 잘 먹어야 낫는다고, 잘 먹어줘서 고맙다고, 기쁨으로 상을 차려주던 수민 엄마. 저 상에 오르지 않은 것 중 단호박죽도 있다. 식지 말라고 꼬리곰탕은 둥근 보온병에, 생강차는 긴 보온병에 넣고, 단호박죽은 식어도 괜찮아서 예쁜 병에 담겨왔다. 여덟 가지 과일은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아이 둘과 엄마 둘이 나눠먹고도 남아서 나의 일요일 저녁상이 되었다. 멜론, 오렌지, 자두, 딸기, 산딸기, 키위, 블루베리, 석류 등 여덟 가지 과일과 맵싸하면서 혀 끝에 감칠맛이 느껴지던 달콤 쌉싸름한 생강차는 또 어땠나. 그렇게 무겁게 들고 오면서 1.5l 오렌지 주스까지 들고 오다니.
갈 때는 커다란 음식 보따리를 하나 남겨두고, 그만큼 커다란 보따리를 두 개나 도로 들고 갔다. 내게 이런 사람이 있다니. 놀라고 고마울 따름이다. 내내 먹구름이 끼고 비가 흩뿌리던 주말 날씨는 수민 엄마와 수민이와 우리 아이가 떠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었다. 내가 발걸음도 가볍게 병원 복도를 10바퀴나 돌고 병실로 돌아오자 일어난 마법이었다. 혹시나 추울까봐 켜두었던 라디에이터는 껐다. 마음이 충만해지고 단번에 구들장처럼 뜨끈해져서 더 이상의 난방은 필요 없었다.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에서 온다. 즐거움은 또 어디서 오는가. 그것도 마음에서. 거기다 하나 더 넣어야겠다. 좋은 사람에게서. 이것이 암이라는 동해처럼 깊고 푸른 바다 앞에 선 내게 사나운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뛰어들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수줍게 고백하게 만들었다.
수민 엄마가 남기고 간 음식 보따리와 그녀가 떠나자 맑게 갠 일요일 늦은 오후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