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의 힘
J언니의 육개장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가 일하는 뮌헨의 한국 식품점 사장님과 J언니가 보내신 음식!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 뮌헨의 한국 식품점 사장님께서 톡을 보내셨다.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다 보내주겠다고. 전날에는 나의 동료이자 우리 가게 점심 코너 세프이신 J언니로부터 톡을 받았다. 토요일에 한글학교가 끝나면 아이를 보내라고. 먹고 싶은 음식을 싸주고 싶다시며. 그러자 맨 먼저 생각난 건 언니의 육개장. 고깃살이 연하고 부드럽고 간이 세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 나는 언니표 육개장이. 거기다 잡채며 비빔밥이며 김밥까지. 아이는 이모들이 싸주신 음식을 들고 금방 병원에 나타났다. 뮌헨 공과대 대학생인 사장님 큰 딸 하나가 차로 아이를 데려다준 것이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갈아 만든 배'를 한 통이나 들고 와서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아이와 느긋하게 밥을 먹으라며 일찍 돌아갔다.
아이와 가장 먼저 나눠먹은 건 육개장과 김밥. 둘이 그것만 먹고도 배가 따스해지고 기분 좋게 불러왔다. 그래도 잡채를 무시하긴 어렵지. 언니의 잡채는 미리 한두 시간 물에 불려서 양념에 볶기 때문에 부드럽다. 잡채까지 조금 덜어먹고 나자 아이도 나도 배가 불러서 더 이상 음식에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주말부터 기온이 떨어져 병실에 냉장고가 없어도 보관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잡채는 저녁에 다시 반을 덜어 먹었다. 오후 늦게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그 빗속에 J언니가 다녀가셨다. 내가 비빔밥을 좋아한다고 비빔밥을 한 그릇 더 들고 오셨다.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빈자리가 크다는 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하시고 퇴원 후에도 당분간 몸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떠나셨다. 언니가 가시고 식어가는 잡채를 먹는데 코 끝이 찡했다.
우리 가게 사장님 딸 하나가 들고 온 <갈아만든 배>.
아이는 나와 점심을 먹고 오래는 못 있고 갔다. 그날 아이는 파파랑 고모랑 카타리나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일어나서 걷고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복도를 걷는지 계단을 오르내리는지 말하자 엄마의 마음을 대번에 간파한 아이는 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하진 마!"
사실 그랬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지 못한다. 당연하지. 일어서고 앞으로 걸을 수는 있어도 허리를 아래로 구부리거나 옆으로 틀면 안 된다. 그런데 허리를 구부릴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이 모든 상황에 발과 발가락을 사용한다. 날씨가 추워서 환자복 대신 내 잠옷을 입을 때도 그랬다. 옷장에 넣어 둔 잠옷을 발가락으로 집어서 허벅지 근처까지 올리면 손이 닿았다. 잠옷 바지를 입을 때도 다리를 들어 올리면 되었다. 병실 바닥에 연필이나 볼펜이 떨어져도 발로 집어 올렸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아이가 왔을 때 자랑스레 말한 거지. 봤지, 엄마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아이에게는 그게 오히려 짠해 보였던 걸까.
요즘은 돌아눕기도 잘한다. 늘 한쪽으로만 돌아눕기를 했는데 드디어 다른 쪽으로도 옆으로 누울 수 있었다. 하도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서 등은 밴드 알레르기와 가려움증으로 늘 뜨거웠는데 양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면서 등의 열기도 좀 식힐 수 있었다. 무통 주사는 금요일부터 안 맞기로 했다. 진통도 없는데 무통 주사에 매 끼 진통제 알약을 먹는 게 너무 과하다 싶어서. 그리고 집으로 가면 어차피 무통은 못 맞으니 병원에 있을 때 적응 기간을 좀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프면 언제라도 다시 맞을 수 있으니까 걱정은 안 했다. 이후로 계속 무통 주사를 안 맞고 있는데 아직까지 문제는 없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오가는데 30분이 걸렸지만 지금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장족의 발전 아닌가! 복도는 10분에 왕복 7번을 왔다 갔다 한다. 사흘 전에는 5번이었다가 어제는 6번. 매일 걷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뜻. 계단은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갔다가 7층까지 오는데 5분이 걸렸다, 그제와 어제는 7층까지 못 오고 중간에서 엘리베이터로 갈아탔다. 어지러움을 가장 경계해야 해서. 모든 문제는 무리하는 데서 온다.
아이는 한글학교에서 한글날 쓴 글쓰기를 들고 왔다. 나름 아이도 엄마에게 자랑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한국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아이의 귀중한 맞춤법 실수까지도 엄마에게 웃음을 주고자 하는 '고의적 실수'가 아니냐는 썰이 등장해서 두 번의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고, 나는 열심히 치료받고 건강해지면 그만이다. 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때로 삶의 법칙이란 이토록 간단명료하다.
2023년 10.9 아이의 한글날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