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후기는 흐리지만 마음까지 흐리진 않아요

이태리 남티롤 6

by 뮌헨의 마리
돌로미티 로젠 가르텐 아래 호텔에서.



마지막 날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떠나 로젠 가르텐 산 아래 멋진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호텔 음식이란 게 먹을 게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간단한 수프라도 먹고 싶었는데 아시잖나, 호텔 메뉴. 잔뜩 멋만 들어가고 정작 중요한 맛은 빠진. 어머니는 둥근 메추리알 같은 크누들 Knödel을 시키셨는데 난 테니스 공만한 쫄깃한 감자 크누들 말고는 안 좋아해서 양배추 수프를 시킨 게 탈이었다. 양배추를 뻑뻑하게 만든 퓌레에 카레 가루를 넣었는데 상하게도 매운 무 맛이 났다. 반면 어머니는 크누들 수프를 국물까지 싹싹 비우셨다. 나도 그런 국물이 먹고 싶었던 건데. 음에는 어머니를 따라 시켜야겠다. 아이는 치즈&햄 샌드위치를, 남편은 햄과 살라미와 치즈 모둠 쟁반을 빵과 함께 먹었다.


출발 전에는 비가 내렸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흰구름이 산을 덮어 돌로미티의 로젠 가르텐은 귀퉁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탄식하며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 다음에 또 오면 되지요." 내가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번 여행은 어떠셨냐고 여쭈니 아버님과 마지막으로 온 게 5년 전이라 감개가 무량하다고 하셨다. 아주 좋았다고. 차는 출발하고 남티롤의 그림 같은 풍광들은 구름 속에 비와 안갯속에 희미해졌다.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태리를 벗어나기 직전 오스트리아 경계 에 도착했을 때였다. 남편이 차를 주유소에 주차시키더니 오른쪽 후방 타이어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왜냐고 묻자 한쪽 타이어에 자꾸 바람이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셨다. "그게 무슨 도 안 되는 소리냐! 내가 휴가 오기 직전에 윈터 타이어로 바꾼다고 폭스바겐 정비소에서 600유로나 고 갈았는데!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구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이제 어떡하냐. 차를 밀고 갈 수도 없고..." 우리는 어머니의 폭스바겐 SUV 차로 휴가를 갔다.



마지막 날 들른 호텔에서 점심.



어머니도 참.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의 유능한 아들을 운전자로 두고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신지. 거기다 당신 아들 성격은 좀 유순하나.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당황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대처하는 해결사 아들인데. 우리 남편의 장점이 그렇다. 절대로 화를 내거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해결에 집중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꼭 해낸다. 이럴 때 우리 남편을 돕는 길은 딱 하나.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 걱정도 필요 없다. 믿고 기다리면 된다. 아들과 떨어져 산 지 너무 오래라서 어머니는 아들의 진면목을 모르시나. 차가 출발하고 계속 이어지는 어머니의 질문과 불평. 남편이 몇 번이나 그만하시라, 걱정 마시라 해도 듣지 않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다혈질이시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참지 못하신다. 남편의 표현을 빌자면 머릿속 생각이 바로 입으로 나오시는 스타일. 남의 기분이나 감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게 문제다. 스무 살에 친시아버지와 결혼하셔서 20년. 마흔 살에 지금은 돌아가신 오토 아버님과 결혼하셔서 45년. 총 65년 결혼 세월 동안 두 배우자에게 사랑과 추앙만 받으신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그렇게 긴 세월을 살다 보면 차에 기름을 넣듯 언제 어디서든 사랑과 추앙이 필요하다. 이번 일 같은 건 당신에게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건 무슨 법인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대처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가진 아들과 며느리에게 어머니의 태도는 이해는 되지 견디기 쉽지는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와 뒷좌석에 앉은 채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입 다무시라 하는 건 괜찮지만 안 그래도 열받고 계신 어머니께 며느리인 내가 비슷한 뉘앙스라도 내비쳤다간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았다. 이어에 문제가 생기기 직전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실에 들렀을 때의 어머니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뒤에 있는 며느리와 아이는 돌아보시지도 않고 혼자 동전을 꺼내서 화장실로 가셨다. 나는 이러려고 했지. 50센트짜리 동전을 몇 개 챙겨서 어머니, 화장실 같이 가실래요. 그런데 그럴 여지도 주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견고하고 안전한 배우자라는 둥지를 잃은 한 여인의 황망하고 삶의 중심을 잃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주문한 어머니와 나의 수프.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00일이 지났다. 마음을 추슬러기는 너무 이르다. 어머니께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필이면 긴 겨울이 코 앞에 와 있어 걱정이다. 어머니가 평소에 생각하셨듯 아버님이 가시고 나면 학창 시절 친구가 기다리는 럭셔리한 실버타운으로 가셨어야 했는데 시누이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 지금이라도 신청하는 게 좋을 텐데 남편도 시누이도 말을 듣지 않았다. 4년만 지나면 어머니도 구십이신데. 지금 신청해도 몇 년은 걸리는데. 저렇게 혼자 외롭게 지내시다간 노인성 우울증이 올 수도 있고. 배우자와 너무 금슬이 좋으셨던 탓에 친구가 별로 없으신 게 문제다. 혼자되실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하거나 연습해 본 적이 없으셔서 이 현실이 너무 가혹하실 수 있겠다. 그래도 자주 찾아오는 아들과 딸이 있으니 찾아올 이가 아무도 없는 분들에 비하면 나으신 건데. 건 내 생각이겠고.


남편은 50km마다 타이어 바람 넣는 기계가 있는 주유소를 들렀다. 때로는 그 장비가 있고 때로는 없었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불평이 터졌다. 남편은 지쳤는지 어머니가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나는 집에 가서 두부 넣고 김치찌개 끓여서 먹을 생각 뿐이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뮌헨 시내에 들어서자 차가 막혔다. 일단 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시누이 바바라 집에 먼저 내려드리고 시누이와 따뜻한 요기라도 드시며 기다리시 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부정적인 말과 태도로부터 빨리 우리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와 아이를 집에 내려주고 짐을 옮겨주고 다시 어머니를 슈탄베르크로 모시고 가고 마지막으로 폭스바겐 정비소 차를 져다주고 집에는 늦게 S반을 타고 오겠다고 했다. 어머니를 시누이 집에 내려드리고 남편이 뒷좌석의 아이를 돌아보며 농담처럼 물었다. "넌 5일 동안 할머니를 어떻게 견뎠어?" 말에 이도 나도 동의의 뜻으로 큭큭 웃었다. 래도 휴가는 좋은 것. 이것은 시어머니를 디스 하자고 쓴 글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늙고 누구나 혼자가 된다. 지금 어머니의 모습은 그때 우리의 자화상이다. 남편을 기다리며 굵어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어떻게 늙을 것인가를 고민다. 그러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내게는 늙을 시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인데. 배 부른 소리 그만하고 우선 항암이나 신경 쓰자. 늙는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도 늦지 않다.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하고 가끔 숭고하다. 그걸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너무 숭고한 면만 쳐다보지는 말고. 그건 피곤한 일이다.



집에 와서 끓여 먹은 내 영혼의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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