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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25. 2024

세 분이 수술실로 따라 들어왔다

두 분의 부처님과 스님 한 분이

수술날 저녁 남편과 아이가 가져온 도시락.


세 번째  수술을 하는 아침이었다. 그날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 총 4시간 반 병실과 수술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수술 예약은 아침 09:30. 12시까지 병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 온갖 진통제와 주사와 링거에도 불구하고 수술 전날엔 다리가 마비되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고 다시 눕는 데도 엄청난 통증이 있었고 긴 시간이 걸렸고 죽도록 아팠다. 가족들이 그모습을 보지 않아 다이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수술 당일날 아침에도 화장실 미션 수행해야 안심하고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8시에 무사히 화장실을 다녀왔고, 혼자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술 준비 끝!


병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해가 나왔다. 그날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기쁜 마음으로 염불을 하며 12시에 수술실로 내려갔다. 수술 준비를 끝내고도 오래 기다려야 했다. 수술실로 들어간 시간은 오후 2시. 그사이 나는 수술실에 나와 같이 들어가주실 세 분을 마음으로 영접했다. 세 분은 이 분들이시다. 밝은 빛으로 수술실과 수술 부위를 밝혀주실 아미타부처님. 내 수술을 집도할 의사 샘께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빌려주실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감로수 병을 들고 옆에손을 잡아주실 돌아가신 나의 스승 각문스님. 막강한 빽을 안고 받는 그런 수술이라면, 그런 세 분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싶었다. 나는 평화로웠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각문스님..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과 각문스님께 귀의합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잠이 깬 것은 오후 5시였다. 눈을 뜨자마자 느낌이 좋았다. 양발과 다리를 움직이자 통증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유후! 그사이 수술한 의사가 와서 대화도 나눈 것 같은데 너무 흥분해서 고맙다는 말만 몇 번 되풀이하고 정작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회복실에는 저녁 8시까지 있어야 했다. 통증을 계속 조절해야 했기 때문. 마침내 통증 수위가 3 정도로 내려오고 난 후 입원실로 돌아갔다. 아이와 남편이 기다리는 병실로. 도시락을 싸들고 나를 기다리는 병실로. 두 사람을 보자마자 내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렇게 외쳤지 아마. Ich habe geschafft!!!(나, 해냈어! 남편에게) 알리시아, 엄마는 해냈어!!!!(딸에게) Frau Rothmeier, ich habe geschafft!!!(프라우 로트마이어, 저 해냈어요! 병실 룸메 할머니께).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흥분이 가라앉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자정에 잠을 깼다. 룸메 할머니가 내게까지 들릴 정도로 볼륨을 올려 TV를 시청하고 계셨는데 가만히 있으면 밤새 TV를 켜고 계실 것 같았다. 수술한 날 아닌가. 미안하지만 잠을 자야겠으니 TV를 꺼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날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갑자기 목이 아파 고개를 들 수도 돌릴 수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깜빡 잠이 들기 전에도 목이 뻣뻣하고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하고 그냥 잤다. 베개를 베고 있어도, 베개를 빼도 목이 아팠다. 누워 있는데도 마치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무거운 추까지 달고. 밤새 목을 문지르고 마사지를 해도 소용이 없자 겁 났다. 겨우 수술로 다리 통증 끝났는데 다 목이라고? 수술 후 그때까지도 가스가 안 나온 것도 기억이 나서 복부에 찬 가스를 빼려고 노력한 결과 임무 완수. (전에는 두 번 다 회복실에 있을 때 가스가 나왔음.)


목 때문에 놀라고 노심초사한 탓인지 새벽 무렵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의사에게 목 통증을 보고하고 물리 치료사가 왔을 때 얘기하니 내 목을 만져보고 살펴보던 물리 치료사가 수술 때 한쪽으로 목을 돌리고 있어서 근육통이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녀가 목 마사지를 살살해주니 훨씬 나았다. 당연히 안심도 되고. 나는 수술 직후부터 목욜 오후까지 48시간 동안 등을 대고 꼼짝않고 누워있어야 는데 물리 치료사 말이 그게 나무 막대기처럼 등만 대고 가만히 있으란 뜻은 아니란다. 그럼 뭐지? 자기가 시키는 동작들을 계속하란다. 오키! 그게 뭐 어렵다고. 그녀가 남기고 간 숙제는 다음과 같은 가지였다.

1. 한쪽 다리 번갈아가며 무릎을 세웠다 내리기

2.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온몸과 목을 바닥으로 눌렀다가 힘 기 3. 폐 운동을 위한 공 불기.




딸과 남편이 준비해 온 도시락 수술 다음날부터 조금씩 먹었다. 수술 다음날 점심 때 귤과 감. 저녁에 밥과 반찬 조금. 수술 다다음날 아침에 오이와 방울토마토. 술 후 병실에서 먹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만큼 반가운 도 없다. 비타민 C를 먹는 기분이랄까. 술 후 병원 음식은 거의 못 먹었다. 수술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했기에 극도로 조심해야 해서. 배탈이 거나 체하지 않도록 말이다. 아침은 뮤슬리 소량을 우유에 오래 적셔서 부드럽게 먹었다. 빵과 치즈는 손도 대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만난 아이가 내게 말했. 아이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서 엄마 수술하는 동안 걱정이 았나 싶어서 물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수술 직전에 올린 브런치 글을 왜 그렇게 썼, 읽는 사람 무섭게! 오잉, 엄마 글을 읽었단 말이야? 언제? 방금 파파랑 병원에 오는 차 안에서 읽었단다. 세상에! 내 딸은 엄마 글을 안 읽는 줄 알고 그렇게나 상세하게 썼지, 엄마 마음을. 사실 엄마도 엄청 무서웠거든. 다시는 집에 못 돌아오면 어쩌지 하고.. 이제 겨우 요리도 좀 하게 됐는데 그럴 기회가 안 오면 어쩌지 하고.. 그래서 엄마 걱정 많이 했나 보네? 놀렸더니 수술할 때는 걱정 안 했는데 내 글을 읽고 겁이 났다고. 제목과 사진만 스캔하고 라이킷만 누르고 내빼는 줄 알았는데. 글은 커서 읽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무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내가 사춘기 딸과는 매일밤 '따랑해, 따랑해'를 날리는 이 기분 아실런지. (그래도 엄마 핑계 대고 라틴어 시험 망치기는 없기. 엄마도 해냈으니 너도 해내길 강력히 바람. 그런데 이 글은 절대로 안 읽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냉장고에 아껴두었던 수민이 엄마표 죽 2개를 등만 세 번째 수술 후 병원에서 먹게 될 줄이야!



두 번째 수술 후 수민이 엄마가 만들어 준 예쁜 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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