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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23. 2024

등에만 세 번째 수술을 하기로 했다

다시 등 수술은 안 하려 했지만

토요일 밤 응급실 와서 일요일 아침에 먹은 빵. 언제 먹어도 바삭하고 맛있다.


다시 허리 통증이 생긴 건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증상이 두 번째 수술 때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고 진땀이 쫙 흘렀다. 불안이 회오리바람처럼 내 영혼을 강타했다고 해야 할까. 그로부터 3박 4일을 울었.  가발 샀다고 좋아한 지 만 하루가 지났을 뿐데. 아이 얼굴만 봐도 아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제 만 열세 살. 2월이면 열네 살이 되는 우리 딸. 엄마 없이 살기엔 너무 어린데. 아직 사춘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을 봐도 그랬다. 자꾸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변변찮은 와이프가 아프기까지 한 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지난주 월요일엔 병원에 CT를 찍다. CT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암센터 여의사의 말에 겁부터 났다. 그럼 이 허리 통증은 뭐란 말인가? MRT(한국의 MRI) 예약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리는 계속 아프고 밤이 되자 통증은 더 커졌다. 두 번 수술 때와 다른  하나도 없었다. 그날밤 한숨도 못 잤다. 무섭고 걱정 돼서. 이른 새벽 남편이 깨길래 그동안 남편에게 미안하게 생각해 왔던 몇 가지에 대해 사과했다. 남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떻게 아는가. 내가 그 미안함을 사과시간도 없이 가버릴지. 미안할 게 아있지 않면 마지막 순간에는 아낌없이 사랑의 말만 고 떠날 수 잖나. 새해가 되기 전에 2023년도 연말에 꼭 러려는데 용기안 났다. 자기 너무 금없 싶기도 해서.


다시 허리가 아프니 겁이 나서 이러다 다시 병원에서 수술이라도 하는 거 아닐까, 그러다 못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용기를 냈다. 묵묵히 듣고 오히려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 주는 남편을 붙잡고 새벽부터 눈물 바람을 하고 나니 마음이 가볍고 후련했다. 다음날 요일. 날이 밝자 남편이 무조건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때까지 내 허리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MRT 예약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무조건 병원에 가서 순서를 기다리자고. 입원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4시간을 기다린 후 MRT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다시 수액이 보인다는 것. 그게 신경을 눌러 허리가 아픈 거였다. 그놈의 수액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또 하루가 지 수요일. MRT 결과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첫 수술한 의사 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는  번째 수술한 지 5주 만에 다시 수술을 강행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몸이 AI가 아니고서야 견뎌낼 것 같지가 않았다. 의사의 제안은 이랬다. 일단 주사로 수액을 빼내자고. 근본 치료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몸이 회복할 시간을 버는 게 낫다고. 내 생각도 그랬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주사기로 60ml를 빼냈다. 의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을 거라 말했지만 얼마나 아팠는지 내 손을 잡아주는 남편 손을 너무 세게 잡았던 모양다. 기억나지 않는 내 손톱 하나가 남편 손가락 하나를 파고들어 마비가 올 뻔했다. 런데 그날 밤 익숙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주사기로 수액을 빼낸 다음날인 목요일. 술한 의사와 암센터 여의사와 나와 남편이 다시 병원에서 만났다. 그토록 빨리 찾아온 통증에 대해 놀라지 않 사람 없었다. 사는 며칠 만에 다시 증상이 올 수도 있으니 너무 낙관하지는 말자고 처음부터 말했지만 어떻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똑같은 통증이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수술 말고는 다른 대안 없단 말인. 불안이 토네이도 급으로 수직 상승했다. 사는 일단 집에서 진통제를 먹으며 지켜보자고 했다. 단 마비 증세가 거나 하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달려오라는 말과 함께. 암센터 쪽은 예정대로 다음 주부터 2차 항암을 재개하자고 했다. 에 오자 하루 하루 통증이 커졌다. 진통제를 몇 알씩 먹어도 효과가 없자 토요일 밤에 다시 응급실로 왔다. 허벅지 쪽으로 통증 마비 증세가 기 때문이다.


토요일 밤 급실을 통해 바로 입원했다. 주사로 진통제를 맞자 마법처럼 통증이 줄었다. 링거로도 맞다. 아이도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병원에 가길 원했다. 원실은 머니 두 분이 계신 3인실로 배정받는데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안 주무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진통이 줄어들자 살 것 같았다. 남편이 떠나자 할머니들 취침 모드. 이상하게 그날은 나도 잠을 잘 잤다. 양쪽에 계신 할머니들도 밤새 푹 주무셨고, 누구 하나 불편한 소음을 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항상 잠을 잘 못 잤는데 그날은 특이했다. 일요일엔 찾아오는 의사가 없었다. 진통제를 맞 할머니들과 소통하며 하루를 지냈다. 남편이 밥과 국과 반찬을 가져다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병원에 오자 위의 불편함도 싹 사라졌다. 도 안 먹었는데. 기하기도 하지.




 한 주가 시작1월의 넷째 주 월요일이 되었다. 통증이 생긴 지 열흘, 주사기로 등 수술 부위의 수액을 빼낸 지 5일째, 응급실에 입원한 지 이틀째였다. 전에는 초음파를 찍었다. 초음파실로 갈 때는 휠체어로 이동했다. 검사가 끝나고 병상에서 내려올 때 엄청난 통증이 있었다. 3년 동안 나를 봐왔던 초음파실 담당 여의사가 그동안의 경과를 듣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후가 되자 첫 수술한 의사가 왔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 다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마저 삼세 번인가. 두 번째 수술 후 피주머니를 너무 일찍 뗀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의사에게 신신당부했다. 이번에 수술이 끝나면 피주머니를 조금 오래 달고 끝까지 지켜보자고. 의사가 자기가 책임지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의사가 다시 세 번째 수술을 권한 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선 수액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파악해야 했고, 다리로 마비가 오기 전에 손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은 봤지만 엉덩이 감각도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그럼 수술은 언제? 묻기가 바쁘게 의사가 대답했다. 내일 아침이나 아니면 오늘 밤이나. 에구머니나, 양손으로 입을 틀어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오늘 밤은 아니지. 나도 마음의 준비란 게 있어야 하는데. 화요일 아침으로 정했다. 원래는 2차 항암을 하기로 한 날이다. 인생이란 게 이렇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직 구정이 오지 않았으니 마지막 액땜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 번째 수술한 지는 6주 차 되었다.

 

응급실에 입원한 나를 걱정하는 몇몇 분들이 전화 통화와 방문 의사를 타진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정신이 있어야 말이지. 근심과 걱정과 불안이 한 덩어리로 내 마음을 휘저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사람의 위로도 속 편하게 들을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 이어지는 질문들에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나 길을 잃고 헤매는 중데. 의사에게 수술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래도 밥 챙겨 먹어야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집에 해놓고 온 밥과 국과 반찬들을 가져다 달라고 다. 언제 입원할지 몰라서 집에 있는 동안 시금치나물, 어묵볶음, 멸치볶음, 고등어김치찜, 된장국을 해두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동안 요리 실력이 좀 늘었다. 매일 먹방 대신 요리 유튜브를 많이 봤기 때 같다.) 병원에 와 집밥 먹은 덕분일까. 집밥이 내게 힘을 주 오전에 초음파실 검사대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완전하고, 건강하고, 완벽하다..


그리고 오후에 의사가 와서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순간 눈물은 났지만 내 속에서는 강건한 결심도 생겼다. 그래, 해보자! '도 아니면 모'가 아니라 '윷 아니면 모'라 생각하고. 어떤 게 나와도 대박일 테니까. 의사는 자신의 몫을 잘 해낼 것이다. 나는 내가 할 몫만 생각하면 된다. 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잘 견뎌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늦은 오후 저녁밥을 들고 병원에 온 남편과 아이에게도 잘 해낼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한국인은 밥심이지, 하며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오른쪽 창가 할머니가 물었다. 내일 수술 걱정 안 되냐고. 몸도 마음도 놀랄 만큼 차분해진 내가 대답했다. 아뇨, 걱정 안 돼요. 저는 제가 잘 버텨줄 거라 믿거든요. 그리고 저는 충분히 강해요.. 


근심 걱정은 사절, 기도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병원에 챙겨온 인형들은 예전에 아이가 준 선물. 현실 모녀? 현실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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