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병동에서는진통제를 하루 6번 규칙적으로 먹는다. 이것이 통증을 약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퇴원 후에도 규칙적으로 약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이전에는 그것을 잘 몰라서 통증이 있을 때만 먹었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된 진통제 약 복용법이었다. 절대로 약을 먹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통증이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이것을 나는 세 번째 수술 후 완화병동에서 배웠다. 통증은 주로 밤에 오는데 최근에는 견딜만했고, 한 번 온 통증이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집으로 퇴원해서도 계속 그렇기를 바란다.
1) 아침 7시 : 물약 2개+알약 5개
2) 정오 12시: 물약 1개
3) 오후 4시 : 물약 1개+알약 1개
4) 오후 6시 : 물약 1개
5) 저녁 8시 : 물약 1개+알약 1개
6) 밤 11시 : 물약 1개+알약 1개
(추가:수면제 졸피뎀 알약 1알:5mg)
오후 6시(위/왼쪽). 저녁 8시(위/가운데/오른쪽). 밤 11시(진통제 물약과 알약+수면제 졸피뎀)(아래).
이번에는 지난 두 번의 수술 때와는 달리 병실에서도밥을 달고 살았다. 소화가 안 되어서 잡곡밥은 못 먹고, 매일 아이와 남편이 번갈아지어 온 흰쌀밥을 먹었다. 갓 지어서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흰쌀밥을 먹을 때의 기쁨과 행복함이란! 왜 '밥심'이란 말이 생겨났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침마다 병원에서 주는 빵이나 뮤슬리를 먹다가 전날 남은 밥을 공기 그릇에 뜨거운 물을 받아와서 1회용 일본 미소 수프를 풀어 밥을 말아먹을 때의 맛이란! 두고두고 잊기 어려울 것이다.
조카가 시도 때도 없이 밑반찬을 보내주었고, 친구 M이 자주 따끈한 깜짝 도시락을 배달해 주었고, 한국 슈퍼의 사장님과 J언니가 일일이 셀 수도 없이 챙겨주셨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분들이 보살이 아니고 무엇이랴. 덕분에 엉덩이에 마비 증상이 아직도 남아 있음에도 몸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타이밍을 놓치면 낭패이기에 방광이 주는 신호에 빨리 대응해야 했다. 스스로 힘을 주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변기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힘을 빼고 얘들아 나와도 돼, 내가 기다려 줄게, 하면 느리지만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내 몸을 보며 사람의 몸, 인체의 비밀을 엿본 기분마저 들었다.
물리 치료사 로버트도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완화병실로 온 지 1주일 만에 보행기나 보조기의 도움 없이 그와 함께 나란히 복도를 걷게 되기까지 그의 도움이 컸다. 완화병동의 두 의사 샘, Dr. 헨니히 Hennig와 Dr. 폴만 Pohlmann. 두 분의 배려가 없었다면 묻지 않아도 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완화병동에 와서 이렇게 집중 케어를 받는 영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곧 암병동으로 옮겨갈 것 같다. 차츰 차도가 있고 컨디션도 좋아져서 더 이상 항암을 미루기도 힘들다. 샘 두 분은 내가 언제 암병동으로 옮겨가도 좋을 상태라고 판단하시는 듯하다. 순리에 따라야지.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암병동으로 가더라도 항암 역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의 아침과 점심과 저녁(위). 새시어머니가 사오신 과일. J언니가 직접 캐오신 민들레. 정성어린 조카의 밑반찬. 남편이 매일 지은 밥 모두 감동과 눈물과 함께 먹었다(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