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시아의 슬픈 소식부터 들어보실래요?

편지 13

by 뮌헨의 마리


"너무 추워서 계란을 소금에 찍어 먹는 걸 깜빡했어."



그리운 샘.

알리시아가 3학년이 된 후 학교에서 급식도 먹고 방과 후도 한다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급식실을 리노베이션 한다고 개학하자마자 도시락을 싸서 다니래요. 엄마도 알리시아도 좋다가 말았답니다. 오전 간식 도시락 하나랑 점심 도시락 하나랑 두 개씩 싸들고 다니고 있어요. 고딩도 아닌데 도시락이 두 개라니요. 그리고 무슨 리노베이션을 개학에 맞춰 하나요. 한두 달은 계속 이렇게 다녀야 한대서 엄마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어요. 어제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알리시아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오늘 진짜 슬픈 소식이 있어. 듣고 싶어? 오늘은 너무 추워서 계란을 소금에 찍어 먹는 걸 깜빡했어."


도시락을 궁리하는 게 매일 저녁 엄마의 일입니다. 월요일인 어제는 낮기온이 12도까지 떨어졌어요. 아침엔 당연히 더 추웠겠죠. 얇은 쟈켓만 하나 껴입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전 휴식 시간에 운동장에 나갔다가 떨었던 모양이에요. 이 시간에 간식도 먹고 비만 오지 않으면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나가야 한답니다. 배 고프지 말라고 달걀을 두 개나 삶아서 예쁘게 껍질을 까서 소금을 따로 넣어줬는데 소금에 찍어먹는 걸 깜빡했다니요. 그게 오늘의 가장 슬픈 소식으로 엄마의 귀에까지 날아왔네요. 웃음을 참으며 말이 나온 김에 슬픈 일들을 한번 읊어봐라 했지요. 이참에 엄마도 네가 어떤 일에 슬퍼하는지 알아야 너를 덜 슬프게 할 수 있지, 하며 그럴듯한 구실을 둘러대면서요. 그랬더니 슬픈 소식 2탄이 바로 날아오네요.


"저번에는 엄청 맛있는 걸 넣어줘서 기뻤는데, 엄마가 그날 물 넣어주는 걸 깜빡했잖아!"


에구머니나! 오래간만에 아이에게 칭찬받을 수 있었는데 도시락 준비 잘 해놓고 물은 또 왜 잊었을까요. 그랬구나, 미안해. 엄마가 갱년기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 그리고 또 말해보라니까 이어지는 3탄, 4탄은 이래요. '거의 매일 음식이 맛이 없었다. 오늘만 빼고.' '지난번에는 주먹밥을 넣어준다고 해 놓고선 안 넣어줬다.' 뭐 죄다 이런 도시락 불만이네요. 그래서 오늘은 도시락에 방울토마토만 넣어주고 학교 가는 길에 동네 빵집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도넛 2개랑 하트 모양 브레첼Brezel 빵 하나를 사서 넣어줬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사갔으니 오늘의 도시락 만족도는 꽤나 높겠죠?



9월의 마지막 화요일인 오늘의 기온도 어제와 대동소이합니다. 낮 최고 기온이 11 도래요. 그나마 어제도 오늘도 해가 나와서 천만다행이고요. 어제는 저도 오래간만에 집에서 차를 마시며 글을 썼어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적응해 보려고요.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나서는데 이자르 강 산책길에도 햇살이 많이 바래져 있더군요. 햇살만 봐도 가을이구나 싶었어요. 어제도 오늘도 아침에 동네 빵집에 들러 카푸치노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 왔어요. 여기서는 '테이크 아웃'이라고 하지 않고 '투 고 To go'라고 하네요. 집에서 마시는 동네 빵집 카푸치노도 맛있었어요. 지난번에 주문한 모카 포터도 도착했으니 커피만 사 오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겠네요.


우리 동네 빵집 이름은 헬레나입니다.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의 가게 이름 소피아는 그 유명한 소피아 로렌의 소피아고요. 가게 안쪽 벽에 소피아 로렌을 그린 그림이 있답니다. 작은 동네 빵집 치고는 이름이 거창하죠? 알리시아와 저는 그 빵집 아줌마를 헬레나 아줌마라고 부른답니다. 금발의 동유럽계 여자분이에요. 처음에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으셨는데 반년쯤 얼굴을 보다 보니 요즘은 제법 말도 걸어주고 하시네요. 자꾸 보니 그 이름 헬레나처럼 예쁘세요. 요즘은 헬레나 아주머니도 옥토버 페스트 특수로 바쁘시답니다. 매일 아침 샌드위치를 싸시느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는 옥토버 페스트가 싫대요. 그래서 안 간대요. 사람들로 너무 북적거려서 그럴까요.


어제는 친할머니 카타리나가 연락을 주셨어요. 할머니랑 같이 옥토버 페스트에 자고요. 다음 주 월요일 오후에 할머니랑 고모랑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답니다. 이럴 때는 시어머니가 참 고맙지요. 할머니께서 사 주신 예쁜 빨간 던들 드레스를 입 할머니 손을 잡고 나들이 가는 옥토버 페스트는 얼마나 즐거운 추억이 될까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렙니다.

샘. 한국의 추석은 잘 지내셨나요? 보름달은 휘영청 떠올랐고요? 한가위답게 풍성한 명절 되셨길 바라요. 저는 잘 있습니다. 명절이라고 딱히 쓸쓸하거나 그렇진 않네요. 그래서 외국에서도 살 수 있나 봐요. 이런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지요. 추석 연휴에 완성한 브런치 글 100편을 조용히 자축합니다. 이 기쁨을 샘과 나눌 수 있어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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