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을 생각하다

편지 12

by 뮌헨의 마리


영화 <캐롤>을 보던 그 겨울이 생각나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리운 샘.


오늘은 클레멘스랑 영화를 보고 왔어요. 언젠가 영화 <북클럽> 포스터를 길에서 보고 사진을 찍어놨는데, 오늘 영화를 검색하던 클레멘스가 저를 위해 이 영화를 딱 고르지 뭐예요. 반갑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어요. 이런 영화는 여자들과 속닥속닥 귓속말도 해가며 깔깔거리고 낄낄거리며 봐야 속도 시원하고 기분도 나는데 저는 뉘앙스가 잘 파악되지도 않는 독일어로 남편이랑 같이 봤으니까요. 물론 자기 취향도 아닌 영화를 골라서 보여주니 고맙긴 했고요.

부부가 영화 취향이 같기가 쉽지 않죠. 한쪽이 예술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면 한쪽은 액션이나 폭력적인 영화를 좋아하기 쉽고요. 저희 부부도 그랬어요. 그래서 평소엔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에 클레멘스 혼자 액션 영화를 보고 오곤 했죠. 저는 폭력이 심한 영화나 공포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도 기분도 한동안 불편해져서 되도록 그런 영화는 피하는 편이고요.


오늘 영화는 클레멘스의 취향보다는 백 배 나았어요.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었거든요. 60대 이후 여성들의 로맨스를 다루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어요. 영화를 본 후 실제 연기한 배우들의 나이를 검색하고는 두 번 놀라고요. 네 명의 주연 여배우들의 나이가 글쎄 60대, 70대, 80대더라고요. 세상에! 영화 속에서는 분장의 힘인지 그 정도로 보이진 않았고요.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결혼까지 한 두 딸이 혼자 사는 엄마의 연애를 이해 못하고 엄마가 딸들의 눈치를 보는 전반부 설정이나 네 명의 여성이 경제적인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은 중산층 이상이라는 점도요. 그런 걸 떠나서 로맨틱 코미디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중년을 지나 노년기로 접어드는 여자들의 로맨스에 즐겁게 동참했어요. 노년의 연애야말로 경제력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간만에 책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은 반가웠어요.



샘. 기억나시죠?

어느 겨울 부산에서 함께 <캐롤>을 보던 날을요. 영화 포스터를 보니 설날 무렵 같네요. 날씨가 추웠던 기억 때문인지 그 영화를 생각하면 늘 겨울이 떠올라요. 영화 속의 배경이 겨울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무런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갑자기 보았는데 같이 보았던 멤버들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하고 감탄했잖아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원작 책을 주문했죠.


저 역시 이 영화를 좋아했어요. 영화가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요. 여자들의 사랑이라든가 그런 소재를 떠나서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어떤 이유도 어떤 조건도 필요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요. 케이트 블란쳇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루니 마라의 순수하던 모습만은 오래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제겐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불가사의함을 잘 보여준 영화였어요.


어떤 영화를 함께 본 추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것 같아요. 영화 속의 배경과 날씨와 주인공들의 색채와 음악까지도요. 그리고 함께 본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지요. 남편과 같이 보고 온 영화는 <북클럽>인데 밤이 되자 지난날 좋은 사람들과 보았던 영화들이 줄줄이 생각나네요.


독일로 오기 직전에 언니와 같이 보았던 영화 <1987>도 기억에 남아요. 한국에서 본 마지막 영화라는 의미도 크구요. 제 청춘을 정리하고 그 시절들과 화해하고 이별하는 영화이기도 했어요. 그날 그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 제 옆에 앉은 사람들, 앞 뒷줄에 앉은 사람들까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어깨를 걸고 마지막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죠. 하마터면 오른쪽 사람과는 그럴 뻔도 했어요. 긴 겨울이 오더라도 그때 그 추억들을 간직하며 살래요. 샘도 그러시길요.


이미지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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